집이라는 그리운 말 - 사라진 시절과 공간에 관한 작은 기록
미진 지음 / 책과이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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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시절과 공간에 관한 작은 기록

<집이라는 그리운 말>


어린 내가 살던 집은

하늘만큼 높은 곳에 지어졌지만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발아래이기도 해서

많은 소리들이 들리곤 했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발소리는

언제나 소란스러웠고

늦은 밤 고양이들이

지붕 위를 뒹굴며 싸우는 소리에는

밤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 엄마의 발걸음 소리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고

그 어떤 소리보다도 반가운 것이어서

대번에 대문을 박차고 뛰어나갔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나면

학교 앞 문방구에 가방을 맡겨놓고

친구들과 운동장을 뛰어다녔습니다.

때로는 친구들의 집에

돌아가며 놀러 가곤 했는데,

엄마는 일하러 가고,

나이가 많은 오빠는 아직 학교에 있어

우리 집은 거의 빈집에 가까웠기 때문에

친구들이 자주 놀러 오곤 했어요.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인형놀이도 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하고

때로는 숨바꼭질도 했는데,

숨바꼭질을 할 때면

온 동네를 구석구석 뒤지며

숨을 곳을 찾아내곤 했습니다.

그때 제가 가장 잘 숨던 곳은

커다란 쓰레기통이어서

좀처럼 들키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는 김밥을 쌀 때

항상 미나리를 넣고 말아주었습니다.

그래서 소풍을 떠올릴 때면

항상 향긋한 미나리향이 나는 것 같습니다.

새벽부터 김밥을 마는 엄마 옆에 앉아

김밥을 썰어놓을 때마다

하나씩 주워 먹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지금 내 손으로 싸 먹는 미나리 김밥은

더 좋은 재료를 꽉꽉 채워 넣어도

그때만큼 맛있지가 않으니 아쉽습니다.


여름 같은 풍요의 순간이 있었나 싶은데,

봄에서 가을로 훌쩍 넘어온 것만 같은데,

내게도 분명 도난당한 것만 같은

그때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소중해서, 너무나 소중해서

그리 짧게만 느껴졌나 보다.

저자가 어려서 살던 집,

그리고 함께 살던 가족과 이웃을 떠올리며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옛집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나의 가족과 나의 이웃,

그리고 그 속에 있던

어린 나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며 행복해했습니다.

집에 대한 기억이라 하지만

엄마에 대한 기억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곳곳에 엄마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낡았지만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아놓은

오래된 집과 살림살이들,

마법처럼 후다닥 차려내던 따뜻한 밥상,

햇볕 냄새가 맡아지던 바스락거리는 이불.

모두 엄마의 손길로 마련된 것입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모든 것이 낡고 오래되어 불편하지만

모두들 그런 시절을 함께 살아왔고

그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지내왔기에

그 시절이 더욱 그리워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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