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의 미화원>
시간이 지나자 일종의 균형 감각이
한주 내부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어느 한 사람에게도 소홀히 하지 않는
그야말로 조화롭고 균형 잡힌
보편적 인류애가 생겨나던 것이다.
한주는 저녁을 차리다
앞치마를 맨 채 맨발로 뛰쳐나와
거리를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목덜미에 총구를 들이미는 남편을 피해서.
불륜을 저지르다 발각되었거든요.
한주는 나름 자신만의 논리를 펼칩니다.
이 남자 저 남자에게 자꾸만 가는 마음을
'보편적 인류애'라고 이름 붙이고
진정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자 합니다.
보편적 인류애를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이
어째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끔찍한 고통을 남겨주는지
저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지만요.
나도 사생활이 복잡해지고부터
엄청 영혼이 자유로워졌거든!
이제 우리는
자신을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르면 안 돼.
호모 씬리스라고 해야 돼.
섹스를 하더라도
나처럼 철학적 섹스를 해야 한다구.
철학적 섹스라니, 멋지지 않아?
응, 멋지지 않아.
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죄의식이 없는 것이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도 남편의 총에 맞아 죽겠으니
돈도 갈 곳도 없어진 한주는
직접 죽을 결심을 하고 산에 오릅니다.
그러나 그 산에서 만난 한 남자로부터
산속 화장실을 청소할
미화원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한주는 그 산의 미화원으로 일하게 됩니다.
산은 한주를 살아가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계절마다 변하는 아름다운 자연과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과
깨끗하게 청소하며 느끼는 보람과
산에서 만난 남자들에게 베푸는
보편적 인류애까지,
남편이 총을 가지고
한주 앞에 다시 나타나기 전까지
한주는 나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어요.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데
자신은 그저 되는대로 살아가는 것 같아
스스로가 시시하게 느껴지고
쓸쓸한 기분도 느끼게 됩니다.
모든 것을 그만두고
산을 떠난 한주가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게 될지 궁금합니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삶이
곁에 있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게 된다면
그는 누군가와 함께 할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닐까요.
산이라는 공간 속에서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과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