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 이어령 유고시집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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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간 길을 지금 내가 간다."

이어령 유고 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천의 물결로 빛나는 강물이거나

천의 이파리가 흔들리는 수풀이거나

​

움직이는 것은 모두 다 아름답다

​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본다는 것,

소리가 나는 것을 듣는다는 것,

손으로 만지고 코로 냄새 맡는 모든 것이

하나하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것을 잃기 전에는

차마 그 고마움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죠.

​


사랑하는 것은 오래 생각하는 것이고,

참된 것은 오래 기억하는 것입니다

​

아빠가 귓가에 새소리를 내며 깨워주던 아침,

엄마가 미나리를 넣어 싸주던 향긋한 김밥,

오빠 졸업식에 온 가족이 함께 먹었던 자장면,

맞벌이 부모님 덕에

언제나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었던 우리 집.

어린 시절 소중한 추억이 가득하니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


추운 겨울, 새벽 길거리에서 신문을 배달하는

아이가 떨고 있었지요

​

길을 가던 여인이 물어보았지요

얼마나 추우니

​

신문 배달을 하던 아이는 대답했어요

​

조금 전까지만 해도 추웠는데

'얼마나 추우니'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제는 춥지 않아요

​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을 바꾸고

말 한마디가 세상을 바꾸고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바꾸어 놓습니다.

작지만 큰 힘을 가진 말 한마디.

내 아이가 추위에 떨지 않게 하는 방법은

남의 아이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이라는

선생님의 큰 뜻을 배웁니다.

​


선생님이 가시고 난 후

서점에서 선생님 관련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는

사랑하는 딸을 먼저 떠나보내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있어

보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지게 합니다.

우리 시대 최고 지성으로 불린

이어령 선생님의 유작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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