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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삶을 훔친 여자 ㅣ 스토리콜렉터 75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내용은?
잠깐 만난 해군과 함께 한 며칠 이후 임신을 하게된 '나'(애거사)는 출산일을 기다리며 교외 슈퍼마켓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거기서 일을 하면서 알게된 '메그'와 안면을 트게 되는데, '메그'는 유명한 블로거인데다, 멋진 앵커 남편이 있고, 귀여운 두 아이들까지 있는 부유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메그'와 가까워 지면서, 그녀의 삶이 더욱 완벽하다고 느끼게 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메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보며 그 삶이 나의 것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인상깊은 부분은?
마이클 로보텀은 ' 조 올로클린 시리즈'와 더불어 범죄/스릴러 소설로 꽤 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작가다. 범죄가 주인만큼 인간의 잔혹하고 냉정한 모습을 꽤 강하게 그려내는 작가인데, 이번엔 그보다는 '사람'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메그'와의 대면에서도 '못생기지는 않았지만 딱히 예쁜 편도 아닌, 정확히는 위협적이지 않은' 내가 바라보는 '죽여주게 매력적인' 그녀라고 말하는 건 자기비하이면서 부러움이 극대화된 마음인 것이다. 본인에게 닥친 난처한 상황에 불만, 거기다 임신이라는 동일한 조건위에서 보이는 시샘어린 시선과 그 대척점에서 보여지는 상황이 이미 어떤 사건이 기다리고 있음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메그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안면을 텄다. 우리는. 나와 메그는 친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메그와 똑같아질 것이다. 사랑 넘치는 가정을 꾸리고 남편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우리는 요가 수업을 같이 듣고 레시피를 교환하고 금요일마다 아이 엄마 모임을 가지고 함께 커피를 마실 것이다.
P.17
이 부분에서 보면 본인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는 점이 느껴진다. 지금이 아닌 미래를 그리는 시선, 이중에 갑작스럽게 그녀와 같아진다는 다짐이 부러움보단 서늘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앞서 얘기했지만 '욕심'보다는 '결핍'에서 온 마음이 더 크다고 생각되는데, 결핍의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자세히 얘기할 순 없지만 '나'(애거사)도 사춘기 시절부터 겪은 큰 상처가 인생을 바꿔 놓았다. 어리고 약한 존재. 그것을 가능한 많이 이용하는 사람들로 인해 애거사가 감내해야 했던 아픔들은 공감할 순 없지만 이해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타인의 애정에 목말라하고 오히려 그럴수록 멀어지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더 메말라가는 것이 느껴지며 오래 생각하게 된다.
'메그' 역시 모든 사람이 부러워 할만한 삶을 살고 있지만 실제 안을 들여다 보면 절대 그걸 누리고 살지는 못한다. 이미 충분히 귀여운 두 아이, 그런데 곧 출산하게 될 셋째 아기. 이 한가지 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행복하지 않은지'를 알 수 있다. 그것에 대해서만은 "이해는 하지만 용서는 못한다"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많은 것 같은데, 사람들이 생각이 다 같지는 않으니 뭐 여기까지.
그래서 '애거사'가 '메그'의 집을 멀리서 또는 조금 가까이서 바라보며 보여지는 행복한 삶이 '메그'를 정확히 이야기 해주는 것 같다. 멀리서는 무한정 행복해 보이지만 가까이서는 그렇지 않다는 걸 들킬 수도 있을 거라는 조심스러움처럼 말이다.
제목에서 보이듯이 '다른 사람의 삶을 훔친다'라는 기본적인 이야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나같은 경우, 처음엔 몇 년 전 개봉했던 영화 '테이킹 라이브즈'(D.J. 카루소, 2004)같은 서사가 떠오르긴 했는데, 읽으면서 역시 그것과는 다른 감정선이 있다는 걸 깊이 느꼈다. 무언가를 더 갖겠다는 욕심보다는 갖지 못한 것에서 오는 결핍을 채우고 싶은 마음이 먼저 느껴진다랄까.
여성이 주인공인데 심리적인 부분이 굉장히 잘 표현되어 있다. 섬세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여성으로써 느끼는 바에 대해서는 가능한 깊게까지 동감할 수 있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옳은 일을 한 것인지, 내 딸이 행복할지, 내 딸이 나를 생각할지.
아기를 포기하는 모든 어머니가 그런 질문들을 품지만 내게 그 질문들은 더욱 크게 울린다. 내게는 그 고통을 달래 줄 다른 아이들이 없기 떄문이다. 내 딸은 이제 스물세 살 일 것이다. 대학에 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략) 내게는 내 딸을 찾을 법적 권한이 전혀 없지만 이제 그 애가 열여덟 살이 넘었으니 나를 찾을 수도 있다. 그것이 내 희망, 내 꿈, 내게 등을 돌린 하느님께 올리는 대 기도이다. 어느 날엔가 문을 열면 그 애가 계단에 거 있기를 소망한다. 나는 그 애에게 널 버리지 않았고 22년간 줄곧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다고 말할 것이다. 내 딸...내 첫 아이...살아남은 아이.
P. 211
다만 두 여성에 대한 심리나 시각이 주 내용인만큼 남자들은 크게 역동적이지 않다. 원인제공자? 아니면 방관자 정도의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무언가 더 큰 역할을 기대하진 않아도 되겠다. 이 두꺼운 책에서 두 여자가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다고 생각된다. 중간중간 발암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답답하고 무지한 남자인간도 등장하는데 뭐 그정도는 얼마든지 다른 소설에서도 볼 수 있으니 그냥 장애물 정도로 생각해도 좋을 듯 하다. 다만 여자의 적은 여자여야 하는가? 하긴 그게 아니라면 대부분 치정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 패쓰!
엄청난 트릭도, 기가 막힌 액션도, 잔인한 범죄도 없지만 읽어나가면서 말 한마디 생각 하나에도 다음이 기대되는 부분이 많다. 전문가이지 않기 때문에 투박하고 어설픈 행동들. 그런 것들을 쉽게 넘길 수 없는 것은 '애거사'가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들 때문이다. 행동은 좀 어설플지 모르지만, 상황을 인지하는 감각과 의지만은 그냥 무시하기엔 정확하고 깊다.
나름 반전이 있지만 그걸 알아내기 위해 전전긍긍 할 필요는 없다. 이미 중간 부분까지 읽으면 왠만한건 작가가 다 술술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가고자 하는 건 끝까지 주인공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함께 느끼고 공감(아니면 혐오나 경멸이 될 수도 있겠다)나 하기를 바라는 것이지 눈부신 반전이 아닌 것이다.
“헤이든이 출산일에 맞춰 집에 올 거야.” 콜 부인이 선포한다.
나는 입을 쩍 벌린 채 부인을 응시한다.
“그 애가 가족 연락부서에 이야기해서 상황을 설명했대. 해군은 보통 인력이 복무기간 중에 중단하는 걸 허락하지 않는데 그 애한테는 허가를 내줬다지 뭐니. 정말 좋지 않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줄스가 내 팔을 붙잡아 나를 앉혀준다.
“이런 맙소사, 정말 미안하다.” 콜 부인이 말한다. “내가 충격을 줬구나. 조심했어야 하는데.”
(중략)
나는 토끼굴로 미끄럼을 타고 내려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다. 평행세계로 추락하는 것을 멈추려 애쓰고 있다.
“그건 안 돼요!”
콜 부인이 말하다 말고 멈춘다. 줄스가 찻주전자에서 고개를 돌린다. 내가 설명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P. 144
과연 이 부분에서 어떤 향후 전개를 읽을 수 있을까? 즉, 반전을 위한 반전이 아니라 앞으로 이야기를 이어 가기위한 반전이라고 보면 되겠다. 앞에서부터 천천히 읽어간다면 어느 순간 반전이 기다리고 있으니 앞뒤를 잘 이해하며 보아야 하겠다.
어쨌든 ‘완벽한 삶’을 갖고자 했던 그녀, 애거사에게 공감을 가질 지, 혐오를 가질지, 아니면 그냥 연민을 가질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이 내가 한참 책을 읽으며 예상했던 것처럼 이야기는 결론을 위해 달려간다. 그 결론에서 어떤 감정을 느낄지는 오롯이 마지막 책장을 덮는 사람이 느낄 그 마음일 것이다.
“내일 뭘 하고 싶어요, 애거사?” 콜린이 물었다.
“여기는 요가와 필라테스가 있고 아니면 온실에 뭔가 심어도 돼요.”
“아 저는 그럴 수 없어요.” 내가 말했다. “딸이 저를 보러 올거예요. 그 애는 리즈에서 먼 길을 와요.”
“따님 이름이 뭔가요?”
“저도 몰라요. 하지만 그 애는 무척 예쁘고 영리해요. 여기 도착하면 자기 이름을 말해줄 거예요.”
P. 574
책을 다 읽은 독자라면 위 대화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것이다. 그냥 평범할 수 있는 대화이지만, 그 안에 애거사가 갖고 싶었던 ‘삶’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그 삶이 완벽하진 않았지만,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삶은 없다는 걸, 그리고 꼭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걸 담담하게 이야기 해주는 부분이다.(사실 이 부분 뒤엔 많은 내용이 있진 않다. 그래도 이 부분쯤 되면 책의 마지막에서 더 여운이 남는다)
덧붙인다면?
1. 상대적으로 ‘메그’에 대한 내용을 많이 못쓴 것 같다. 이 인물도 할 말은 꽤 많을텐데 애거사에게 집중되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 부족한 듯 하다. 어쩌면 일반 독자들은 ‘메그’의 행동에 더 이해할 수도 있겠다.
2. 책이 두껍고 무게감도 있지만 잘 읽히는 편이다. 드라마를 보듯이 장면 전환도 많으므로 가능한 정독을 권하고 싶은데, 조금은 흔한 소재, 익숙한 흐름. 중간중간 기시감이 드는 곳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애거사는 갈등주체로써 충분히 매력적이다.
3. 소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 왜 책을 읽으면서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2018, 폴 페이그 감독)가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주인공으로 여자 두 명이 나와서 그런가?!
4. 심리묘사와 인물사이 갈등구조가 주는 긴박감있는 스토리를 좋아하거나, 기존 여성들이 조연으로만 머물러 있는 답답한 스릴러가 무미건조했다면 추천, 급격한 사건 전환을 즐기고, 강렬한 반전과 무지막지한 살인범이 활개를 치는 미스터리 소설을 원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북로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