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
우타노 쇼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내용은?
에도가와 란포가 썼던 소설인 <인간 의자>,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D 언덕의 살인사건>, <오세이 등장>, <붉은 방>, <음울한 짐승>, <비인간적인 사랑>을 현대적인 감각,배경의 변화,트릭의 현대화를 통해 기존 작품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색다른 반전과 우타노 쇼고 특유의 멍해지는 결말을 보여주며 소설을 새로운 시각으로 쓴 <의자? 인간!>, <스마트폰과 여행하는 남자>, <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 <『오세이 등장』을 읽은 남자>, <붉은 방은 얼마나 바뀌었는가?>, <음울한 짐승의 환희>, <비인간적인 사랑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등 7편을 엮은 책이다.
주요 포인트는?
처음 우타노 쇼고의 책이 새로 나온다고 했을 때 이전 작품인 ‘늘 그대를 사랑했습니다’같은 단편보다는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같은 장편을 기대했었다. 누군가는 그 소설에 대해 '반전이 아닌 눈속임'이라는 평가도 있긴 하지만 난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이 매우 컸기 때문에 우타노 쇼고의 소설들에 관심을 늘 가져왔기 떄문이다. 물론 ‘늘 그대를 사랑했습니다’ 속 작품들도 이야기가 촘촘하고 뜻밖의 반전을 선사해서 충분히 재미있지만 긴 호흡을 가진 미스테리 추리물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이번 소설은 단편들을 묶은 것이고,거기에 아주 새롭게 쓰여진 책도 아니라는 점에서는 우타노 쇼고의 책을 좋아했던 사람들은 살짝 책을 선택하는데 머뭇거려질 수 있다. 하지만,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배경과 등장인물의 변주를 통해 다시 만드는 방법으로 쓰여진 것인데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난 이 책에 들어 있는 작품들의 Original 작품은 세 편 뿐이지만 읽어 본 바로는 굳이 그 소설들과의 접점을 찾아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원작을 둔 remake작이 있다고 해서 원작을 꼭 찾아보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독립적인 작품으로도 의미는 있고, 굳이 원작을 찾아본다면 어떤 이는 원작에 감탄하겠지만 어떤 이는 remake작에서 더 장점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이 같기도 하고,어떤 경우는 사건도 유사하지만 이전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들 얼개를 참고해서 쓴 것일 뿐 그 작품들과의 비교해서 우열을 가릴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이전 소설들을 모르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내용들이긴 하다.
첨언하자면 이전 작품들이 작품으로서는 의미가 분명 있겠지만 지금 읽으면 시대적인 배경과 사건 해결까지 이르는 방법들을 생각할 때 확실히 전개가 루즈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그런 점에서 우타노 쇼고의 소설이 훨씬 이전 작품들에 접근을 쉽게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특히 각 작품에 잘 어울리는 ‘가장 현대적인’ 소품들,예를 들면 핸드폰, VR, 3D 홀로그램,인공지능,태블릿 등은 정작 일부러 집어 넣었다는 느낌이 없진 않지만 요소요소에 잘 활용된 것 같다.
세이야는 유리 테이블 위에 있는 상자 같은 것을 내게 넘겼다.
"고글?"
티슈 상자를 한 단계 작게 만든 크기에 양쪽 끝이 신축성 있는 벨트로 묶여 있다.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Head mounted Display야."
안쪽에는 쌍안경 렌즈 같은 원형의 물제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P. 183
---------- ---------- ---------- ---------- ----------
"(전략) 이런 식으로 마음대로 개조할 수 있는 것도 디지털 클론의 장점입니다. 괜히 성가신 일들을 안 해도 되고 자신에게 꼭 맞는 이상적인 성격의 클론을 만들 수 있으니 오히려 살아 있는 사람과 교제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인터넷상의 정보를 입수해 사실을 알아낼 수는 없습니까?"
"프로그램은 외부와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서버와 단말기 사이 데이터 교환에 인터넷이 쓰일 뿐이고 그녀가 자율적으로 정보를 수집하지는 않죠.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요."
P. 109
---------- ---------- ---------- ---------- ----------
시즈코 씨가 그에게 개점 안내 엽서를 건넸다. 트위터 QR코드가 인쇄돼 있고 인사말 끝에 정갈한 슬씨테로 '시바하라 유키'라는 서명이 있었다.
P. 310 ~ 311
물론 이런 최첨단 기술들로 도배된 이야기들만 있는 건 아니니 '혹시 이런 첨단 기술이 동원된 어려운 내용인가'라는 생각은 안했으면 좋겠다. 단지 이와 같은 소품들이 나온다는 걸 참고만 하면 될 듯 하고, 이런 부분이 어떻게 쓰이고 사건들과는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가 될 수 있으니 읽으면서 눈에 띈다면 새로울 듯 하다.
다만 우타노 쇼고의 기존 소설들을 읽어보았던,또는 그소설들을 즐겼던 사람들에겐 조금은 익숙하다는 점이 아쉬울 순 있을 것이다.왜냐하면 개인적으로 읽었던 우타노 쇼고의 소설의 백미는 조금은 긴 서술,교차되는 인물들 간의 대화나 상황에서 주는 복선이 마지막 한방을 위한큰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 소설에 기댈 수 있는 건,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이 현재 일본 추리 문학에 끼친 의의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많은 작가들이 그 영향력 아래에 있고 그 분야의 기반을 다졌다고 할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도 받았고,그만큼 그 자체도 재미있을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이 소설은 그런 것에 비추어 굳이 따진다면 에도가와 란포의 추리소설 형식과 그 당시 감성을 우타노 쇼고의 반전트릭과 현대적인 느낌을 잘 살린 소설이며, 한 파트 한 파트가 짧게 끝나는 만큼 다양한 소재와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는 재미를 주는 것에는 틀림이 없다.
인상깊은 부분은?
총 7편의 단편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과 ‘음울한 짐승의 환희’를 재미있게 읽었다. 추리소설인데다 반전이 있기 때문에 내용을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짧은 이야기 속에 기승전결을 잘 갖췄고, 같은 소재로 장편 소설화하는 것보다 이대로 두는 게 최상의 선택이라 할만큼 정리가 잘 된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러브 호텔에 들어와 있잖아. 둘이서만"
"뭐?"
"골목 입구에 CCTV가 있는 거 알아? 거기에 둘이서 호텔에 들어가는 모습이 또렷이 찍혔어. 이제는 여기저기에 CCTV가 있어서 안심할만한 세상이 된 것 같아."
도톰한 입술 사이로 교정기를 낀 이가 보인다.
(중략)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이 역시 순진무구한 웃는 얼룰로 비칠테니,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몰고 갈 것이다.
P. 203
---------- ---------- ---------- ---------- ----------
이마자토가 날카롭게 물었다.
네 그랬던 것 같네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자신이 저지른 짓인데도 기억나지 않는다?"
"워낙 정신이 없었거든요."
이 젊은 형사는 실적에 욕심이 많구나. 그는 한가롭게 그런 생각을 더올리며 지금의 상황을 마친 남의 일처럼 생각했다.
"동기는?"
"동기..."
그는 무심코 눈을 질끈 감았다. 눈꺼풀 안쪽에 그 날의 충격과 절망이 암흑 속 무지개처럼 피어올랐다.
P. 351 ~ 352
두 작품이 가진 사건이 더욱 흥미가 가는 건 그것을 추적해가는 과정이 더 흥미롭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건 그 자체가 해결되기 위한 것도 소설의 재미이지만, 그 안의 또 다른 사건 또는 인물이 보여주는 행동(또는 말)이 주는 반전도 그만큼 흥미롭기 때문이다. 짧은 스토리가 줄 수 있는 장점은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주변의 자잘한 것들을 제거한데서 오는 간결함이 주는 예상치 못한 마무리가 아닐까 한다.
추가적으로 혹시 책을 읽는 분들에겐 '의자? 인간!'과 '스마트폰과 여행하는 남자'도 읽어보길 권한다. '의자? 인간!'은 이미 책 출판 당시에 내용이 어느 정도 공개되기도 했기 때문에 이미 검색을 해 본 사람들은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은 앞에 나온 이야기들에서 온 충격보다 더 크다. 아마 절로 "아니 아니- 열어보지마, 열어보지마!"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스마트폰과 여행하는 남자'는 추리보다는 미스테리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하지만 끝나는 부분에 다다르면 예전 TV에서 했던 '환상특급(원제: The Twilight Zone)의 한 에피소드처럼 마무리가 된 후에도 몽롱한 느낌이 들 것이다. 이 안에서 다루는 사건도 놀랍지만 이런 애매모호한 결말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읽어 볼만 하다.
개인적으로 단편선의 장점은 필요한 때 이야기 별로 짧게 짧게 읽고 잠시 쉬었다 다시 읽어도 된다는 것이고, 단점은 재미있지가 않으면 시간이 지난 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많은 팬을 거느린 두 작가의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작품들이 기억에 좀 더 오래 가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추가적인 욕심은 우타노 쇼고의 장편도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덧붙인다면?
1.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작가에 관해서. 에도가와 란포(Edogawa Rampo)는 일본의 추리/미스테리/탐정 소설가로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꾼 필명이다. 작품들이 후대 유사 문학 장르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의 이름을 딴 '에도가와 란포 상'도 있다. 이 상의 수상자들 중엔 히가시노 게이고, 이케이도 준, 야쿠마루 가쿠 등도 포함되어 있다.
2.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 소설을 읽어 본적이 있고 없고는 상관없이 이번 소설은 우타노 쇼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3. 이 에도가와 란포가 썼던 소설속 주인공인 유명한 탐정 '아케치 고고로'가 있는데,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김전일과 추리 대결을 하는 '아케치 겐고'의 '아케치'와 <명탐정 코난>에서 코난이 쓰는 이름 '에도가와 코난'의 '에도가와'는 '에도가와 란포'의 이름에서 그리고 잠자는 명탐정 '모리 고고로'의 '고고로'가 이 '아케치 고고로'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3. 우타노 쇼고의 간결한 추리물이 끌리며, 장편 소설의 긴 호흡이 부담스럽다면 가볍게 읽을 수 있어 추천, 추리나 미스테리 소설 속 다양한 등장인물의 홍수가 필요하고, 마법같은 트릭이 넘쳐나는 작품을 원한다면 비추천.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한스미디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