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톰의 발라드
빅터 라발 지음, 이동현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ii. 내용은?

할렘에 사는 스무 살의 무명 연주자 토미 테스터는 아르바이트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어느 날, 운 좋게 기타를 장만하고 길을 가던 중 로버트 수댐이라는 노인이 다가와 레드 훅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열리는 파티에서 연주를 해달라며 거액을 준다고 제안하며 선금 100달러를 주기까지 하는데 토미는 돈이 급해 결국 약속한 날 수댐을 찾아가게 된다.



iii. 주요 포인트는?

최근의 트렌드라고 얘기하긴 어렵지만, 근간에 기존 작가의 대표작을 재해석하거나 현대적인 감각을 더 하는 작품들이 출간되고 있다. 생각나는 건(정확히는 내가 읽은 건!) 요 네스뵈의 <맥베스>와 우타노 쇼고의 <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이 있었는데 두 작품 다 셰익스피어와 에도가와 란포의 기존 작품을 원안으로 하고 있다. 앞서 다른 서평에서도 얘기했지만 현대적인 배경(또는 완전 다른 시기)과 인물들, 새로운 관계나 사건 등을 잘 연결해서 또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것일텐데, 기존 작가-유명 작가-의 글을 재해석 한다는 것 역시 작가에겐 부담일 수 밖에 없다. 너무 새로운 이랴기라면 기존 작품을 무시한다고 욕먹고, 유사하면 작가가 한게 없다고 욕을 먹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은 인물의 성격 변화 좀 더 주력하고, 기존 작품이 가졌던 ‘분위기’에 무게중심을 두면서 신작과 구작 사이 줄타기를 잘 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배경이 현재는 아니니 21세기의 익숙함 또는 너무 재기발랄함을 바라진 말 것. 배경이 1924년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좀 우울하다. 


플러싱 사는 흑인의 수는 할렘에 비해 훨씬 적었다. 토미는 모자를 살짝 낮게 눌러썼다. 차장은 객실에 두 번 들어왔고, 두 번 다 토미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자기 것이라도 되는 양 기타 케이스를 툭툭 치면서 토미에게 음악가냐고 묻더니, 두 번째는 내릴 곳을 지나친게 아니냐고 물었다. 다른 승객들은 무관심한 척했지만 토미는 그들이 자신의 대답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을 뻔히 알 수 있었다. 토미는 짧게 대답했다. "예, 차장님, 기타를 연주합니다." 그리고 "아니요, 차장님. 아직 몇 개를 더 가야 합니다." 눈에 띄지 않는 순종적으로 보이는 것은 온통 백인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흑인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P.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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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백인이 너에게 얼마를 주겠다고 했니?"

"400달러요."

"자기 파티에 연주하는 것만으로?"

오티스는 패션프루트 주스가 든 컵을 들고 코에 댄 채 킁킁 냄새를 맡더니 음료수를 다시 내려놓았다.

"네가 자기 파티에 와서 연주하는 것만으로?"

(중략)

오티스는 허공으로 양손을 들더니 최대한 멀리 벌렸다.

"이게 백인들이 흑인에게 겉으로 하는 말과 실제 속뜻의 차이란다."

물론 토미도 알고 있었다. 이미 미국에서 20년을 살지 않았나?

P. 42


위에서 보듯이 그 시대 인종차별에 대한 것들은 주변인들의 대화를 통해 드러내려고 한 것이 드러난다. 저자인 빅터 라발 역시 배경의 엄숙함이 주는 분위가 보다는 직접적으로 대화를 활용하는 방법은 단편소설로써 짧은 호흡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빅터 라발이 이 소설로 수많은 문학상 후보에는 오른 듯 한데 정확히 어떤 상을 받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iv. 인상깊은 부분은?

처음 책을 받았을 땐 '굉장히 얇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H. P. 러브크래트'의 작품 자체가 단편소설이었기 때문에 무언가 더 확장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선 결국 과감한 생략, 단순한 이미지화가 필요한데 무거운 주제에 비해 읽어 나가면서 단어 하나하나를 머리에 새기는 게 어렵기 때문에 자칫 빨리 읽어나가다 보면 중요한 부분을 스쳐갈 수 있으므로 천천히 읽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머잖아 로버트 수댐은 레드 훅의 식당가에서, 길모퉁이에서 정향 냄새를 풍기는 젊은이들 무리로부터 들을 수 있는 단 하나의 화제가 되었다. 다세대주택 창에서 몸을 내민 채 길거리와 골목길 건너 서로에게 이야기하는 아낙네들마저도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몇 주내로 레드 훅 전역이 한 솔로 수댐이라는 그 이름을 몇 번이고 거듭 말하는 것 같았다. 

P. 117

그저 소문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뒷담화일지 그냥 봐서는 알기 어렵겠지만, 위 내용의 앞과 뒤를 읽어보면 저 부분이 어떤 분위기를 만드는데 기여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앞서 얘기한 것처럼 그런 상황이나 관계가 갑작스럽게 바뀌는 것은 읽어가며 호흡을 그에 맞춰가야 할 것 같다. 대화와 분위기를 천천히 느끼며 읽는데 있어서는 분량도 많지 않고 다행히 등장인물도 적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 않아 어렵지는 않다. 


아쉬운 것 한가지는, 번역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작가가 일부러 그런 건지 초반에 주인공 이름이 너무 자주 바뀌어 등장한다. 물론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 '본명'과 '애칭', '중간 이름'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대화상에서 바뀌는 게 아니라 관찰자 시점에서 인물을 칭할 때 그렇게 바뀌기 때문에 처음에 full name을 알고 시작하지 않았으면 헷갈렸을 것이다. 


엄청난 반전이 있지는 않지만 읽다보면 독특한 분위기의 소설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SF라고 하기엔 강렬하지는 않고, 처음엔 전혀 예상하지 못하다가 미스테리하고 기묘한 분위기로 흘러가다 오컬트의 느낌을 주기도 한다. 다만 인종차별에 대한 것과 그에 대한 분노의 표출,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미스테리함까지 모두 표현하기에 단편이기에 조금 부족한 감이 있으므로 선택 시 꼭 이점은 고려했으면 좋겠다.



v. 덧붙인다면?

1. 이 소설의 원작이라 할 <레드훅의 공포(The Horror at Red Hook)>를 쓸 때 H. P. 러브크래트가 실제 살던 빈민가 이름이 레드훅이었다고 한다.


2. H.P. 러브크래프트는 단편선으로만 알려졌지만, H.R 기거(헐리우드 특수효과/디자이너), 길예르모 델 토로(미국 영화감독), 이토 준지(일본 만화가), 스티븐 킹(미국 소설가)까지 그의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만큼 북미에서는 유명한 작가인데 반해, 이 소설을 쓴 '빅터 라발'은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작가는 아닌만큼 향후 더 많은 작품이 나오길 기대한다.


3. H.P. 러브크래프트의 단편을 읽어본 적 있다면, 그리고 너무 복잡한 스토리의 소설들에 지쳐있다면 추천, 드라마틱한 스토리나 잔혹한 범죄, 주인공의 활극이 가득 찬 소설을 기대한다면 비추천.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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