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낙 형사 카낙 시리즈 1
모 말로 지음, 이수진 옮김 / 도도(도서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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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포인트는?

이야기의 시작은 그 어느 얼어붙은 땅의 집에서 일어난 갑작스러운 가족의 해체로 시작한다. 첫장부터 사건의 시작인건가?라고 생각했지만 인물과 ‘관계 있는’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되면 시작부터 너무 집중한건가 머리를 긁적이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극적인 첫 살인사건이 아니라고 해도 뒤에 나오는 사건들의 형태를 생각한다면 극적 장치로는 확실하게 남는다. 왜냐하면 눈과 얼음으로 덮인, 자연이 아직 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진 곳에서 동물에 의해 벌어졌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살인사건은 그 자체만으로 우리가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살인사건과 그 범인을 추적하는 형사물일 거라고만 생각한다면 이야기가 좀 장황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왜 그 땅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져야 했는지,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혀내기까지 그 역학관계에는 사람만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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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태블릿 PC의 화면을 몇 번 눌러 여러 개의 자료를 보여주었다. 얼핏 봐서는 카낙이 그린란드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검토했던, 앞서 프리무스에서 발생한 세 살인사건의 사진과 비슷했다. 동일한 방식으로 잘린 목과 파헤쳐진 복부. 동일한 방식의 분노가 만들어앵 잔인한 핏빛 행위. 사진에서 비명이 들려오는 듯 했다.

“그린오일 노동자들에게서 보인 것과 매우 비슷한 상처를 가진 두 구의 사체가 발견됐어요. 여기서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곰에 의해 먹혀버린 것 처럼 아무 흔적도, 지문도 남기지 않았다고 해요. 저 위쪽은 이곳과 같은 기술력이 없지만…”

그녀의 말에는 분명한 경멸이 담겨 있었다.

P 302 ~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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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라는 거대한 미개척지에 어마어마한 자원이 발견되었다면 그 다음은? 자원이 나는 땅을 두고 동네 사람들끼리 시기와 질투로 서로를 미워하다 대량 살상을 일어난다는 일차원적인 이야기라면 아마도 중간에 읽다가 멈췄을 수도 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냉정하다. 


​이 책에서 주요 갈등요소는 첫째, 자원의 발견 그 자체이다. 자원이 발견되고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이 그린란드로 들어오면서 그를 위해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인 근로자들과 현지인들과의 갈등이 먼저 터지기 시작한다. 이는 순수혈통과 그들만의 정체성(폐쇄적으로 살아와서 그런 거일 것이다)을 중시하는 이누이트를 물들여가는 가는 것이 폭발한다. 두번째, 그린란드를 지키기 위한 환경보호론자와 에너지 기업간 집단 대 집단의 갈등이라. 이는 지금까지 이어온 자연 그대로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훼손해가는 기업과 더욱 힘들어지는 환경운동가들의 한계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이는 옳고 그름의 판단이 빠르고 더딘 것을 결정해가는 과정이 된다. 세번째로는 그린란드의 자원을 먼저 차지하기 위한 기업대 기업간의 경쟁이다. 욕심이 만들어내는 자본의 싸움은 결국 사람대 사람의 싸움보다 더 큰 상처와 회복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며, 그 전쟁터는 결국 그린란드이기 때문이다. 


살인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꽤 범인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등장인물이 많기도 하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가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사건들에 대해 묘사되면서 막연하게 누군가가 범인이겠다는 예상은 되지만 단지 직업적인 부분만 떠오를 뿐, 왜 범인인지는 도무지 그려지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살인자의 정체보다는 왜 사건이 벌어져야 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훨씬 더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게 한다. 이정도로 말하면 사건에 대한 스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설마 북극곰이 공격한 것과 비슷한 상처를 가졌다고 진짜 북극곰이 죽인거라고 생각할 독자는 없을 것 같다. 상식적으로 북극곰이 설마 ‘그런 곳’에서 사람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걸 인정하지 않는 경찰들이 답답해지기도 하지만. 



인상깊은 부분은?

살인 사건만으로도 벅차지만, 어느 집단이든 앞잡이는 있기 마련인 만큼 이 소설에서도 고위층과 이익집단, 이를테면 석유회사 간의 비밀스러운 담합이 불거지기도 한다. 음모라고 하기엔 좀 짧고 단발적인 느낌이지만 이런 어두운 면이 그린란드를 더욱 황폐화시키는데 앞장서는 거라면 자원은 축복이 아닌 저주로 여겨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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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말한 예비 자금도 포함한 금액입니다.”

약간 당황한 쿠픽 에녹슨은 종이를 받아들었다. 숫자를 읽은 그가 미소와 함께 말했다. 

“이만하면 합리적인 거래 같군요. 너무 서두르는 건 아닌가 싶지만 의회에서 말이 나올 일은 없을겁니다.

“흡족하네요.”

그들은 다시 한 번 손을 마주 잡았다. 패더슨은 자신들의 법칙을 강요한 상대의 손을 부서질 듯이 잡았따.

“프로팩스틴이 너무 늦지 않게 문제를 제기해 준다면 올해가 끝나기 전에 개발권을 철회할 수 있어요. 다만 단 한가지…개인적인 조건을 젓붙이죠.”

P.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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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래에서 작가가 보여주려고 한건 다수의 그린란드인들은 투펙(물개나 순록 피부로 만든 텐드)과 개썰매 같은 필수적인 물건들엔 자신들이 딛고 있는 땅에서 나는 석유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자신들은 석유라는 자원에는 관심도 없고 필요도 없는 아이러니 때문에 혼란을 겪고, 땅을 빼앗기며, 누군가는 가족을 빼앗기기도 하는 것이다. 자연을 지키겠다는 숭고함보다는 자신의 집과 가족을 ‘지금까지처럼’ 유지하겠다는 고집이 더 폐쇄적이고 격하게 만든 것이다.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덴마크 경찰청 출신 경찰 '카낙 아드리엔슨'의 그린란드 파견은 어쩌면 더 큰 이야기로 가기 위한 도움닫기라고 보면 되는데, 아무리 외지에서 온 사람이라고 해도 너무 낯설게 대하는 건 쉽게 이해가 되진 않았다. 이런 상황을 위해 매우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라는 배경을 깔고 가긴 하지만 그러기에도 카낙의 사람들은 너무 견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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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신다면요. 하지만 볼게 별로 없을 거예요.”

“왜죠?”

“온통 피투성이라 어슬렁거리는 짐승들을 유인할 위험이 있었어요. 근처에 북극늑대들이 꽤 있거든요. 여우는 말 할 것도 없지요.”

“그래서요?”

“그래서….제 딸에게 깨끗이 치우라고 했습니다.”

“뭐라고요?”

‘아무리 이곳이 CSI과학수사대도, O.A. 드레이어의 탐정소설도 아니라지만 두 살인 현장에 락스물을 씨얹을 만큼 형편없는 고싱라니?!”

“안전 떄문만은 아니예요.”

노인의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본 아푸티쿠가 끼어들었다.

“이누이트 문화에서는 인간의 피를 아무런 조치 없이 그대로 흐르거나 고여 있도록 두지 않아요. 빨리 닦아내지 않으면 죽은자의 영호이 영원히 떠돈자고 믿거든요.”

P.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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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의 추적 방식은 매우 투박하다. 도시에서 일어난 ‘맹수’의 살인사건이라면 먼저 CCTV부터 시작하고 행적을 좇아가는 단순함부터 시작하겠지만 이곳에서의 추적은 너무나 다를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참고인을 찾는 것 조차 어려우니 살인사건에 대한 추적은 조금 느리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살인 사건의 배후를 따라가는 것 역시 시원하다기 보다는 그냥 책장이 넘어가면서 껍질이 하나씩 벗겨져가는 기분이다. 게다가 정확한 사건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아픔의 상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까지 드니 작가가 쓰고 싶었던 감정에는 잘 도달하는 것 같다. 


소설이 전체적으로 대도시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루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조금은 느리고 조금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야기가 꼬이기도 한다.만약 미국의 알래스카에서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다면 조금은 느낌이 달라졌을까? 아마 꽤나 많은 부분이 달라졌을 것 같다.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We’re American!”이라고 두 팔을 벌리며 어꺠를 으쓱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느낌으로는 이런 어두운 스토리가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그린란드라는 국토의 80% 이상이 눈과 얼음인 땅, 그 나머지 부분의 10%도 안되는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아마 자연을 견뎌내는 어려움보다 인간에 대한 분노가 더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 나왔던 <윈드리버>(2017, 테일러 쉐리던 감독)와 전체적인 느낌이 비슷하다. 설원, 살인, 과거, 야생동물, 이방인.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조금 더 깊은 의미로 이 소설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인다면?

1. 놀랍게도 작가가 덴마크 출신도, 그린란드 출신도 아니다. 작가인 ‘모 말로’는 필명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이미 ‘카낙’의 후속작도 현지에서는 이미 출간되었다.


2. 책이 묵직한데, 단시간에 읽으려고 욕심내기보다는 조금 천천히 읽어보면 묵직함을 느낄 수 있겠다. 


3. 사건을 따라가는 담담한 시선과 배경이 주는 생경함, 전반적으로 차가움이 감도는 범죄소설을 원한다면 추천, 번뜩이는 직감에 의존하는 추리형 주인공을 원하거나 피가 낭자한 살인현장이 나오길 기대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도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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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김정 지음 / 부크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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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포인트는?

저자가 ‘아나운서’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은 아나운서 성공수기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해고 당한’ 前 아나운서라는 걸 알고서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대한 선입견을 나도 모르게 가졌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어떤 내용이 있는지 더 궁금해졌을 수도 있는데, 책 속에서 역시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모든 걸 ‘퉁 쳐서’ 단순화해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런 평면적인 것이 그 사람에 덧씌워지는 선입견에 다르지 않다는 것에 격하게 공감할 수 밖에 없다.


Chapter가 에피소드처럼 짧게짧게 잘 나눠져 있지만 크게 대학 생활, 아나운서 생활, 백수-잠시 직장인 생활, 무언가 하고 있는 생활 정도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아나운서 생활에 대한 부분이 많이 궁금했지만 역시 비밀유지각서를 잘 쓴건지 굉장히 격하지 않은 조심스러움이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친구들과 놀이공원을 갔다가 부재중 전화를 보거 그만 나오라는 통보전화인줄 알고 놀이기구 뒤에서 그 번호로 전화를 걸고 또 걸었다는 것에서는 방송국이라는 기관이 가진 이미지와 너무 맞지 않는 듯 하다. 전화로 해고 통보를 받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할 수도,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인데다, 최소한의 예의가 없는 무지한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지만, 그런 방송국을 그만두면서 경험한 느낌이 직업이 나만을 바라보지 않으며, 결혼은 일부다처제지만 직업이 그렇지 않았다는 자조적인 표현에서 상상을 넘어 기가 찰 것 같을 것 같다. 다행히 그런 경험이 없지만, 이후 저자가 느낀 퇴사 후 기분 - 당장 마음을 다스릴 것이 그것 뿐이라 마포대교를 걸었다는 것, 한강이 시커멓게 보이고 뇌도 심장도 버퍼링에 걸린 것 같이 멍하고, 조금 지나서는 분노가 느껴지는 ? 은 아주 오래 전 자의로 사직서를 쓰고 나온 개인적인 기억과도 겹쳤는데 굳이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어도 계획된 퇴사가 아닌 이상 비슷할거라고 느꼈다.


여러가지 이야기들 속에 의외로 사람과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많다. 좋든 싫든 함께 하는 사람들과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인데, ‘첫인상’이라는 말은 많이 쓰이지만 ‘중간 인상’이란 말이 없다는 부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자신의 첫인상이 과연 마지막에도 같을지까지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는게 떠오른다. 경험 상 첫인상을 좋게 하려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마지막을 잘 보여주기 위해 개개인이 노력하는 건 본 적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우리가 ‘중간 인상’이라는 걸 알고 늘 사람들과 얘기한다면 그걸 위해서라도 잘 하려는 사람들이 넘쳐날 것 같기도 하다. 또 하나, 아나운서 지망생들이 아나운서 같은 머리, 아나운서 같은 화장을 하고, 아나운서 같은 의상을 입는 건, 그들이 지망생이지 아나운서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짜 아나운서는 아나운서처럼 보이지 않아도 아나운서라는 것. 무언가를 이뤄내면 굳이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잘 보이듯이 그 수많은 노력은 만들어내는게 아니라 저절로 보이는 순간이 오도록 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앞서 저자가 처했던 난감한 퇴사가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이긴 하지만 역시 젊은 사람의 오픈 마인드는 그런 순간도 오래 마음에 두지는 않는 듯 하다. 잠시 다른 직업을 가진 후에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과 현지 공항에 내리는 순간까지 전 직장에 대한 악감정을 마음에 두면서도, 바로 여행자의 마음이 되는 건 조금은 강심장이거나 과거를 오래 담아두지 않는 성격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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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착잡한 마음이 들까봐, 쓸데없는 감상에 젖을까봐 걱정이라는 걸 했었던가. 막상 도착하고 보니 그런 기분 띠위를 느낄 새가 없다. 여행은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이층 버스만 보고도 이렇게 들떠버렸으니 말이다. 아직 전 회사에서 그렇게 무자비한 방식으로 잘린 것에 대한 상처가 생생하게 깊을 때, 이곳 홍콩으로 여행을 오기로 한 건 참 잘한 일이었다.

P.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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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주는 잠시동안의 여유. 역시 사람은 잠시 떠나 있어 볼 필요는 있다. 다만 이건 어느정도 겪어낼만한 상황에 있을 때일 뿐, 진짜 힘들고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면 떠나봐야 소용이 없긴 하다. 어디로 가든 결국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고, 떠나기 전과 크게 달라져있지 않음에 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오히려 그런 때는 그 자리에서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는 게 더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앞서 과거를 오래 담아두지 않는 성격인 듯 하다는 건, 저자가 새로운 직장에서 참을 수 없는 몇가지 상황들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나름 장점으로 느껴진다고 얘기하는게 꼭 드라마의 장면 전환 같아서였다. 게다가 그렇게 느끼기까지 시간이 매우 짧았다는게 더욱 더 놀라운데, 이전 직장에서의 퇴사가 상처라고 하기엔 적응력이 대단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인상깊은 부분은?

책을 읽으면서 공감도 가고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걸 안게된 게 바로 직업관이었다. 저자는 회사를 나오고나서야 직업과 직장의 차이를 알게 되었던 것 같아. 즉, 직장에서 떠나는 건 직업을 잃는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처음 직장을 다닐 때만 해도 한 직장에서 5년은 다녀줘야 이력서가 깔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최근 5년 사이를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 하다. 한 직장에서 15년 20년을 넘게 있는가 하면 18개월 사이 외국계 기업 3곳을 옮긴 사람도 있다. 물론 그 사람이 지금까지 잘 적응하고 다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저자는 책에서 직장은 일을 하는 건물, 즉 공간의 개념이고 직업은 스스로를 독립시킬만한 기술과 능력이라고 표현했는데 머릿속으로만 떠돌던 두 가지 의미를 이렇게 잘 설명했다는 것에서는 감탄했다.


아나운서라는 전직 시기에 있던 여러가지 실수같은 에피소드가 많을 줄 알았는데 본인의 질문을 외우느라 게스트의 답변을 듣지 않고 다시 같은 질문을 했다든지, 출근길에 늦어 생방 직전에 들어간 것 같은 자잘한 이야기 외에는 많지 않다. 아마 유튜브를 하면서 이미 한 얘기들이어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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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에 아나운서로 일했던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하기 시작했는데, 그런 주제의 영상마다 공통적으로 달리는 댓글이 있었다. ‘이제 아나운서 아니지 않나요?’, ‘그만둬 놓고 아직도 자기가 아나운서인 줄 아느냐’는 식의 글들이었다. 나 자신도 지금 내가 월 하는 사람인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유튜브 영상을 올리든 비행기를 타든 ‘너 자신이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똑 떨어지게 설명해보라’고 요구하는 것만 같았다.

P.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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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니겠지만, 아마 그것 외에도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아서였을거라 생각된다. 그래도 그냥 웃어넘길만한 이야기들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책속에 언급된 몇몇 선배 아나운서의 실명을 알고 싶기도 하다.


이 책 제목이 저자가 압박과 불안을 벗어던지고 제 직업을 찾으러 떠나기 위해 던진 인사라고 하던데, 과연 지금은 압박과 불안을 잘 벗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당분간 자신감을 잃어가는 시간일 수는 있지만, 이런 책을 써내려감으로써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다면 독자로써도 의미를 갖게 될 듯 하다. 방송일을 했다고는 하지만 작가가 아닌 이상 유려한 글솜씨나 감동에서 헤어나오지 못할만큼의 글을 쓴다는 건 어려운 일인 듯 한데, 이 정도로 자신의 경험을 정리할 수 있는 건 유사한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저자가 프로 프리랜서 또는 ‘곧’ 유명 유튜버를 꿈꾸는 것만큼이 책 내용으로 짐작해보면 멋지지는 않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언어로, 또는 다른 느낌으로 이야기하는 점이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 될 것 같다.


다만, 책에서도 썼듯이 ‘그녀는 자신감을 되찾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같은 동화같은 결말을 이야기하기에 저자는 너무 젊은 것 같다. 그러기에 어느 부분은 응원이 되고, 어느 부분에서는 아직 더 넘을 산이 많을거란 생각도 들었다. 짧은 시간 재밌게 읽긴 했는데,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 새로운 도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계기가 무엇인지 뉴가 묻는다면 2017년 1월 1일 회사에서 나온거라고 얘기할 수 있는 미래를 언제 맞이할지 궁금해진다.



덧붙인다면?

1. 아나운서 현직 시절의 저자를 알지 못했던건 아쉽다.


2. 제목이나 책 표지로 봐서는 어디 세계여행을 가거나 완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예컨데, 돌싱같은?) 사람의 에세이일 것 같다는 느낌이 받았다.


3. 현재 직업이 불안하거나, 여성으로써 다른 직업을 가진 여성의 삶은 어떻게 비뀔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추천, 내일 날씨가 궁금해서라기 보다는 기상캐스터 때문에 기상예보를 보는 분들에겐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부크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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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윤리하다 인공지능 윤리하다 1
변순용.이연희 지음 / 어문학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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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포인트는?

AI가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건 어찌보면 무한한 가능성이라고 표현할만한 자율성을 준 것이 큰 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기술은 양날의 검처럼 발전에 따르는 만큼의 위험을 갖게 되는 듯 하다. 인공지능, 줄여서 AI라고 부르는 기술은 어느새 ‘인간’에 조금 더 가까이 다다른 것 같다. 물론 아직까지 인간의 영역에 이르는 길이 많이 남았지만 발전 속도를 볼 때 인공지능의 윤리라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시작점에서 이전에 잘 알려진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의 제 3원칙>이 떠오르긴 한다. 그와 같은 체계적인 원칙을 정립할 수 있을지가 궁금해서 그런게 아니라, 이 3원칙이 과연 로봇에게 그걸 꼭 지켜내야 한다는 강제성을 줄 수 있을 것인지가 더 의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충분히 그 가능성을 보여주긴 한다. 그래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발생 이전의 상황에 예측을 통해 발전 방향과 해결책을 생각해보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는 걸 밝히고 있고, 이전에, 그리고 현재까지 수많은 곳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윤리 원칙을 다양하게 알려준다. 


전공자이거나 현업에서 인공지능을 다루지 않는 이상 아마 그런 내용까지 관심을 갖기는 어려울텐데, 그중에서 눈길이 가는 건 ‘신뢰가능한 AI의 4가지 윤리원칙’이 나름 잘 초기 정립되어가는 것 같다. 내용은 ① 인간의 자율성 존중, ② 해악 금지, ③ 공정성, ④ 설명 가능성의 네가지이다. 물론 이 원칙들을 하나나 설명하기도 지면 관계상 어렵지만, 이미 다른 책에서 주장했던 바이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 인용된만큼 다른 책에서도 이를 다양하게 활용할 것 같으니 직접 읽어보는 것이 더 이해헤 도움이 될 듯 하다. 


물론 이런 인공지능에 대한 윤리에 대한 이야기가 근래의 문제제기는 아니다. 앞서 잠시 언급한 ‘아이작 아시모프’부터 로봇의 기본 원칙이 만들어졌고, 인공지능 역시 그것에 기반하여 조금씩 변해왔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책에서 제시한 로봇을 위한 윤리원칙의 기존 사례들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책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에도 수정 원칙이 하나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그건 “로봇은 인류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되며, 위험에 처한 인류를 방관해서도 안된다(A robot may not injure humanity, or, through inaction, allow humanity to come to harm)”인데 이 역시 상호보완적인 부분이므로 인공지능에 대한 것 연시 같은 관점으로 보게 될 것 같아서이다. 이 밖에도 ‘데즈카 오사무의 로봇 10원칙’, ‘SPSRC(Engineering and Physical Research Council)의 로봇 원칙’, ‘일본의 AI 연구개발 원칙’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주고 있는데 이 부분이 얼마나 중요하고 많은 기관, 국가에서 신경쓰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인공지능에게도 윤리라는 기준이 정해져야 함을 잘 설명한 부분은데,책 앞부분에서 이미 모럴 튜링테스트(MTT)를 통해 윤리를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은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것이 잘 만들어지고 인공지능이 잘 이해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점이긴 하다. 즉 어떤 기계적인 기준을 ‘윤리’라는 범위로 기억시키고 따르게 하는 것까지는 가능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에 대해 ‘도덕성’이 만들어진다는 건 인간이 아닌이상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것을 도덕적인 발달단계로 볼 수 있는지 역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에서 말하는 많은 내용이 그저 이론서로 보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은 책을 덮는 순간까지 지울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불가능’이라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인공지능의 모든 것을 인정하기엔, 책의 앞부분에서 밝혔듯이 그런 모럴 튜링테스트조차 정답만을 선택해 그냥 통과하여 ‘윤리적인 것 처럼 보이기만 하려는’ 인공지능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어디까지를 믿어야 하고, 어디까지를 의존해야 하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게 가장 무서운 부분일거라는 것이다. 그래서 단 한번도 그것을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사용자의 입장에서도 고민해봐야 할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상깊은 부분은?

윤리적인 것을 무조건 교과서적인 법률이나 관습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기보다는 우리의 경험속에 어떻게 드러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게 좋을 것 같다. 책에서는 ‘창작’과 관련되어 경험하게 될 미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과연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것을 어디까지 창작으로 보고, 어느 범위까지를 저작권에 포함시킬지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인공지능의 ‘예술적 감각’이 점점 그 영향력을 펼쳐 가면서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심각한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다. 단순한 이미지부터 음악, 영화에까지 인공지능의 창작물이 생겨난다고 하니 그저 먼 미래의 일은 아닌 것이 확실할 듯 한데, 책에서는 인공지능이 작곡했다는 것과 더불어 IBM의 왓슨이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 양식을 학습한 후 디자인했다는 조형물에 이르면 그저 따라하는게 아니라 학습한 후 그것을 기반으로 창작한 것이라는 데 이의가 없을 것이기도 하다. 창작하는 인공지능이라는 것 역시 최소한 전무全無한 것에서 만든게 아니라는 것에서 무언가 기초 데이터가 있기에 가능하지만 그 이후에는 인공지능에게 준자율성 또는 자율성을 위힘한다고 한다면 그렇게 생겨난 창작물에 대한 책임 역시 인공지능에게 전부 맡겨버릴 수 있다는 위험성이 꾸준히 논의되어야 한다는데 동감한다. 관심있는 부분이어서 이와 관련된 내용이 많았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전체적인 지면을 생각하면 더 많이 할애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긴 하다.


책을 받아 든 순간부터 떠오른 영화가 있었는데 바로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 (1999,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책에서도 유사한 관점으로 소개되었기 때문인데, 의외로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비슷했다. 이에 영화 말미에 앤드류는 진정으로 인간이 되기 위해서 유한한 삶을 택하게 된다. 즉 자신의 몸을 서서히 늙어가도록 수술한 것이다. 그의 몸은 결국 제조된 지 200년 만에 작동이 멈추게 되고, 그는 죽음과 동시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인정받게 된다. 이 영화 뿐 아니라 인공지능이나 미래의 로봇을 다룬 영화들에 이야기들도 언급되는데 앞서 나온 여러가지 사례들과 맞물려 구체적인 모습을 상상할 수 있어 좋았다. 단, 이런 사례들이 윤리적인 것과는 깊게 연관될지는 부족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스토리에만 집중했어서 또는 원래 색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서일 수 있는데, <그녀 Her>(2014, 스파이크 존즈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단적으로 보다면 거기서의 인공지능을 윤리적인지 아닌지 따지기는 어렵다는게 그 이유이다. 그건 윤리 이전에 그저 잘 만든 인터페이스이었기 때문이다. 윤리와의 문제라면 그걸 그 이상으로 생각한 주인공에 관해 더 따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거기에 최근의 일이긴 하지만 의료에서 사용되는 여러가지 로봇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다른 분야에 비해 수동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에서 아직은 윤리의 문제보다 그것을 다루는 ‘인간’의 의료사고에 대한 대처가 더 중요할거라는 생각이 들어 좀 더 발전이 된 후 논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수많은 곳에서 인용되지만 아직 정답을 내지 못하는 '터널 딜레마'에 대해서도 다루는데 지금 인간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과 다르게 인공지능은 이에 대해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겠다(다만 그게 도덕적인 비난에 처하더라도, 그에 대해 입력한 것에 기반한 가장 윤리에 가까운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는 생각에 그걸 어떻게 하면 더 복잡하고 도덕적인 경험 Learning을 시킬지가 더 중요할 듯 하다.


읽으면서 어느 교육과정의 교재로서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두꺼운 책에서 요리조리 끌어다 하는 것보다는 짧게 단위별로 나눠서 설명하기가 편할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해외 문서나 저널을 인용한 부분이 너무 많다. 저자의 고민이 없었다기 보다는 내용 상 다양한 분야의 참고문헌이 있어야 하겠고, 그러다보니 유기적인 앞뒤 연결이 어려워 내용이 중간중간 끊긴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아마 저자에게 좀 더 많은 시간과 최근의 topic을 연구할 시간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다양한 이야기를 다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좀 아쉽다. 그럼에도 뒷 부분의 우리나라 윤리 가이드라인의 기본틀과 핵심요소는 전공자 혹은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한번 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덧붙인다면?

1. 사례가 생각보다 부족하다. 책의전체 분량에 비해서는 다양한 분야를 다루긴 했는데, 그러다 보니 내용에 깊이 들어가지 못한 건 아쉽다.


2. 참고문헌에 있는 다양한 책들이 있는데, 인공지능에 대해 깊이 알고 싶다면 이 책들 중 2~3 권정도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3. 인공지능에 관심이 있었고, 앞으로 다가올 인공지능의 도덕적 다양성에 관심이 간다면 추천,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인공지능 외 별로 관심이 없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어문학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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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피터 스트라우브 지음, 김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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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포인트는?

조금은 의심스럽고 의뭉스러운 ‘부적’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공존하는 두 개의 세계를 오고가는 10대 소년의 모험을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부적’의 역할이 분명 있지만, 그보다는 좀 더 판타지적인 제목도 어울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평행세계(책에서 다루는 건 일반적인 ‘평행’과는 조금 그 결이 다르긴 하다)를 다룬 소설과 영화들이 워낙 많아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이 책이 1984년에 처음 나왔다는 걸 생각하면 오히려 그 작품들보다 더 새롭고 놀라웠을 것도 같다. 어쨌든 이 책은 ‘현실’과 ‘판타지’를 오고가는 것이 가장 큰 사건의 전환을 보여주는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누구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루이스 캐럴 작)를 떠올릴텐데 만약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비주얼은 확실히 다르겠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제법 비슷한데, 특히 주인공인 ‘잭 소여’가 상상의 목소리를 듣거나 생각지 못한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되는 건 인물이 겪게 되는 감각적인 느낌으로써는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스피디 파커’라는 노인에 의해 지금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테레토리’)를 알게 되었다고 해도 그곳을 향하게 되는 건 순전히 ‘잭 소여’의 일차원적인 목적이 가장 크다. 바로 자신의 엄마인 ‘릴리 카바노’가 건강이 좋지 못하고, 그것이 테레토리의 여왕(이 두 인물이 동일시된다!)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바로 부적이 필요한 부분이다-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므로 여왕을 위험에서 구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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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을 찾아야 한다, 얘야. 부적을 찾아서 안전하게 가져와야 해. 어깨가 무겁겠지만 그 일을 마치고 나면 한결 성장해 있을 거란다.”

스피디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한 나머지 잭은 스피디의 주름진 얼굴을 눈을 가늘게 뜨고 보고 있었다. 흉터있는 사내, 외곽경비대의 캡틴. 여왕. 포식자처럼 자기 뒤를 쫓아오는 모건 슬로트. 영토 반대편에 있는 악의 저택. 어깨가 무거웠다.

P. 143(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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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렇게 쉽게 모험을 결심하는 ‘잭 소여’가 의협(義俠)적인걸까? 하지만 글을 읽어나가다 보면 그보다는 너무 단순히 엄마를 구하겠다는 마음만으로 두 세계를 넘나들게 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이 들 수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이를 더욱 ‘소년적’인 느낌으로 만드는 건 살고 있던 동부에서 서부까지 이르는 그 길을 횡단하는 로드무비라는 형식을 보여준다는데 더 판타지스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길을 떠난다고, 집에서 더 멀어진다고 해서 더 성장한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이는 스티븐 킹의 이전 소설인 <스탠바이 미>에서 실종된 아이를 찾겠다며 친구들과 모험을 떠나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어쨌든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무언가를 찾아가는 목적을 가진 여정은 누군가를 성장시키는 어떤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것 아닐까? 이 소설에서도 역시 여러가지 상황을 통해 소년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어른스럽지 못함을 많이 보여주고 그것에 대한 비판을 냉정하게 대한다. 판타지 세상인 ‘테레토리’에도 그 곳만의 규칙과 정의, 그에 반하는 두려움와 공포가 사람들을 지배하는데, 사실 이런 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빌런의 우스꽝스러움과 비교되기엔 다분히 사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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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머나먼 서부까지 여왕이 아프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채 얼마 안 되어, 모건은 기괴하게 뒤틀린 노예들을 광산에서 다시 동쪽으로 이송했다. 이 노예들을 감독하는 자들 중에는 훔쳐 온 울프족 외에 더 기이한 생명체들도 있었다. 감독들의 우두머리는 늘 채찍을 가지고 다니는 끔찍한 사내였다. 

(증략)

소문에 의하면 일이 정점에 이르자 모건이 채찍을 가진 사내를 동쪽으로 다시 불렀다는데, 앤더스는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몰랐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때때로 뼈만 앙상하니 왠지 모르게 섬뜩해 보이는 작은 소년을 데리고 다니던 그 사내가 사라진 것이 그저 흐뭇할 뿐이었다.

P. 338(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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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에 대해서도 여러 부분을 할애해서 묘사하는만큼 옳지 않음에 대해서는 여지없는 비판을 가하는 것이 역시 ‘스티븐 킹’다움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전에 스티븐 킹의 다른 소설을 읽고 남겼던 서평에도 있지만, 스티븐 킹은 무언가를 비판하는 것에 관용 따윈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쯤에서 떠오르는 또 한가지. 한번쯤 영미소설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미 주인공 이름에서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떠올렸을 것 같다. 애니메이션이 아닌 책으로 접한 <톰 소여의 모험>은 생각보다 진중하고 무겁기도 하다. 주지하자면, 그 이야기 역시 미시시피 강변에 위치한 상상의 마을 세인트피터스버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톰 소여와 친구들의 신나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긴 강, 그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사건과 그것을 바라보는 소년의 시선. 어떤 이는 그것을 어른을 향한 풍자라고 할 것이고, 어떤 이는 어른들의 반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이 소설이 ‘부적’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을지는 두 작품 모두를 읽어본 사람들의 상세한 차이 비교를 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주제넘게 이 소설을 판타지라는 상상의 나래를 자극하는 카테고리에 넣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조금 다른 형태의 성장소설 정도로 보는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가 <해리 포터>를 읽으며 마법에 쾌감을 느꼈다면 시간이 지나며 느껴지는 그들의 성장과 성숙이 더 크게 와닿는 것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어서이다. 다만, 과거의 상처를 잘 다듬어 멋진 성인으로 성장하는 소설로 보기에 그 과정은 조금, 아니 조금보다는 조금 더 엉뚱하긴 하다. 


인상깊은 부분은?

번역이 되어나오는 한 단계로 인해 ‘스티븐 킹’과 ‘피터 스트라우브’의 공저라는 것이 어느 부분에서 경계 파악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피터 스트라우브’가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작품이 1~2개, 그나마도 아주 예전에 나왔을 뿐인만큼 비교적 덜 알려져 있어 어떤 작품에서 어떤 형태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간간히 ‘아! 이건 스티븐 킹이 쓴 부분이다’라는 걸 느끼게 하는 문장이 있는 것 같은데, 이 역시 번역가의 센스라면 얼마든지 유사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부분이므로 콕 찝어내기가 쉽지 않다. 굳이 생각해 본다면 ‘스티븐 킹’은 스릴러와 인간 내면에 대한 부분을, ‘피터 스트라우브’는 모험 부분을 썼을거라 추측은 해보지만 이 역시 개인적인 판단일 뿐이므로 누구의 필력이 더 많이 들어갔는지는 책읽기를 마친 후에도 잘 알 수가 없다. 이런 때는 두 사람의 특징을 잡아내기 보다 전체적인 분위기만 따라가는게 책을 읽어나가는게 도움이 될 듯 하다.


솔직히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되는 2권에 이르기까지 1권은 좀 이야기가 늘어지는 부분은 있다. 하지만 전체가 1,200 page가 넘는 방대한 양 중 약 500여 page에서 펼쳐지는 내용이 늘어진다고 한다면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기대를 하게 될까? 굳이 늘어지는 부분이라고 표현한 건 인물 소개와 배경 설명에 다분히 많은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얘기했지만 소년이 미국 횡단을 해나간다는게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데다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사람들 역시 드라마틱한 마법사나 초능력자가 아니기 때문에 무언가 눈이 번쩍, 긴장감이 백배가 될만한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물들의 ‘특별한’ 요소는 그 인물을 정확히 이해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낯설게까지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 인물의 말과 생김새, 그 주변 인물을 잘 이해해야 빠르게 진도가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권 중반쯤 되면 조금은 빠르고 시각적으로도 와닿는 액션 장면들이 많아지는데, 왠지모르게 소소한 마법보다는 훈련된 고도의 군인들이 전투를 펼쳐야 할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1권에서 중세의 성을 떠올리는 여러가지 상황들을 떠올리면 최소한 그만큼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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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은 우지의 총신을 지렛대 삼아 더 빠르고 더 힘차게 상자 뚜껑을 들어 올렸다. 그들은 ‘초토화된 땅’을 거의 지나가고 있었지만 잭은 여전히 기차를 너무 오래 세워 놓기가 찜찜했다. 기관총 상자를 통째로 운전실로 가져갈 수 있다면 좋을 테지만 상자가 너무 무거웠다. 이것은 무겁지 않다, 내 기관총이니까. 잭은 이렇게 생각하며 어둠 속에서 피식 웃었다.

P. 406(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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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인 건 기존의 스티븐 킹의 작품에 비해 등장인물이 많지가 않다는 것이다. 원서 기준으로 이정도 분량이라면 읽어나가다 다시 앞으로 갈 법한데 이번에는 그럴 정도가 아니기도 했다. 다만 앞서 얘기했듯이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오면 이름과 특징은 잘 이해하는 게 좋겠다.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로 등장하는 ‘울프’는 다른 판타지 소설에서 마법사가 낯선 곳에서 만나는 요정 같은 존재일 것이다. 다만 ‘커다란 털복숭이 야수 소년’이었다는 게 아주 큰 다른 점이겠지만. 또한 현실에서도 그리고 테레토리에서까지 잭을 쫓는 빌런 ‘모건 슬로트’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닌만큼 충분히 싸워볼만한 적이라는게 긴장감을 계속 주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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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트는 기차역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오리스가 이쪽 세계로 맨 처음 순간이동 했을 때를 생각해 보았다. 그 때를 떠올리며 향수를 느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참으로 기괴하다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는 거의 죽을 뻔했던 것이다. 아니, 두 사람 다 거의 죽을 뻔 했다. 하지만 그것은 1950년대 중반의 일이고, 이제는 그 자신이 50대 중반이다. 그 차이는 이 세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P. 300(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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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도 끝도 없이 소비되는 악당이라면 이름조차 필요하지 않을 수 있겠으나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주인공을 힘들게 하는 악당으로써 나름의 사연도 가진 ‘모건’에 대해서는 더 시각적인 극강의 힘을 보여주지 못하는 게 아쉽긴 하다. 하지만 잭이 주변에 적응을 못하고 허둥대고 있을 때 여유로운 모습을 보면서 다른 미디어를 통해서 보여지게 된다면 좀 더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기발랄한 스토리, 익숙하지만 살짝 색다른 배경과 인물들이 이야기를 보여주는만큼 색다른 기분으로 읽어볼만한 소설로 충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기존에 보아 오던 ‘스티븐 킹’의 소설에 비해 스토리에 응집력이 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두 사람의 공저여서 그런건지, 아니면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앞 부분에 다소 사족같은 부분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같은 주인공으로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면 또 다시 읽어볼 것 같다.


덧붙인다면?

1. 표지에 따르면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화 예정이라고 하는데, 판타지여서 그런게 아니라면 역시 ‘프랭크 다라본트’(Frank Darabont)가 더 낫지 않을까 한다.


2. 역시 이번에도 번역가의 재기발랄한 번역이 있다. 어떤 원서의 내용을 바꾼건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마상에나”(P. 408, 2권)라는 말에 이어 “마상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은 100% 번역가의 능력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3. 스티븐 킹의 소설을 좋아한다면, 그리고 기존의 평행세계와는 다른 모험소설을 원한다면 추천,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를 능가할만한 판타지 소설을 기대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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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경제학 - 맨큐의 경제학 이데올로기를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스티븐 A. 마글린 지음, 윤태경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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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포인트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누가 보더라도 ‘돈’이라는 것과 직결되는 것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와 관련된 책은 저자의 이념, 성향, 심지어 단어 선택에 따라서도 다양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읽은 책은 이전에 다른 유사한 책에서는 보지 못한 표현들이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특히 ‘근대성의 신화’를 담은 학문이라고 전하기도 하는데, 정확히는 American Heritage Dictionary에서의 ‘신화’에 대한 정의에서 ‘사회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허구나 반쪽짜리 진실’이라는 의미를 matching시켜 경제학이 신화를 담고 있다고 설명하는 건 의외이기도 하다. 이런 의외의 비교도 있지만 역시 가장 ‘학구적’인 자세로 바로 선회하는데, 비즈니스 지식을 가진 사람의 공급이 제한적이지만 그 지식은 누군가가 써도 줄어들지 않는 공공재적 개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다만 이런 공공재라 해도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결과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접근성이나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 활용하는지에 따라 달라져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즉, 같은 정보를 듣고 듣더라도 체화하는 바가 다르고, 그것을 목표로 욕구하는 바가 다르다기 때문이라고는 생각이 되는데, 이와 함께 전체의 경제적인 결과물을 100이라고 했을 때 누군가가 많이 갖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는 그만큼 적게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다른 chapter이긴 하지만 홉스의 이론을 빌러 인간의 동기는 물질적 성공에 대한 ‘욕구’와 고통과 죽음에 대한 ‘혐오’로 단순하게 보고 남의 이익을 제한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이익을 추구하긴 해도 법과 통치에 순응해 안전을 추구하며 서로간의 이익을 보호받기 위해 ‘리바이어던’이라는 정치적 권력자를 쓸 수 밖에 없다는 것에 이르러서는 이 공공재라는 개념 역시 어느 정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교수’로써의 저자가 보여주는 관점을 직접적으료 표현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국가 내에서 폐쇄적인 조건들을 먼저 떠올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렇다보니 미국에서 볼 수 있는 노동과 임금의 문제, 그것이 가져오는 문제가 국민 정체성이나 공동체 안에서의 편익 뿐 아니라 그 안에서의 한계 때문이라는 점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면서, 뒷부분에서는 일방적익 국민공동체에 대한 열광(민족주의나 전체주의를 그것으로 보고 있다)은 누르고 ‘특수단체’의 이익보다는 국익을 우선해야 하고 이를 위해 경제학자는 국민-국가와 공생해야 한다고까지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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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업해외 이전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미국 중부 제조업 공장, 노동자, 간신히 직장에 다니고는 있지만 1970년대 이후 실질 임금이 정체한 평범한 미국 노동자의 이익을 거대 자본가 이익과 동등한 국지적 이익이라고 보지 않는다. 국민 집단에 반대하여 하부 국가적 또는 국제적 집단을 이상화하려는 의도는 없다. 

(중략)

역사적으로 관용이라는 시험을 높은 성적으로 통과하지 못한 것은 하부 국가적 공동체도, 국민도 마찬가지이다. 민족, 종교, 문화 정체성 같은 하부 국가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구축됐지만, 국민이라는 특권적 지위를 얻지 못한 하부 국가적 집단을 서로 이해하며 지내야 하고, 국가는 이러한 집단에 면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P. 326 ~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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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경제활동의 주체에 대해 모든 관점을 공동체에만 국한하지는 않는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고 그렇기 때문에 희소성이라는 개념이 나왔으며 이것으로써 경쟁이 생겨난다고 하는데, 저자도 여러차례 말하지만 이는 내/외부 경쟁을 모두 포함하면서 경쟁과 갈등의 산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기는 해도, 이를 근거로 한 경제학의 가정이 모두 맞지는 않는다는 건 나중에 이런 주장에 대한 반박을 위해 준비해 놓은 저자의 큰 그림은 아닐까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읽고 싶었던 chapter가 <11장, 소득이 늘어도 돈에 쪼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였는데 거기의 중심적인 내용은 ‘욕구는 언제나 자산 증가 속도보다 빠르게 증가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즉, 미국에서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연소득 5만달러의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소득을 올려야 충분하다고 물으니 7만달러 정도 되면 되겠다고 하지만 진짜 7만 달러가 되면 거기에 맞는 다른 욕구가 생겨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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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경제학자는 선호도 변화를 모형화하는 대신 현재와 과거의 재화에 대해 선호도만 바뀌지 않고, 욕구가 무한하다고 가정하는 정적인 모델에 안주한다. ‘무한한 욕구’는 목적과 수단의 진화를 연구하는 경제학의 기본 가정이 됐다. 이는 편리하지만 유해한 모형이다. 경제학자는 이 허구적 모형에 기대어 선택의 문제를 연구할 때 선호도가 불변한다는 가정을 폐기하지 않고, 욕구의 변화라는 까다로운 분석 과제를 외면한다. 

P.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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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좀 더 이런 상황에 대한 분석이 가능할만한 경험적 모델에 대해 설명해주었다면 대안으로써도 검토해볼 수 있긴 할 것 같은데 그걸 100% 이해할 자신은 없으므로 ‘아는 선’에서는 현상에 대한 설명까지가 최선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길게 다뤄질거라 생각했던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에 대해 짧게 언급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우리나라의 중앙은행과는 아주 많이 달라서 국가의 관리라는 엄격한 체계와는 어울리지 않게 사금융이 지배하는 화폐와 Banking System의 구조적인 역학관계를 더 많이 알려줬다면 이에 대해 깊은 정보로 간직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럼에도 그런 의미에서 미국 내 경제적인 이론들에 대해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 많지만 다른 나라의 사례같은 부분은 기존 경제학자(조금은 오래된 이론가들)의 논문이나 가설들을 더 많이 인용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상깊은 부분은?

저자의 관심사와 주변환경(물론 교육과정을 포함한) 때문인지 거의 모든 내용이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 집중되어 있다. 어찌보면 깊고 자세할 수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왠지 선진화된 경제학 이론은 어쨌든 서구의 적극적인 Lead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의중의 배치를 무시할 수 없다. 만약 이런 커뮤니티(공공사회 정도로 생각하자)에서의 경제학을 동양의 입장에서 연구한다면 좋은 비교가 될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해서 기대를 해본다. 비판적인 시각에서의 서술이지만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와 한 짓을 미국 땅의 원주민에게 해왔고, 그들을 지배하는 것보다 아프리카 원주민을 이주시키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이익이라는 판단아래 대량 이주가 일어났으며, 그에 따라 정작 원주민이 밀려났다는 것에서는 결국 서구의 힘이 어떤 논리로 움직였다는 것에 대한 역설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사회학적인 시선에서 경제학을 인지시켜 주는 게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때는 저자가 러시아에서 겪은, 각기 다른 우유값이 불만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가격이 싼 가게에서 비싼 가게에 팔아보라는 이야기를 했다가 무안했던 이야기를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저자의 자조적인 사례이나, 결국 모든 것을 이익과 연결하여 바라보는 경제학적 접근이 남에게 생소할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조금 딴 길을 열어주자면, 책 후반부, 부유했던 시장이 어떻게 망가져갔으며, 제 3세계 국가에서 경제발전 과정에서 어떤 것을 잃었는지, 그리고 어떤 문화적인 충격을 주고, 정치적으로 변화를 겪었는가에 대해서도 알려주는데, 이 부분도 사실 지적 관심에 비해 그리 많은 내용은 아니다.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한 ‘공동체’에 대해서는 책의 앞부분에서 열거해주는 내용으로도 이해가 가긴 한다. 탈퇴의 선택여부-유대관계의 깊이만으로 모든 공동체의 의미를 다 설명하기는 어려워도 결국 이런 많은 조직의 이음을 ‘유지’해나가야 한다는 것에는 아마 동의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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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이탈에 가해지는 제약이 언제나 이처럼 극단적인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려는 요점은 공동체 이탈은 스포츠 동호회 탈퇴와 달리 윤리적, 법적, 심리적, 경제적 비용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설령 동호회가 공동체와 다를지라도 여러 동호회에서 생기는 인맥을 통해 공동체가 형성되지는 않을까? 가능하다. 하지만 효과는 미심쩍다. 조지프 슘페터의 비유를 빌리면 마차 스무 대를 연결한다고 해도 기차가 되지 않듯 인맥을 중첩한다고 해도 공동체가 되지는 않는다.

P. 54 ~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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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사실 미래의 전망이 늘 잘 들어맞지만은 않는다.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학자들의 이야기들을 다 모아놓는다고 정답이 되지 않는 것처럼 저자의 이론 역시 모두 진리라고 고정하기엔 무리가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그래서 이런 것에 비추어 본다면 저자의 수많은 공동체와 관련된 주장 역시 만점짜리 주장이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 수 밖에 없다. 


다만, 전공자가 아니고 저자의 연구를 기반으로 연구를 한 바도 아닌 이상 저자가 알려주는 많은 내용 중 가장 반기를 들만한 내용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시간을 들여서 읽어나가는데 갑작스러운 회계이론이나 경영수학을 굳이 몰라도 된다는 건 장점이 될 듯 하다. 


또한 굳이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았지만 국가보다 '공동체'(Community)라는 용어를 더 가치있게 바라보는 것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Communism)를 많은 무게를 두고 있다는게 자주 떠오른다. 교수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마르크스를 싫어하지 않는 인본주의자'라는 범주가 어디까지일지는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 다만 이데올로기적 관점을 떼고 보더라도 비전공자로써 이 책에 대해서는 주류 전공자들이 알고 있는 <맨큐의 경제학>에 대해 ‘그 이데올로기를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책의 마케팅 포인트이기도 하다)이라는 것에 얼마나 동의할지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v. 덧붙인다면?

1. 최근 본 ‘경제학’, ‘돈’, ‘재화’에 대한 책 중 유일하게 여러가지 그래프와 복잡한 계산식이 없다. 시간을 두고 잘 읽고 이해만 잘 해나가면 된다.


2. 인물(이전의 경제학자들), 많은 논문(저널)의 인용, 그리고 이론들이 소개되고 게다가 출처도 표기되는 바, 대학의 경제학 또는 경영학의 교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3. 투자나 돈의 흐름과 함께 사회학적인 경제학을 바라보는 관점을 알아보고 싶다면 추천, ‘맨큐의 경제학’이 무엇인지 들어본 적 없고 경제의 흐름에 관심없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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