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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 지음 / 부크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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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포인트는?

저자가 ‘아나운서’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은 아나운서 성공수기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해고 당한’ 前 아나운서라는 걸 알고서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대한 선입견을 나도 모르게 가졌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어떤 내용이 있는지 더 궁금해졌을 수도 있는데, 책 속에서 역시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모든 걸 ‘퉁 쳐서’ 단순화해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런 평면적인 것이 그 사람에 덧씌워지는 선입견에 다르지 않다는 것에 격하게 공감할 수 밖에 없다.


Chapter가 에피소드처럼 짧게짧게 잘 나눠져 있지만 크게 대학 생활, 아나운서 생활, 백수-잠시 직장인 생활, 무언가 하고 있는 생활 정도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아나운서 생활에 대한 부분이 많이 궁금했지만 역시 비밀유지각서를 잘 쓴건지 굉장히 격하지 않은 조심스러움이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친구들과 놀이공원을 갔다가 부재중 전화를 보거 그만 나오라는 통보전화인줄 알고 놀이기구 뒤에서 그 번호로 전화를 걸고 또 걸었다는 것에서는 방송국이라는 기관이 가진 이미지와 너무 맞지 않는 듯 하다. 전화로 해고 통보를 받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할 수도,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인데다, 최소한의 예의가 없는 무지한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지만, 그런 방송국을 그만두면서 경험한 느낌이 직업이 나만을 바라보지 않으며, 결혼은 일부다처제지만 직업이 그렇지 않았다는 자조적인 표현에서 상상을 넘어 기가 찰 것 같을 것 같다. 다행히 그런 경험이 없지만, 이후 저자가 느낀 퇴사 후 기분 - 당장 마음을 다스릴 것이 그것 뿐이라 마포대교를 걸었다는 것, 한강이 시커멓게 보이고 뇌도 심장도 버퍼링에 걸린 것 같이 멍하고, 조금 지나서는 분노가 느껴지는 ? 은 아주 오래 전 자의로 사직서를 쓰고 나온 개인적인 기억과도 겹쳤는데 굳이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어도 계획된 퇴사가 아닌 이상 비슷할거라고 느꼈다.


여러가지 이야기들 속에 의외로 사람과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많다. 좋든 싫든 함께 하는 사람들과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인데, ‘첫인상’이라는 말은 많이 쓰이지만 ‘중간 인상’이란 말이 없다는 부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자신의 첫인상이 과연 마지막에도 같을지까지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는게 떠오른다. 경험 상 첫인상을 좋게 하려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마지막을 잘 보여주기 위해 개개인이 노력하는 건 본 적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우리가 ‘중간 인상’이라는 걸 알고 늘 사람들과 얘기한다면 그걸 위해서라도 잘 하려는 사람들이 넘쳐날 것 같기도 하다. 또 하나, 아나운서 지망생들이 아나운서 같은 머리, 아나운서 같은 화장을 하고, 아나운서 같은 의상을 입는 건, 그들이 지망생이지 아나운서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짜 아나운서는 아나운서처럼 보이지 않아도 아나운서라는 것. 무언가를 이뤄내면 굳이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잘 보이듯이 그 수많은 노력은 만들어내는게 아니라 저절로 보이는 순간이 오도록 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앞서 저자가 처했던 난감한 퇴사가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이긴 하지만 역시 젊은 사람의 오픈 마인드는 그런 순간도 오래 마음에 두지는 않는 듯 하다. 잠시 다른 직업을 가진 후에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과 현지 공항에 내리는 순간까지 전 직장에 대한 악감정을 마음에 두면서도, 바로 여행자의 마음이 되는 건 조금은 강심장이거나 과거를 오래 담아두지 않는 성격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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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착잡한 마음이 들까봐, 쓸데없는 감상에 젖을까봐 걱정이라는 걸 했었던가. 막상 도착하고 보니 그런 기분 띠위를 느낄 새가 없다. 여행은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이층 버스만 보고도 이렇게 들떠버렸으니 말이다. 아직 전 회사에서 그렇게 무자비한 방식으로 잘린 것에 대한 상처가 생생하게 깊을 때, 이곳 홍콩으로 여행을 오기로 한 건 참 잘한 일이었다.

P.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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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주는 잠시동안의 여유. 역시 사람은 잠시 떠나 있어 볼 필요는 있다. 다만 이건 어느정도 겪어낼만한 상황에 있을 때일 뿐, 진짜 힘들고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면 떠나봐야 소용이 없긴 하다. 어디로 가든 결국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고, 떠나기 전과 크게 달라져있지 않음에 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오히려 그런 때는 그 자리에서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는 게 더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앞서 과거를 오래 담아두지 않는 성격인 듯 하다는 건, 저자가 새로운 직장에서 참을 수 없는 몇가지 상황들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나름 장점으로 느껴진다고 얘기하는게 꼭 드라마의 장면 전환 같아서였다. 게다가 그렇게 느끼기까지 시간이 매우 짧았다는게 더욱 더 놀라운데, 이전 직장에서의 퇴사가 상처라고 하기엔 적응력이 대단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인상깊은 부분은?

책을 읽으면서 공감도 가고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걸 안게된 게 바로 직업관이었다. 저자는 회사를 나오고나서야 직업과 직장의 차이를 알게 되었던 것 같아. 즉, 직장에서 떠나는 건 직업을 잃는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처음 직장을 다닐 때만 해도 한 직장에서 5년은 다녀줘야 이력서가 깔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최근 5년 사이를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 하다. 한 직장에서 15년 20년을 넘게 있는가 하면 18개월 사이 외국계 기업 3곳을 옮긴 사람도 있다. 물론 그 사람이 지금까지 잘 적응하고 다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저자는 책에서 직장은 일을 하는 건물, 즉 공간의 개념이고 직업은 스스로를 독립시킬만한 기술과 능력이라고 표현했는데 머릿속으로만 떠돌던 두 가지 의미를 이렇게 잘 설명했다는 것에서는 감탄했다.


아나운서라는 전직 시기에 있던 여러가지 실수같은 에피소드가 많을 줄 알았는데 본인의 질문을 외우느라 게스트의 답변을 듣지 않고 다시 같은 질문을 했다든지, 출근길에 늦어 생방 직전에 들어간 것 같은 자잘한 이야기 외에는 많지 않다. 아마 유튜브를 하면서 이미 한 얘기들이어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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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에 아나운서로 일했던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하기 시작했는데, 그런 주제의 영상마다 공통적으로 달리는 댓글이 있었다. ‘이제 아나운서 아니지 않나요?’, ‘그만둬 놓고 아직도 자기가 아나운서인 줄 아느냐’는 식의 글들이었다. 나 자신도 지금 내가 월 하는 사람인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유튜브 영상을 올리든 비행기를 타든 ‘너 자신이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똑 떨어지게 설명해보라’고 요구하는 것만 같았다.

P.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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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니겠지만, 아마 그것 외에도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아서였을거라 생각된다. 그래도 그냥 웃어넘길만한 이야기들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책속에 언급된 몇몇 선배 아나운서의 실명을 알고 싶기도 하다.


이 책 제목이 저자가 압박과 불안을 벗어던지고 제 직업을 찾으러 떠나기 위해 던진 인사라고 하던데, 과연 지금은 압박과 불안을 잘 벗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당분간 자신감을 잃어가는 시간일 수는 있지만, 이런 책을 써내려감으로써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다면 독자로써도 의미를 갖게 될 듯 하다. 방송일을 했다고는 하지만 작가가 아닌 이상 유려한 글솜씨나 감동에서 헤어나오지 못할만큼의 글을 쓴다는 건 어려운 일인 듯 한데, 이 정도로 자신의 경험을 정리할 수 있는 건 유사한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저자가 프로 프리랜서 또는 ‘곧’ 유명 유튜버를 꿈꾸는 것만큼이 책 내용으로 짐작해보면 멋지지는 않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언어로, 또는 다른 느낌으로 이야기하는 점이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 될 것 같다.


다만, 책에서도 썼듯이 ‘그녀는 자신감을 되찾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같은 동화같은 결말을 이야기하기에 저자는 너무 젊은 것 같다. 그러기에 어느 부분은 응원이 되고, 어느 부분에서는 아직 더 넘을 산이 많을거란 생각도 들었다. 짧은 시간 재밌게 읽긴 했는데,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 새로운 도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계기가 무엇인지 뉴가 묻는다면 2017년 1월 1일 회사에서 나온거라고 얘기할 수 있는 미래를 언제 맞이할지 궁금해진다.



덧붙인다면?

1. 아나운서 현직 시절의 저자를 알지 못했던건 아쉽다.


2. 제목이나 책 표지로 봐서는 어디 세계여행을 가거나 완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예컨데, 돌싱같은?) 사람의 에세이일 것 같다는 느낌이 받았다.


3. 현재 직업이 불안하거나, 여성으로써 다른 직업을 가진 여성의 삶은 어떻게 비뀔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추천, 내일 날씨가 궁금해서라기 보다는 기상캐스터 때문에 기상예보를 보는 분들에겐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부크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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