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낙 형사 카낙 시리즈 1
모 말로 지음, 이수진 옮김 / 도도(도서출판)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요 포인트는?

이야기의 시작은 그 어느 얼어붙은 땅의 집에서 일어난 갑작스러운 가족의 해체로 시작한다. 첫장부터 사건의 시작인건가?라고 생각했지만 인물과 ‘관계 있는’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되면 시작부터 너무 집중한건가 머리를 긁적이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극적인 첫 살인사건이 아니라고 해도 뒤에 나오는 사건들의 형태를 생각한다면 극적 장치로는 확실하게 남는다. 왜냐하면 눈과 얼음으로 덮인, 자연이 아직 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진 곳에서 동물에 의해 벌어졌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살인사건은 그 자체만으로 우리가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살인사건과 그 범인을 추적하는 형사물일 거라고만 생각한다면 이야기가 좀 장황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왜 그 땅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져야 했는지,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혀내기까지 그 역학관계에는 사람만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

그녀는 태블릿 PC의 화면을 몇 번 눌러 여러 개의 자료를 보여주었다. 얼핏 봐서는 카낙이 그린란드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검토했던, 앞서 프리무스에서 발생한 세 살인사건의 사진과 비슷했다. 동일한 방식으로 잘린 목과 파헤쳐진 복부. 동일한 방식의 분노가 만들어앵 잔인한 핏빛 행위. 사진에서 비명이 들려오는 듯 했다.

“그린오일 노동자들에게서 보인 것과 매우 비슷한 상처를 가진 두 구의 사체가 발견됐어요. 여기서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곰에 의해 먹혀버린 것 처럼 아무 흔적도, 지문도 남기지 않았다고 해요. 저 위쪽은 이곳과 같은 기술력이 없지만…”

그녀의 말에는 분명한 경멸이 담겨 있었다.

P 302 ~ 303

------------------------------------------------------

그린란드라는 거대한 미개척지에 어마어마한 자원이 발견되었다면 그 다음은? 자원이 나는 땅을 두고 동네 사람들끼리 시기와 질투로 서로를 미워하다 대량 살상을 일어난다는 일차원적인 이야기라면 아마도 중간에 읽다가 멈췄을 수도 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냉정하다. 


​이 책에서 주요 갈등요소는 첫째, 자원의 발견 그 자체이다. 자원이 발견되고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이 그린란드로 들어오면서 그를 위해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인 근로자들과 현지인들과의 갈등이 먼저 터지기 시작한다. 이는 순수혈통과 그들만의 정체성(폐쇄적으로 살아와서 그런 거일 것이다)을 중시하는 이누이트를 물들여가는 가는 것이 폭발한다. 두번째, 그린란드를 지키기 위한 환경보호론자와 에너지 기업간 집단 대 집단의 갈등이라. 이는 지금까지 이어온 자연 그대로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훼손해가는 기업과 더욱 힘들어지는 환경운동가들의 한계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이는 옳고 그름의 판단이 빠르고 더딘 것을 결정해가는 과정이 된다. 세번째로는 그린란드의 자원을 먼저 차지하기 위한 기업대 기업간의 경쟁이다. 욕심이 만들어내는 자본의 싸움은 결국 사람대 사람의 싸움보다 더 큰 상처와 회복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며, 그 전쟁터는 결국 그린란드이기 때문이다. 


살인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꽤 범인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등장인물이 많기도 하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가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사건들에 대해 묘사되면서 막연하게 누군가가 범인이겠다는 예상은 되지만 단지 직업적인 부분만 떠오를 뿐, 왜 범인인지는 도무지 그려지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살인자의 정체보다는 왜 사건이 벌어져야 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훨씬 더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게 한다. 이정도로 말하면 사건에 대한 스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설마 북극곰이 공격한 것과 비슷한 상처를 가졌다고 진짜 북극곰이 죽인거라고 생각할 독자는 없을 것 같다. 상식적으로 북극곰이 설마 ‘그런 곳’에서 사람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걸 인정하지 않는 경찰들이 답답해지기도 하지만. 



인상깊은 부분은?

살인 사건만으로도 벅차지만, 어느 집단이든 앞잡이는 있기 마련인 만큼 이 소설에서도 고위층과 이익집단, 이를테면 석유회사 간의 비밀스러운 담합이 불거지기도 한다. 음모라고 하기엔 좀 짧고 단발적인 느낌이지만 이런 어두운 면이 그린란드를 더욱 황폐화시키는데 앞장서는 거라면 자원은 축복이 아닌 저주로 여겨질 수 밖에 없다. 

------------------------------------------------------

“당신이 말한 예비 자금도 포함한 금액입니다.”

약간 당황한 쿠픽 에녹슨은 종이를 받아들었다. 숫자를 읽은 그가 미소와 함께 말했다. 

“이만하면 합리적인 거래 같군요. 너무 서두르는 건 아닌가 싶지만 의회에서 말이 나올 일은 없을겁니다.

“흡족하네요.”

그들은 다시 한 번 손을 마주 잡았다. 패더슨은 자신들의 법칙을 강요한 상대의 손을 부서질 듯이 잡았따.

“프로팩스틴이 너무 늦지 않게 문제를 제기해 준다면 올해가 끝나기 전에 개발권을 철회할 수 있어요. 다만 단 한가지…개인적인 조건을 젓붙이죠.”

P. 387

------------------------------------------------------

이런 거래에서 작가가 보여주려고 한건 다수의 그린란드인들은 투펙(물개나 순록 피부로 만든 텐드)과 개썰매 같은 필수적인 물건들엔 자신들이 딛고 있는 땅에서 나는 석유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자신들은 석유라는 자원에는 관심도 없고 필요도 없는 아이러니 때문에 혼란을 겪고, 땅을 빼앗기며, 누군가는 가족을 빼앗기기도 하는 것이다. 자연을 지키겠다는 숭고함보다는 자신의 집과 가족을 ‘지금까지처럼’ 유지하겠다는 고집이 더 폐쇄적이고 격하게 만든 것이다.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덴마크 경찰청 출신 경찰 '카낙 아드리엔슨'의 그린란드 파견은 어쩌면 더 큰 이야기로 가기 위한 도움닫기라고 보면 되는데, 아무리 외지에서 온 사람이라고 해도 너무 낯설게 대하는 건 쉽게 이해가 되진 않았다. 이런 상황을 위해 매우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라는 배경을 깔고 가긴 하지만 그러기에도 카낙의 사람들은 너무 견고하다. 


------------------------------------------------------

“원하신다면요. 하지만 볼게 별로 없을 거예요.”

“왜죠?”

“온통 피투성이라 어슬렁거리는 짐승들을 유인할 위험이 있었어요. 근처에 북극늑대들이 꽤 있거든요. 여우는 말 할 것도 없지요.”

“그래서요?”

“그래서….제 딸에게 깨끗이 치우라고 했습니다.”

“뭐라고요?”

‘아무리 이곳이 CSI과학수사대도, O.A. 드레이어의 탐정소설도 아니라지만 두 살인 현장에 락스물을 씨얹을 만큼 형편없는 고싱라니?!”

“안전 떄문만은 아니예요.”

노인의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본 아푸티쿠가 끼어들었다.

“이누이트 문화에서는 인간의 피를 아무런 조치 없이 그대로 흐르거나 고여 있도록 두지 않아요. 빨리 닦아내지 않으면 죽은자의 영호이 영원히 떠돈자고 믿거든요.”

P. 338

------------------------------------------------------

살인사건의 추적 방식은 매우 투박하다. 도시에서 일어난 ‘맹수’의 살인사건이라면 먼저 CCTV부터 시작하고 행적을 좇아가는 단순함부터 시작하겠지만 이곳에서의 추적은 너무나 다를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참고인을 찾는 것 조차 어려우니 살인사건에 대한 추적은 조금 느리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살인 사건의 배후를 따라가는 것 역시 시원하다기 보다는 그냥 책장이 넘어가면서 껍질이 하나씩 벗겨져가는 기분이다. 게다가 정확한 사건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아픔의 상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까지 드니 작가가 쓰고 싶었던 감정에는 잘 도달하는 것 같다. 


소설이 전체적으로 대도시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루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조금은 느리고 조금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야기가 꼬이기도 한다.만약 미국의 알래스카에서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다면 조금은 느낌이 달라졌을까? 아마 꽤나 많은 부분이 달라졌을 것 같다.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We’re American!”이라고 두 팔을 벌리며 어꺠를 으쓱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느낌으로는 이런 어두운 스토리가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그린란드라는 국토의 80% 이상이 눈과 얼음인 땅, 그 나머지 부분의 10%도 안되는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아마 자연을 견뎌내는 어려움보다 인간에 대한 분노가 더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 나왔던 <윈드리버>(2017, 테일러 쉐리던 감독)와 전체적인 느낌이 비슷하다. 설원, 살인, 과거, 야생동물, 이방인.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조금 더 깊은 의미로 이 소설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인다면?

1. 놀랍게도 작가가 덴마크 출신도, 그린란드 출신도 아니다. 작가인 ‘모 말로’는 필명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이미 ‘카낙’의 후속작도 현지에서는 이미 출간되었다.


2. 책이 묵직한데, 단시간에 읽으려고 욕심내기보다는 조금 천천히 읽어보면 묵직함을 느낄 수 있겠다. 


3. 사건을 따라가는 담담한 시선과 배경이 주는 생경함, 전반적으로 차가움이 감도는 범죄소설을 원한다면 추천, 번뜩이는 직감에 의존하는 추리형 주인공을 원하거나 피가 낭자한 살인현장이 나오길 기대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도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