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뒤를 보는 마음 - 우리 시대의 시인 8인에게 묻다
노지영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11월
평점 :
문학평론가 '노지영'이 '우리 시대의 시인 8인에게 묻다'라는 부제를 달아 낸 책, 『뒤를 보는 마음』을 읽다가 나는 그만 깜짝 놀랐다. '김경인' 시인에 대한 인터뷰였다. 내가 무척 아껴 읽은 시인의 시집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에서 대부분의 시가 다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작품 중 하나는 「상속」이었다.
"손님은 며칠째 떠나지 않고 있다 / 손님은 나 몰래 나를 사랑하여 /
이상스럽게 쓸쓸한 어제보다 더 더러워진 손으로 / 나를 헤집어 여름을 꺼낸다 여름이 펼쳐지면 나는" 이라고 시작하는 이 시에서 '상속'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나 몰래 나를 사랑하여, 나를 온통 헤집어 여름을 펼쳐내는, 텅 빈 나의 얼굴을 거울로 비추며 나 몰래 피의 담을 넘어 내 방에 들어와 내 방을 정돈하는, '손님'에 대한 이야기만 나올 뿐이다. '손님'의 사전적 의미는 반갑게 찾아온 사람일 터인데, 이 시에서 손님의 함의는 어쩌면 오래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일 수 있고, 오랫동안 잊지 못했던 사람, 기다림의 대상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어쨌든 나의 깊은 자아, 나 스스로에게도 꽁꽁 숨겨 버린 내면의 비밀스러운 자아, 뒤틀린 꿈이 되어버린 그러한 나 자신을 '손님'의 함의로 읽었던 것이다. 그러니 왜 그녀가 쓴 시의 제목이 「상속」이었는지, 이 시가 좋아 몇 번이고 읽으면서도 나는 그것이 늘 궁금했다.
교유당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매달 필독서 한 권과 선택 도서 한 권을 읽어야 한다. 선택 도서 목록에 이 책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두 번 생각 않고 이 책을 골랐다. 여덟 명의 시인을 인터뷰한 대담집인데,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 많았지만 그보다 '김경인'이라는 이름이 반가워서였다. 어쩌면 내 궁금증이 풀릴지도 몰라. 그렇게 책은 나에게 왔다.
작가의 히스토리를 읽는 걸 좋아하고 작가의 얼굴을 보며 작품에 녹아든 그 사람의 삶을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나는 '김경인' 시인이 남자라고 생각했다. 시집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는 시인에 대한 아무런 배경지식도 없는 내게 상당히 투박하고 거친 질감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 속에서 '노지영'이 인터뷰한 김경인 시인은 내가 아는 한 옆집 언니를 닮았다. 꾸밈없이 수수하고 가히 아름거나 여성스럽다 할 수 없는 이웃 아주머니 같은 일상적 외모를 지닌, 자신의 일을 단정하고 깔끔하게 하는, 시인과 시인이 아닌 삶의 경계 짓기를 할 줄 아는, 모 대학의 교수이다. 더 당혹스러웠던 것은 이 시인이 바로 소설가 김동인의 손녀라는 사실이었다.
노지영 평론가와 김경인 시인의 인터뷰를 읽으며 그러니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가 삶을 모질게 살아가며 갈등과 번민을 거듭하게 하는 추동력이 누구에게나 있는데, 이를 만약 시작의 동인이라고 한다면, 그녀의 동인은 너무나 잘난 '피'였구나. 너무나 잘난 상속, 원하지 않는데 부여받게 되는 훈장 같은 집안의 이름. 그녀에게 그 이름, 그 피, 그 상속은 성장기의 고통이고 번민이 되었다. 그녀에게 세속의 언어를 앗아가고 그녀 자신 스스로에게 스스로에 대해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기 폐쇄적 시 쓰기를 쓰게 했다. 그런 그녀의 시 쓰기는 당연히 실패작이었을 테고, 이제 그녀는 그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어느 만큼의 자유를 얻어 비로소 자신의 언어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지만, 불경하게도 나는 '글쎄'라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내가 좋아한 시인의 시집 제목은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이다. 『뒤를 보는 마음』에서 담담한 시인의 인터뷰를 읽으며, 이제 그 시의 제목이 '상속'인 까닭을 알았다. 그녀에게 찾아드는 손님, 그녀를 헤집어 아름답고 근사한 여름을 꺼내었다가 사라지게 하는 손님, 그녀를 영영 사랑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텅 비게 하고, 수은 연못의 뒤틀린 물고기를 꺼내게 하는 손님은 바로 '상속', 거부하고 싶은 이름이다. 그 이름을 거부하고 싶은 욕망으로 그녀는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 비뚤어진 삶을 치열하게 산다. 하지만 우리가 거부하고 싶은 그 이름, 그 꿈의 자리로 우리는 항상 환원하고 만다. 우리를 번민과 갈등의 삶으로 살아가게 한 추동력, 그 시작의 동인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무거운 추를 달아 깊은 바다에 던진다고 한들 그것은 그저 잠잠히 가라앉아 있을 뿐,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 살았던 시간을 부정하고는, 우리는 그 무엇도 될 수 없다.
지금 내가 쓴 리뷰는 이 책의 한 꼭지인 '김경인' 시인과의 인터뷰 내용을 좀 더 상세히 파고든 것이다. 사실 이 책, 『뒤를 보는 마음』은 시인 여덟 명과 노지영씨가 인터뷰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시인들, 예를 들자면 이문재, 손택수, 김경인, 강은교 시인이 포함되어 있다. 이 시인들 외에 김기택, 김정환, 김해자, 신용목 시인의 '시'에 대한 철학, 시인의 내면과 시작의 태도, 삶을 살아가는 가치를 들여다볼 수 있다.
시를 읽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글들은 그저 활자와 의미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접근 가능한 곳에 있다면, 아무래도 '시'만큼은 시인의 마음이 되지 않고는 읽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노지영 평론가의 인터뷰가 담백했고, 문학을, 시를, 깊이 알고 사랑하는 사람의 질문이어서 시인들의 초상을 이끌어내는데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문재 시인의 인터뷰도 강은교 시인의 인터뷰도, 모든 시인의 인터뷰 면면이 다 좋았지만 특히 내게 강렬했던 시집과 시인, 김경인 작가를 중심으로 리뷰를 써 보았다. 시집과 더불어 시인의 마음이 되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교유당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