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탈한 하루 - 다정하게 스며들고 번지는 것에 대하여
강건모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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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을 에세이스트, 문학 편집자, 사진가, 뮤지션, 영상제작자라고 소개하고 있는 작가는 냉정한 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문학 편집자로서 제격일 것 같다. 그는 아직 발간되지 않았고 혹은 영원히 서랍 속에 잠들어 있을, 그러나 영원한 기대와 열망이 대상이 될 미완성의 소설을 쓰길 소망하는 그런 사람이다. 지금 책에서 작가는 제주도에 혼자 산다. 바람의 정원에서 글을 쓴다. 이웃들은 담이라 할 수 없는 낮은 벽을 자연스럽게 넘어 들어와 그의 정원을 차지하기도 하고, 고양이 묘선이는 작가의 다정함에 길들어 글을 쓰는 작가의 발치에 가만히 앉는다. 작가는 그렇게 글을 쓴다. 솔직히 그의 글은 조금 조심스럽다. 작가 자신이 사람을 사랑하다가 사람을 경계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연민하다가도 애틋한 마음에 잠긴다. 현실의 순간에 문득 떠오르는 상처의 유년과 조금씩 조우하다가 어느 결에 휙 돌아서 버린다. 더 많이 보여줄 것도 같은데 독자가 마음을 앞세워 다가가면 급히 꼬리를 감춘다. 마치 숨바꼭질과 같은 글, 혹은 '다정도 병'인 것이 분명한 마음 여린 한 사람의 조심스러운 자기 고백과도 같은 글이다.

그러니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글 자체가 지닌 형식적 유려함이나 의미의 명철함 보다는 그 글 자체가 전하는 분위기와 뉘앙스를 읽는다. 작가의 글은 마치 나의 글과도, 혹은 자신의 속 깊은 이야기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우리 모두의 글과도 닮았다. 아마 작가가 의도한 것은 이것이 아닐까? 그가 독자에게 바란 것은 '글'이 읽히기 보다는 '마음'이 읽히길 바란 것이다. '무탈한 하루'라는 제목이 명징하게 보여주듯 말이다. 오늘 하루도 무사했니? 나도 오늘 하루 무사했어, 너의 하루도 그러하길 바라. 아무것도 아닌듯한 평범한 하루의 안부가, 세상에 있는 누군가는 때론 슬프고 때론 고된 하루를 보냈지만 스스로를 다독이며 내일을 생각하고 있다고. 그러한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희미한 타전 소리만으로도 힘들었던 오늘은 무탈한 하루가 된다.

제주의 해풍을 맞고 한 사람의 정성과 사랑으로 땀땀이 기록된 이 담백한 에세이를 읽으며 독자들은 어느결에 스미고 번져 나를 물들이는 이 다정함의 날들에 대한 환기와 인식을 하게 될 것이다.


* 교유당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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