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뤼아르 시 선집 을유세계문학전집 121
폴 엘뤼아르 지음, 조윤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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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엘뤼아르'는 1895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병약하여 학업을 중단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으며, 전기적으로 1차,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었다. '앙드레 브레통'의 초현실주의 선언에 동참하여 초기에는 다다이즘, 초현실주의적인 시를 썼다. '살바도르 달리', '막스 에른스트' 등 예술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였으며, 문학과 회화의 경계를 허물고 삽화 시를 쓰거나 시를 하나의 이미지로 구현하고자 하였다. 그의 시 중, 「그려진 말言」이라는 작품은 '파블로 피카소에게'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제목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 시의 음악성, 회화성, 함축성 중 회화성을 강조하는 시들이 상당히 많다.

초현실주의 경향을 띠는, 이러한 초기의 시들은 상당히 파편적이다. 시가 본래 논리의 영역은 아니지만, 논리와 이성을 철저히 넘어 연결되지 않는 것들을 끝없이 나열하거나 반복함으로써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비현실적 이미지를 창조한다. 이러한 낯선 이미지들의 배열을 통해 시인은 끝없는 상상을 불러일으키며 불안전한 현실과 무질서한 세계, 영원하고 불변하는 진리는 소멸된 세상의 불완전성을 표현한다.

시인의 생애에서 후반부에 이르러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하며 그의 시 세계는 초현실주의에서 참여 시로 급격한 전환을 이룬다. 여전히 그의 시에는 '나'와 '너', '그녀', '손', '얼굴', '입술', 그리고 다양한 동물-물고기나 바람, 새, 나무, 뿐만아니라 '밤', '빛', '꿈' 등 초기 시부터 반복적으로 등장한 단어들이 자주 등장하지만, 의미를 굳이 염두에 두지 않았던 초기 시에 비하면 후기 시는 상당히 직설적이다. 민중의 평화, 자유와 독립이라는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저항시를 썼다는데, 그 대표작인 「자유」가 이러한 경향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렇게 시인의 전기적 요소, 시인의 시적 경향을 바탕으로 시를 읽다 보면 평범한 독자로선 와닿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어, 무의식이나 꿈, 무질서를 추구하는 초현실주의적 시와 사회적 실천과 저항이라는 목적이 뚜렷한 참여 시는 얼핏 보기엔 양립할 수 없어 보인다. 말하자면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던 컨트리 송 가수가 어느 날 갑자기 일렉트로닉 한 전자 음악의 추앙자가 되는 느낌이랄까. 어설픈 비유지만 말이다. 아무튼, 시인의 스펙트럼이 다채롭다는 게 이 시인의 다재다능함을 보여주는 것인지, 시인의 영혼이 불안하고 혼란스러움을 보여주는 것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작가적 요소를 걷어 내고 시 선집을 읽다 보면, 나름 일관된 기조를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 선집은 번역자의 선택에 따라 각 시집에서 골라낸 작품이기 때문에 온전한 감상에는 한계가 있다.)

한 시인의 생애를 관통하는 각 시집의 대표작을 한 번에 읽어볼 수 있는 것은 흔한 기회가 아니다.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을 때, 될 수 있으면 그의 처녀작을 읽고 반드시 마지막 작품을 읽으려 노력하는 편인데,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그 처음과 끝이 가장 그 사람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엘뤼아르의 전 작품을 대충이라도 훑어볼 수 있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앞서 말한, 너무 다채로운 스펙트럼이 작가에 대한 편견과 일종의 반감을 형성하게 했지만 막상 선집을 읽으며 엘뤼아르가 어떠한 경향의 시를 쓰든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나'와 '너'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나'와 '너'. 자아와 타자. 엘뤼아르는 시에서 '너'라는 대상을 때로는 '너'라고 그대로 명명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 '너'라는 대상은 끊임없이 변주하며 다채롭게 드러난다. '너'는 '그녀'이기도 하고, 실제로 사랑했던 여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너'는 단순히 사랑하는 대상, 이성으로서의 여성을 넘어 자연이기도 하고, 순간의 이미지이기도 하며, 포착되는 삶의 한 감각이거나, 어둠, 빛, 환상, 꿈 등이기도 하다. 이렇게 '너'는 변주를 거듭하며 후기 시에 이르러 '우리'로 확장된다. 그의 시의 핵심 주제는 '사랑'이었다는데, 결국 그의 생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 있다면 그것은 경계를 허문 관계, 동일성의 발견을 통한 동일화되어짐, 즉 타자의 새로운 정의가 아닐까. 즉, '타자'는 '나'와 경계를 허물고 '우리'가 되는데, 이는 '나' 자신이 삶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모든 사람과 사물, 세계와 경험이 나 자신의 또 다른 일면이자, 경계 없이 관계하는 하나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엘뤼아르 시 선집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는 그의 이 낯선 시들이 국내 문학 작품에 상당수 패러디되었다는 점이다. 양귀자의 소설 제목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엘뤼아르의 시 「모퉁이」의 전문이며,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가 점령한 프랑스에 큰 희망이 되었다는 시 「자유」는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에서 모티프도 아닌, 정말 모방 시 수준으로 패러디되었다. 콕 집어 어떤 부분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황동규 시인의 「조그만 사랑 노래」에서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와 같은 구절이 형성하는 이미지를 엘뤼아르의 시를 읽으며 떠올릴 수 있었다. 김춘수 시인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도 엘뤼아르의 시, 「그려진 말言」과 그 취지나 바탕이 너무나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타국의 언어로 된 이 낯선 시들은 국경을 넘어 또 다른 세계의 문화와 예술에 많은 영향과 영감을 끊임없이 미치는 것이다. 작품을 읽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지만, 번역 시를 읽는 묘미와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한 쾌에 꿰뚫을 수 있어서 좋았다. 독서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은 분들께, 원어가 주는 아름다움을 모국어와 비교하며 읽어 보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권한다.


*을유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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