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평점 :
『인문건축기행』은 삼십 여년을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는 유현준 교수가 자신의 사고와 창작에 영감이 되어준 서른 개의 건축물을 소개하는 책이다. 유럽, 북아메리카, 아시아의 세 대륙으로 나누어 현대 건축가의 '작품으로서 건축'을 소개하는데, 이 건축물들의 선별 기준은 생각의 대전환을 통해 이전에 없던 새로운 공간을 창조한 '작품'이다. 유현준 교수는 아이디어와 영감의 발현, 새로운 사고와 가치가 재료와 물질로 구현되는 방식, 공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 그렇게 삶이 구축되고 사라지는 순간과 과정을 애정을 담뿍 담아 건축물을 소개하며 독자에게 보여 준다.
건축에 문외한이고, 칼라 사진이나 도판이 많은 책을 이상하게 잘 읽지 못하는 특이 취향의 독자로서 이 책을 흥미롭게 읽으며 좋았던 점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도판, 사진, 일러스트의 배치가 적절하여 가독성을 높인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참고 자료가 텍스트의 완성도를 높인다.
2.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수없이 많은 건축물의 홍수 속에, 그저 삶의 터전으로 여기며 지나치는 공간에 대한 눈을 뜨게 한다. 세상에 대한 시야의 확장, 새로운 관점에 대한 자극 등 지적 욕구를 충족시킨다. 책에서 소개하는 유명 건축물이 아니어도, 우리 주변에 흔한 아파트, 고층 빌딩의 재료와 구조, 건축가의 전략과 아이디어를 한 번쯤 생각하며 바라보게 한다. 도시를 살아가는 일상의 삶이, 소소한 여행과 산책의 길이 다채롭고 즐거워지는 계기가 된다.
3.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비롯되고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가. 영감과 사고의 출발과 구체적 실현이 건축의 과정을 통해 제시된다. 특히 현대 건축물을 다룸으로써 이 시대의 아이디어 형상화 방식, 현대의 가장 핵심 중 하나인 신소재의 개발과 기술의 접목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이 시대는 환경과 문화를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가, 단지 인간이 거주하는 공간으로서의 건축을 넘어 유형 예술 중 가장 덩치가 큰 작품을 통한 시대의 이해를 제시한다. 유현준 교수가 서문에서 소개하듯, 건축을 최고의 발명품, 과학자의 무엇으로 보는 관점이 책 전체에 녹아 있는데, 말하자면 과학과 기술, 진보와 개혁의 시절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 한 개인의 아이디어와 영감의 중요함을, 생각의 전환이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세상의 창조를 느낄 수 있다. 건축물의 소개만으로 끝나지 않고 '생각'과 '관점'에 대해 동기 부여를 받을 수 있어서 좋다.
책을 읽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떠올려 본다. 타국의 여행지에서 맞닥뜨리는 건물들을 보며, 혹은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매일 걷는 도시, 소소한 여행과 산책에서 공간과 건축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동기를 부여하는 책이다.
을유문화사에서 연이어 유현준 건축가의 책을 출판하는데, '건축'이라는 분야를 통해 사고의 지평을 넓힌다는 점에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