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늪 지혜사랑 시인선 34
권순자 지음 / 종려나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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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는 다르게 시가 깊은 맛이 있었다. 어둡고 침침한 현장에 와있는 암울한

시집일까라는 두려움이 앞섰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지만, 막상 시 하나하나를

음미하면서 지각적인 입가심을 한 듯 내 기분이 조용히 침잠해있다.

 

관찰력도 훌륭하고, 표현력도 맛깔스럽다. 특히 노인을 한참이나 응시하고 쓴 듯이

보이는 한 시의 마지막 귀절이 아직도 생생한 영상으로 머리에 잔상을 남긴다.

 

입술로 하얗게 태우는 마지막 숨.

 

난 겨울날 앙상하게 마른 노인이 처마에 앉아 가픈 숨을 내쉬는 모습을 본 적은

있지만 입김이 입술을 태운다는 창의적인 관점은 가져본 바가 없어 몹시나

이런 시인의 관찰력에 탐복을 하고 말았다.

 

다른 시들도 시인이 투자한 시간, 느낀 시간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흔적들이

쉽사리 눈에 띠었다. 

감각적인 어휘와 절도있게 나눈 음절들을 아주 소중히 음미했다.

너무나도 차분해지는 시다.

 

눈 덮인 도로와 건물들을 보며 인위성의 축복과 동시에 주체 멸실의 고통을

느끼는 이는 시집을 읽음으로써 존재론적 시각과 감성적 시각을 두루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감성에 빠지면 무감각만 못하지만, 적당히 감성적일

때 인간미와 여유가 마음 속에 생긱는 법이다. 권순자님의 시를 보면 문득 이 분의

일상이 한 폭 한 폭이 그려진다. 시점의 흐름과 그런 흐름을 만든 사회와 환경.

그걸 넘어서기 위해 핏발 세우는 게 아닌, 그저 담담히 바라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게

시를 읽는 나만의 이유다. 공감각적 지각과 추상적 사고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간의

주 특질이 있겠고, 시를 읽으면서 그 특질을 여실없이 활용했다. 작가의 시각과 문자로

담긴 그 분의 시간에 나만의 색채를 더하여 즐겁게 검은 늪을 읽었다.

 

시에 대해 생긴 관심이 앞으로 올바른 방향을 찾도록 나의 감성에 애정을 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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