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7 만력 15년 아무일도 없었던 해
레이 황 지음, 김한식 외 옮김 / 새물결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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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이 있다.

'술잔에 찬 독주를 넘치게 하는 것은 결국 마지막 한 방울'이라고.


역사를 보다보면 그런 마지막 한 방울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진을 무너트린 계기가 된 진승오광의 난이 그럴 것이요, 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암살사건도 그럴 것이다. 


역사가라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이야기를 선호하기에 극적인 계기, 즉 마지막 한 방울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그러한 경향에 대한 반성도 많았지만 이 자리에서 주저리주저리 사학사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아직까지도 교양 수준의 역사에서는 그런 경향성이 강하다 말 할 수 는 있겠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교양 역사서의 수준-아예 지식이 없다면 조금은 곤란하겠지만-임에도 '마지막 한방울'이 아닌 그동안 술잔을 채우고 있던 독주에 초점을 맞췄다.


말 그대로 1587년, 만력 15년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커다란 역모사건이나 외적의 침입, 민초들의 반란도 없이 그저 어제와 같은 오늘이, 오늘과 같은 내일이 있는 그런 해였다. 그러나 술잔 속의 독주는 계속해서 차오르고 있었다.



어줍잖게나마 역사를 공부하고, 역사에 대해 고민하는 근래 느끼는 점은 우리는 너무 역사를 쉽게 비판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수 백년이 지난 지금 시공간을 뛰어넘은 후손된 우리는 그 차오르는 독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선조들을 비판하곤 한다. 그러나 시대를 뛰어넘는다는 것이 지난한 일임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설령 시대를 뛰어넘는 안목을 지닌다 하더라도 혼란기가 아닌 안정기의 황혼에서는 햇빛에 취해 있는 자들에게 그런 말이 들릴리 만무하다.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파열음도 그저 소동의 하나로 치부 될 뿐이다.


그렇다면 선인들의 모습에 준엄한 역사의 잣대를 들이대는 불민한 후인인 우리들은 과연 어떠한가? 앞뒤 보지 않고 달려온 청년기를 지나 장년기로 접어들어야 하는 이 사회 곳곳에서 터지는 파열음은 그저 늘상 있던 소음일 뿐인가, 독주가 넘치기 직전의 소리인가?



그저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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