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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나사의 회전 ㅣ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6
헨리 제임스 지음, 민지현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1월
평점 :
요즘은 유난히 고전문학이 각광받고 있는 것 같고, 국내에 번역되는 문학작품들도 비단 영미나 유럽만이 아닌 제3세계, 특히 아프리카 문학이 많이 번역되는 추세라 다양성 면에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 추천되는 세계문학 100선, 필독서 등등 공신력 있는 리스트는 2,300년의 세월이 흘렀을 때 어떤 변화를 갖게 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하지만 살아생전 그 리스트 업데이트는 구경하지 못할 테니 당장 눈앞에 닥친 세계문학 읽기도 버거울 예정이다. 그렇지만 같은 책이더라도 번역가에 따라, 출판사에 따라 새로운 느낌, 새로운 감각으로 재탄생되고 있기 때문에 고전이라는 틀이 아닌 새로움으로 무장하고 있어 때에 따라선 현대 문학보다 더 큰 신선함을 안겨 주기도 한다.
미래와사람에서 새롭게 내놓은 '시카고 플랜' 시리즈는 시카고 대학의 고전 100권 읽기 운동에서 언급된 고전문학 리스트다. 석유재벌 록펠러의 기부금으로 설립된 대학인 시카고 대학은 현재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8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명문 대학이다. 설립 초기 이름 없는 사립대학에 불과했던 시카고 대학을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시킨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1929년 제5대 총장으로 취임한 로버트 허킨스가 추진한 '시카고 플랜'에 있었다.
'철학 고전을 비롯한 세계의 위대한 고전 100권을 달달 외울 정도로 읽지 않은 학생은 졸업을 시키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프로젝트로, 처음엔 반발도 있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벤치마킹할 정도로 훌륭한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그 플랜의 기본인 '존 스튜어트 밀 독서법'이란 '저자에 관해 쉽게 설명한 책을 읽는다-고전을 통독한다. (이해가 안 되더라도 읽는다.)-정독한다. (이해가 잘되지 않는 부분은 소리 내어 읽는다.)-노트에 중요 구문 위주로 필사를 하며 통독한다.'라는 4단계 독서법이라고 한다. ('필사'가 가장 중요함)
헨리 제임스 <나사의 회전>은 시카고 플랜 6년 차 목록에 들어있는 작품으로,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글의 모호성을 정교하게 드러낸 작품'이라는, 언뜻 보기엔 그 평가부터 어렵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말만 어려울 따름이지 지금의 우리에겐 전혀 낯선 기법이 아니다. 익숙한 공포 영화, 스릴러, 추리소설 등등 모든 장르가 이 기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장르의 개척이라는 면에 의의를 두는 것이 <나사의 회전>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난롯가의 심야괴담회쯤 되는 모임. 참여자 중 한 명인 더글라스가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기괴한 이야기를 해 주겠노라며 호언장담한다. 사람들은 그 집을 떠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정을 미뤄가며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남는다. 그리고 며칠 후 우편배달부를 통해 '색 바랜 붉은 표지'의 책을 받은 더글라스는, 다시 난롯가에 모인 사람들을 위해 그 책의 낭독회를 시작한다.
그 어떤 이야기보다 짜릿할 겁니다. 제가 아는 한 여기에 견줄 만한 이야기는 없어요. 지독한 공포 그 자체라오! 기괴하리만치 흉측하고 무섭고 가슴 아픈 이야기지요. (11쪽)
더글라스의 책은 시골 마을 목사의 막내딸로 태어난 한 가정교사의 기록이었다. 전반적인 서사는 간단하다. 가정교사는 잘 생기고 매너 좋은 독신의 고용주에게 첫눈에 반했고, 고아가 된 그의 조카(마일스, 플로라)들을 돌보기 위해 시골 저택으로 향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두 명의 유령을 목격하고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이야기다. 상상의 여지없이 빅토리아 시대 고딕소설의 전형을 보여 준다.
하지만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에는 일반적인 고딕소설의 재미와 더불어 행간을 읽는 재미가 넘쳐흐른다. 가정교사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메인 스토리에서는 그녀가 미친 건지, 온 우주가 합심해서 그녀를 속이려 드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들이 연출되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상황의 모호함'이라는, 독자로 하여금 여러 갈래의 해석이 가능하도록 열어놓은 덕분이다.
그녀(가정교사)는 대체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 그것을 파악하려는 여러 과정에서는 등장인물의 대사와 독자의 상상을 더해 나름의 추측을 해 볼 수도 있다. 그렇게 추측한 내용을 본문과 결합시켜 읽는 재미는 재밌다 못해 짜릿하다. 그 속에서 파악되는 아이들과 가정교사의 관계, 유령의 정체 그리고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는 결말까지... 정말이지 후반부로 갈수록 내달릴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또한 처음부터 등장하는 난롯가의 괴담회라든지, 더글라스와 가정교사 이야기의 브릿지 역할을 해주는 '나'라는 화자의 존재라든지 하는 것들도 색 바랜 붉은 표지에 담긴 본문과는 별도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들이다. 그들에 관한 가장 큰 의문은 '그들은 산 자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문득 피식 웃음이 나오며 이러다 '내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겠다 싶다.
그런데 문제는 제목인 <나사의 회전>이다. 이게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거다. 원제인 Turn of the screw는 원작에서도 단 두 번만 사용되는 문구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나사처럼 꽉 죄는 긴장감'을 뜻한다고 해석하고 있는데, 가정교사 입장에서 두 명의 아이를 건사하느라 긴장감도 두 배, 공포도 두 배가 되는 상황을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나사의 회전이 진행되고 있는 그 순간의 긴장과 고통'을 번역하기엔 참 난감했을 것 같다(본 도서에서는 '섬뜩한 긴장감을 고조시키다.'로 번역됨, 10쪽). 하지만 책을 읽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나사의 회전'은 점점 더 자극적이고 집요하다. 그러니 정신의 나사를 꽉 조이고 그 긴장에 휩쓸리지 않도록 주의가 요구되는 바이다.
[원문]
I quite agree-in regard to Griffin's ghost, or whatever it was-that its appearing first to the little boy, at so tender an age, adds a particular touch. But it's not the first accurrence of its charming kind that I know to have invelved a child. If the child gives the effect another turn of the screw, what do you say to two children?
I could only get on at all by taking "nature" into my confidence and my account by treating my monstrous ordeal as a push in a direction unusual, of course, anounpleasnat, but demanding, after all, for a fair front, only another turn of the screw of ordinary human virt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