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버 -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지음, 한미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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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의 <게르버>, 부제처럼 '어느 평범한 학생' 쿠르트 게르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게르버의 학창 시절이 우리가 모르는 '기막힌'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나 겪은, 누구나 잘 견뎌내온ㅡ나, 당신, 그리고 우리 모두ㅡ그 시간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평범한 소년의 이야기가 왜 이토록 우리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일까?


실과고등학교16의 졸업반(8학년) 쿠르트 게르버는 영리하지만 그다지 노력은 하지 않는 소년이다. 졸업시험에 대한 부담도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보이고, 어느 정도는 '설마 내가 낙제하겠어?'라는 자만감도 있는 것 같다. 게르버는 동급생 리자 베어발트를 짝사랑하고 있으며, 방학이 끝나고 돌아온 학교에서 그녀가 자퇴했다는 소식을 듣고 낙담한다. 하지만 게르버의 가장 큰 고난은 따로 있었다. 바로 졸업반의 새 담임이 악명 높은 '구퍼 신()'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오류성을 자주 강조해 학생들 사이에서 '쿠퍼 신()'으로 불리는 그가 오른쪽 줄을 따라 교단으로 걸어갔다.


<게르버>는 이야기의 흐름보다는 등장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읽어야 한다고 본다. 주인공 게르버뿐 아니라 게르버의 첫사랑인 리자, 절친인 프리츠 바인베르크, 전형적인 아첨꾼이자 종종 던지는 말 한마디가 폐부를 찌르는 쇤탈, 성적 프롤레타리아 6인방(차셰, 두페크, 메르텐스, 제베린, 렝스펠트, 레비) 등 학생뿐 아니라 그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면면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


이 책에서 게르버의 삶을 뒤흔드는 세 가지 사건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우등생이었던 벤다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성적이 우수했고, 교수들로부터 인정받던 벤다의 죽음을 '진정으로 애도하는 친구들'이 없음을 목격한 게르버는 '사방이 얼음같이 차고 무정한 냉정함으로 가득 찬' 학교의 본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두 번째는 라틴어 교수인 보르헤르트 교수의 폭행 사건이었다. 학생인 슐라이히와 작은 논쟁이 벌어졌고, 그날따라 유독 예민했던 보르헤르트가 슐리이히의 뺨을 때린 것이었다. 분노한 게르버는 급우들을 선동해 항의를 해야 한다며 서명운동을 하지만, 졸업시험을 눈앞에 둔 학생들에게는 무의미한 일이었을 뿐이다. 게르버의 유일한 동조자인 바인베르크의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우리 중 한 사람에게 일어난다면, 그건 더는 개인의 일이 아니다."(262)라는 절규도 그저 공중에 흩어지는 한순간에 불과했다.


마지막 세 번째 사건은 삶의 좌절을 제대로 체감하게 한, 체셔를 향한 쿠퍼 교수의 '악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게르버는 혼란에 빠진다. 거기다 쇤탈이 그 자리에서 반응하지 못하고 뒤늦게 쿠퍼의 뒷모습을 보며 분노한 게르버에게 내던진 한 마디는 그의 인생을 뒤흔들어 놓는다.


잘 생각해 보자.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의 <게르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절대로 낯설지 않으며, 그가 처한 상황 또한 절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평범한' 소년의 이야기가 왜 이토록 특별하게 다가오는 걸까? 우리가 겪어 온 학창 시절이 게르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게르버의 시절은 왜 이토록 잔인하게 느껴지는 걸까?


나는 그것이 바로 '글쓰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경험, 사소한 시선, 한낮의 햇빛조차도 글로 옮겨진다면 우리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생각해 보면 아는 것들이지만 글로 읽으면 더 잔혹하거나 더 생소한 느낌을 주는 그런 것들... 그것이 게르버의 경험이며, 글로 써진 우리의 경험이며, 낯익지만 잔혹했던 우리의 학창 시절이었음을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는 말한다. 그리고 묻는다. '지금 당신의 모습은 교수입니까, 8학년 졸업반 학생의 모습입니까?' , 누가 지는 쪽인지 한 번 시험해 볼까요?(30)


그는 권능이 유한한 신이었다.

그러나 권능이 있는 곳에서 그는 신이었다.

거기에 그는 거머리처럼 달라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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