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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터스 ㅣ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3월
평점 :
"가장 최근에 우리 멤버가 된 아가씨 중 하나죠. 당신처럼, 이 아가씨도 친구를 통해 우리 이야길 들었어요. 그녀의 몸을 빌린 여성분은 몹시 만족하셨습니다."_본문 중에서
사람의 몸을 빌려주고 받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스타터스starters'란 책 제목만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담았을까 추측하기 힘들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고 곧 만나게 되는 이 대화에서 현재나 과거가 아닌 과학기술이 훨씬 발달한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란 걸 곧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어떤 사람들이 몸을 서로 빌려주거나 받거나 하는 것일까? 평소 우리가 어떤 일에 내 몸을 바친다는 의미는 내 전부를 걸고 무엇인가를 한다는 의미다. 내 몸을 빌려준다는 것은 나를 준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 이런 위험천만한 거래를 하는 것일까?
몽땅 관절염에 걸린 소름 끼치는 늙은 엔더들이 이 10대의 몸을 일주일 동안 차지하고는, 그의 피부안에서 살아간다. 속이 홱 뒤집히는 것 같았다. 그저 바로 도망가고만 싶었지만, 한 가지 생각이 날 붙들었다._본문 중에서
책을 막 읽기 시작하다보면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곧 구할 수 있다. 여기서는 인생을 곧 마감할 사람들이란 의미 같기도 한 '엔더'와 반대의 의미인 '스타터'가 나온다. 이 둘 사이에 거래가 일어나는 것인데 늙고 노쇠했지만 돈 많은 엔더들이 돈을 주고 젊고 어린 스타터들의 몸을 빌려 마치 자신의 몸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대여해 주는 스타터는 거기에 따른 당연한 댓가를 받는 듯하지만 돈이 절실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다. 댓가를 준다고는 하지만 보호자가 없어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힘든 아이들이 돈 때문에 몸을 파는 희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눈을 떴다. 비스듬한 각도로 기울어진 세계를 빛이 비추고 있었다. 나는 내 몸에 돌아온 채로, 플로어 위에 있었다. 바닥에 손바닥을 대고 누르며 일어나려는데, 손바닥이 역겨울 정도로 끈적거렸다._ 본문 중에서
자신의 몸을 대여해 준 기증자는 계약기간이 끝나고 나면 '프라임데스티네이션'에서 깨어나 자신의 의식을 찾는다. 마치 꿈을 꾸듯 잠이 들었다가 깨어난다. 정해진 장소에서 잠들고 깨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인 캘리가 세 번째 기증에서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모르는 낯선 장소에서 깨어남으로 인해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했음을 암시해 준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빌린 렌터인 척 행동을 하다 실제 자신의 몸을 빌렸던 렌터가 자신의 몸을 이용해 엄청난 음모를 꾸미고 있었음을 알게 되면서 갈등과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다시 젊어지고 싶어하는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소망하는 것이다. 늙고 노쇠해 곧 죽음을 맞이할 노인이라면 더욱 절실할 것이다. 젊음을 되찾진 못해도 정해진 기간이지만 젊은이의 몸을 빌려서라도 다시 젊음을 만끽해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부유한 엔더들이다. 대량살상무기가 살포된 전쟁 이후 부모를 잃고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이 스타터들이다. 하루하루를 폐허가 된 건물 속에서 지내며 사는 아이들에겐 먹을 음식과 살아갈 집이 절실하다.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엔더들과 돈이 절실한 스타터들 그리고 이런 인간의 욕망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려는 탐욕스런 인간들이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다.
인간의 욕심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다시한번 체험하게 된다. 돈에 대한 탐욕, 그리고 젊어지고 싶다는 탐욕이 인간을 단순한 도구로 전락시켜버리는 극단적인 상황을 담고 있다. 그리고 끝도 없이 내달리는 탐욕이 부른 거대한 음모를 밝혀내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게 진행되는 소설이다. 공상과학영화의 장면들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전쟁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성이란 찾아볼 수 없는 차가운 미래사회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겉모습으로는 사람을 믿을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치닫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인공 캘리의 가족에 대한 사랑과 이성에 대한 사랑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은 바로 오늘이란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새롭게 만들어간다면 누구나 스타터라고 할 수 있다. 어제의 나를 동경하기 보다 오늘을 충실히 산다면 엔더도 스타터가 되는 것이다. 늘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면서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고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산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엔더들이 동경하는 스타터가 될 것이 분명하다. 타인의 몸을 빌려 스타터가 되려하기 보다 스스로 스타터가 된다면 소설처럼 엉뚱한 욕심을 부리고 사람을 희생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음만이라도 스타터로 유지할 수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