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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를 듣다 울었다 - 그 소란한 밤들을 지나
정은영.생경.성영주 지음 / 몽스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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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에세이 <잔나비를 듣다 울었다>는 이혼을 경험한 세 사람의 이혼 회고기다. 아니, 어쩌면 고통과 상실을 견딘 자신을 활자로 옮겨 놓았으니, 성장기에 가까운가.

 

헤어짐이라는 욕구를 결혼 후 제도권 안에서 실현하려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절차를 따라야 한다. 문제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그 과정은 지난하고 괴로울 터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그 고통의 기본값 위에 쓰여 읽는 내내 함께 아팠다. 리뷰를 어떻게 남겨야 할지 망설여져 일주일을 묵혔다. 내 삶의 일부가 그곳에 있었고, 나의 어슷한 통증도 행간 어디쯤엔 알몸 그대로 있는 것만 같아 내내 소란했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게 인생이라면,

이들과 나의 차이는 그저 과거형이냐, 현재형이냐일 뿐.

 

내게 이혼은 느닷없는 결별이었고 생의 전복이었다. 이혼했다는 것은 서로를 쓰다듬고 할퀴고 다시 쓰다듬고 참아내고 살았던 그 많던 날과의 단절이었다. 생이 끝날 때까지 서로를 견디자던 그 허망한 약속을 깨는 일, 오래된 습관을 단박에 끊어내는 일, 미처 소진하지 못한 사랑의 형태를 서둘러 구겨버려야 하는 일, 심장이 찢어지고 사지가 뜯기고 피가 철철 흐르는 일이었다. 지독했다.’ (42p)

 

이혼을 지독함으로 느꼈던 한 저자는 1년 후에야 이혼을 실감했다. 그는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오로지 좋기만 했던 날들이 도처에 그렁그렁했다고 말했다. 지독함을 지나니 슬픔에 젖은 그리움이 몰려오다니, 대체 어쩌란 말인가. 다행히도 저자는 자신의 삶을 영화에 비추어 보며 그 시간을 견뎠다.

 

내 삶이 영화라면, 지금 이 시간이 분명 삶 전체를 놓고 볼 때 꼭 필요한 시퀀스일 거라고 여기며 견뎠다.’(p59)

 

또 다른 저자는 쥘 수 없는 것을 쥐겠다고 비루해지지 않는, 선택을 했다.’고 썼다. 이혼이라는 그의 선택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었다.

 

몸은 없고 말만 남은 자와 언어의 세계가 닿지 못하는 감정을 나누고 싶어 하는 자의 대결이란 씁쓸할 수밖에 없다.() 나는 존엄을 지키고 싶었다. 동시에 나의 존엄은 상대가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자에게 나의 존엄을 의탁해서는 안 된다. 내 존엄은 오로지 나에게서 비롯된 행동을 통해서만 지킬 수 있다.’ (p119, p121)

 

저자는 그럼에도 결혼이 남긴 귀중한 것이 있다고 밝혔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에 있는 힘껏 가 닿아보았다는 경험, 혼자 힘으로는 훨씬 어려웠을 경제적 안정감을 누린 경험, 나와 전혀 다른 가족문화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경험, 내 힘으로 가족을 구성해 본 경험, 인생의 한 시기에 타인을 내 삶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을 해본 경험,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가 그 귀중한 것들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혼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더 이상은 혼인 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모멸감을 참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선언에는 자기 인식이 바탕이 된다. () 어느 날 문득 평온함을 느꼈다. 결속에서 떨어져 나와 나로서 온전하다는 느낌이 차올랐다.’ (p149, p150)

 

이혼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마지막 저자는 결혼 내내 사라졌던 대화가 소장을 사이에 두고서야 가능했다는 사실에 아파하며, 그 나름의 정의를 내렸다.

 

결혼이라는 선택에 실패란 없고, 다만 행과 불행의 교차가 있다는 것. 이혼은 결혼이라는 전제가 있기에 성립 가능한 결과이지만, 결혼의 실패가 곧바로 이혼이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죽음이 곧 삶의 실패가 아니듯. 삶의 끝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듯이 결혼과 이혼도 그렇다.’ (p231)

 

책은 7년 만에 조금 평온해진 마음으로 또박또박 나아가는 사람, 자신의 존엄을 더는 상대에게 의탁하지 않겠다는 결심 후 새 터전에서 온전해진 사람, 가치관 차이와 불통의 시간에서 더는 서로의 세계로 겨루지 않는 시간으로 옮겨간 사람의 이야기다. 이들이 자신을 감당하며 살아갈 날들을 전심으로 응원한다.

 

#잔나비를듣다울었다 #정은영_생경_성영주

#신간에세이 #신간추천

#서평단 #몽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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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를 듣다 울었다 - 그 소란한 밤들을 지나
정은영.생경.성영주 지음 / 몽스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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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7년 만에 조금 평온해진 마음으로 또박또박 나아가는 사람, 자신의 존엄을 더는 상대에게 의탁하지 않겠다는 결심 후 새 터전에서 온전해진 사람, 가치관 차이와 불통의 시간에서 더는 서로의 세계로 겨루지 않는 시간으로 옮겨간 사람의 이야기다. 고통과 상실을 견딘 세 사람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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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머리들
오소리 지음 / 이야기꽃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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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리 작가의 신작 <돌머리들>이 출간됐다.

돌머리들의 대반격.

세상에! 이 아이들 뭐죠?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작가.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걸

이번 작품에서도 확인했다.

 

그의 작품에는 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떼로 나타났다.

 

우리의 돌머리들! ~무 사랑스럽다.

 

너희는 돌머리야! 쓸모없는 돌멩이들.”

 

거대한 손!!!(손가락 아니고 손꾸락 강조)

거친 말을 내뱉는다.

 

돌맹이들에게 돌머리라 하는데 뭐라 할 수도 없고

, 자존심 상해.

나라면 그럴지도 모르는데

사랑스러운 우리 돌멩이들은 쪼그마한 눈망울로 함께 답한다.

 

!”

!”

나도!”

 

? 뭐지? 이 올망졸망한 녀석들 멘탈 갑인데?

이 단단한 모습에 감동, 생각지도 못한 돌멩이들의 연결점에 감탄했다.

 

돌멩이들은 서로 부딪치고 연대하며 새로운 것들을 만든다.

그 속에 평범한 우리 모습도 읽힌다.

발에 치이는 게 돌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우습게 여겼던 그 흔한 돌멩이가 새로운 길과 의미를 창조했다.

, 한동안 돌머리들과 사랑에 빠질 예정!

누가 뭐래도 우린 돌멩이니까!

 

#돌머리들 #오소리작가 #이야기꽃그림책 @iyagik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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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를 위한 변론
송시우 지음 / 래빗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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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선녀에겐 정당방위 주장도 필요 없습니다. 선녀는 이쇠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나무꾼에게 날개옷을 갈취당한 선녀는 별안간 법정에 섰다. 나무꾼을 살해한 피의자 신분이다. 선녀의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인 측과 선녀의 죄를 확신하는 검찰 측의 팽팽한 공방이 이어진다. 선녀는 정말 나무꾼을 죽였을까?

소설집 <선녀를 위한 변론>에 등장하는 한 대목이다. 책은 OCN드라마 <달리는 조사관>의 원작 작가 송시우의 신작으로 ‘인어의 소송’, ‘선녀를 위한 변론’, ‘누구의 편도 아닌 타미’, ‘모서리의 메리’, ‘알렉산드리아의 겨울’ 총 다섯 편의 소설이 담겼다.

앞선 두 편은 우리에게 익숙한 인어공주와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 이야기를 치밀한 법정 미스터리로 재탄생시켜 독자를 흥미진진한 세계로 이끈다. 인어공주와 선녀는 각각 남자 주인공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법정에 선다.

작가는 동화 속 인물이 사는 세계에 어느 날 갑자기 현대 사법 시스템이 도입돼 거침없이 작동하는 판타지적 세계를 설정했다. 동화 속 인물들만큼 독자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다. ‘동화에 현대 사법 시스템을 적용해 벌어질 비논리적 서사는 어떻게 하려는 거지?’ 싶은 의구심과 펼쳐질 이야기에 호기심이 동한다.

작가가 의도한 지점도 바로 여기다. 작가에 따르면 동화 속 세계는 판타지지만, 재판의 절차와 법리적인 부분은 아주 현실적으로 그린다면 그 낙차에서 오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신작을 쓰기 시작했다고. 틀 밖에서 바라보는 작가의 신선한 시선 덕분에 모두가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가 한편의 법정 스릴러로 읽힌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작품은 ‘누구의 편도 아닌 타미’와 ‘모서리의 메리’였다. 서로 다른 서사로 전개되지만, 아주 매력적인 인물 임기숙 때문이다. 조용하고 소심해 아무것도 거절 못 할 것 같은 캐릭터로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움직이는 사람. 두려움에 맞서 타인을 위해 위험한 순간에도 기지를 발휘하는 센스까지 장착한 흔치 않은 인물이다.

중편의 분량에 가까운 ‘알렉산드리아의 겨울’은 불편했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만큼 허구로 재편하기 위한 작가의 노력도 읽히지만, 사안이 워낙 엽기적이었던 터라 당시 불안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뜻밖의 설정들은 다음 작품도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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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게 부친 여름 걷는사람 시인선 89
이호석 지음 / 걷는사람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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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게 부친 여름> 이호석 시집

이호석 시인의 시집 <여름에게 부친 여름>은 일상과 일, 상념과 통찰, 심연과 외연처럼 한 권에 여러 결의 시들이 담겼다.

2부의 ‘응시’나 3부의 ‘블랙’ 처럼 깊은 밤 한적한 포장마차를 떠올리게 하는 시도 좋았다. 삶의 무게를 진하게 느끼게 하는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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