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의 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2
하야미 가즈마사 지음, 박승후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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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계절이 움직였음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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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 JR 요코하마 선 나카야마 역 부근의 연립주택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이 화재는 세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노우에 미카씨와 그녀의 쌍둥이 딸들인 아야네 양과 하스네 양. 용의자는 다나카 유키노로 목숨을 잃은 세 명의 집안 가장인 게이스케의 전 여자친구였다. 한 가정을 무참히 박살시킨 유키노의 범행에 사람들은 분개했고 그녀 또한 순순히 자백했다. 판결은 내려졌다. 피고인은 책임감을 갖추지 못한 열일곱 살 어머니 밑에서, 양부의 거친 폭력에 시달렸으며, 중학교 시절에는 강도치사 사건을, 죄 없는 과거의 교제 상대를, 계획성 짙은 살의를 봤을 때, 반성하는 기색이 거의 보이지 않고, 증거의 신뢰성은 지극히 높으며, 주문, 피고인을 ‘사형’에 처한다. 마지막 재판장에서 태어나서 잘못했다는 말을 남긴 채 그녀는 재판 방청석의 어딘가를 응시하며 미소를 짓고는 그 자리를 떠난다.

 하지만 그녀를 잠시라도 만나본 사람이라면 안다. 그녀가 절대 판결 이유에 나온 말들처럼 살지 않았다는 것을. 그저 그녀가 신뢰하고 싶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함이었을 것임을. 자극적인 걸 좋아하는 매스컴은 그녀를 잔인하고 매정한 살인자로 만들고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미 너무 늦어버린 후에야 활동을 시작한다. 과연 그녀는 왜 이렇게 잔인한 일을 벌였으며 반성하는 기미조차 없이 사형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걸까? 아니, 그녀가 이 화재를 일으킨 방화범은 맞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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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는 내내 불편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재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유키노의 인생이 불편했다. 결과적으로 유키노는 벌을 받을 만큼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사회의 냉담한 반응을 자아낼 수 있는 일은 모두 겪었다. 엄마 쪽 유전으로 흥분하면 의식을 잃어버리는 병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먼 미래는 함부로 상상하지 않는다. 희망을 품고 있으면 죽음이 두려워지는 게 두려워서 그랬을까. 아직 어린 나이에 이미 철이 들어 체념하는 듯한 어린 유키노의 말은 오히려 더 미래를 그려보고 싶다는 말로 들렸다.

 사랑하는 엄마가 죽고 외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그녀는 점점 더 작아지고 따뜻함에서 멀어진다. (이는 그녀가 차가워진다는 게 아니라 그녀가 느끼는 따뜻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키노가 그녀의 삶을 완전히 포기하려 한 건 아니다.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 준 중학교 친구 리코에게 마음을 열었고 자신을 필요로 해준 게이스케를 사랑했다. 하지만 더 좋아질 거라는 기대의 대가는 잔인했다. 그래서 마지막 사형선고를 받고 유키노를 살리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거부한다. 아마 다시 함부로 미래를 상상한 이후 역시나 배신당했을 때에는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런 선택을 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신이치 역시 만만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사립 중학교에 떨어지고 어머니에게 한심하다는 말을 들은 후 참을 수 없는 화를 억누르지 못해 폭력을 행사한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은 것을 학교에서 다녀오면 그대로 어머니에게 풀었다. 학교에서의 괴롭힘 때문에 서점에서 돈을 훔치던 그는 그의 죄를 유키노에게 뒤집어 씌웠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된 거지만 그 이후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는 씌웠다고 생각했다.) 물론 크면서 충분히 반성하고 유키노를 구하려고 하지만 나로서는 그의 죄가 면죄될 순 없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유키노가 신이치와 쇼의 도움을 거부하고 죽임을 당하기로 한 결정을 내렸을 때 그녀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이미 숱한 배신과 상처를 받아와서 너덜너덜해진 그녀가 이번 구원의 손을 잡고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까? 

 이 책의 처음과 마지막은 우리가 얼마나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쉽게 판단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각시켜준다. 방화 살인을 일으킨 유키노는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생겼네.’라고 묘사된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그녀는 전혀 그런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중반에는 ‘어떻게 이런 여린 그녀가 그런 잔인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다가 후반부에서는 그녀가 절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으리라고 확신하게 된다. 하지만 나조차도 초반 그녀에 대한 묘사를 읽으면서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나도 똑같은 뉴스를 보고 들었다면 그 여느 사람들과 같이 그녀의 잔인성에 혀를 내두르고 그녀를 질타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들리는 그대로를 믿으려한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면서도 이야기 초반, 나는 함부로 다나카 유키노의 정의를 끝마쳤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너무 극단적으로 몰아넣은 전개라서 과연 실제로 있을 수 있을 얘기일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극단적인 전개가 이 글의 주제를 더 잘 드러내주는 거 같아서 재미있게 읽었다. 다만 지금 감상문을 쓰면서 문득 궁금해진 점은 유키노가 어떻게 ‘비밀의 폭로(피의자가 진범만 알 수 있는 사실을 자백하는 것)’를 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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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죽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어릴 적에도, 중학교 시절에도, 성인이 된 뒤에도,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언가에 절망하려 할 때마다 자신을 살려주려는 누군가가 반드시 눈앞에 나타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만은 용서 못 해.”

 강한 어조로 그렇게 말해준 이는 누구였던가.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중요한 선택지를 빼앗기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발끈하던 기억이 난다.

 차라리 누군가에게 심판받는다면 분명 순순히 받아들일 것이다. “사형당하고 싶었다”라는 흉악범의 농담 같은 말도 마냥 웃어넘길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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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가을에 요코하마 지방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뒤로는 죄를 뉘우쳤으며, 구치소에서는 조용히 그때를 기다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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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름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1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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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무것도 없는 하얀 공간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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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슬로에 새로운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치명적 상처는 피해자의 목 부위, 절개 부위가 작은 타원 두 개가 겹친 모양이다. 마치 물린 자국처럼. 그리고 피해자의 혈액이 부족하다. 누군가 피를 마셨다는 것이다. 뱀파이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듯이. 카트리네 일행이 사건 진척에 난항을 겪고 있을 때 해리는 형사 자리에서 물러나 경찰학교에서 수업을 하며 행복 속에서 살고 있다. 사랑하는 그의 부인 라켈과 암묵적으로 형사 사건에 대해선 말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확인하고 행복의 맛을 느끼는 중이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단어를 처음 인식하게 된 해리는 차라리 나중에 올 불행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미리 불행으로 빠져들어가고 싶어한다. 그의 마음을 엿보기라도 한 듯 경찰청장 미카엘 벨만은 그에게 반 강제적으로 이번 살인 사건의 수사를 의뢰한다.

 살인자의 부름에 응답한 해리는 사건을 조사하던 도중 아내 라켈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수사를 그만두려 한다. 하지만 의사가 아닌 그가 라켈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코마상태에 빠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그녀의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 뿐이다. 결국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나서고 다시 사건 현장으로 돌아와 사건을 해결하려 힘쓴다. 결국 범인을 잡아내고 평화가 다시 찾아온 듯했다. 분명히 범인을 잡았다. 그런데 왜... 뭔가 속고 있는 듯 한 이 기분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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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 국가 이름를 제외하고 아무 것도 몰랐던 그냥 유럽 대륙의 많은 나라 중 하나. 그러나 나는 요 네스뵈를 안 이후로 노르웨이의 오슬로를 절대 잊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해리 홀레 형사 시리즈는 이번에 출간한 목마름까지 총 11권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시리즈 물이다. 이야기가 워낙 탄탄해서 많은 팬층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인데 나름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즐겨 읽는다고 말하고 다니던 나는 부끄럽게도 이번 목마름을 처음으로 해리 홀레 형사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앞의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책을 읽는데 지장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책 시작하기 전에 그 전 각 시리즈별로 간단한 줄거리와 등장인물 소개가 나와 있어서 책을 이해하는데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1권부터 봐온 독자들이 이번 책을 읽었을 때 더 흥미로웠을 거란 생각에 조금 아쉽긴 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책의 사건 개요보다는 해리 홀레라는 인물에 포커스를 맞춰 글을 쓸 예정이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 형사 해리 홀레는 행복과 정 반대의 위치에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본인 스스로를 그러한 환경에 빠뜨렸으며 그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술에 의존하던 인물이었다. 그랬던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행복을 그리기 위해 그들의 삶에 불안을 조장하는 형사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하지만 해리에게 행복은 일시적인 것이었고 차라리 이 행복이 언제 깨질까 불안해하며 살기보다 불행에 스스로 뛰어드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비유를 얇은 살얼음판을 계속 걸어가는 느낌이라고 비유했는데 마치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는 약한 희망이 고문이라는 이름을 숨기고 있는 듯 보였다.

 결국 해리 홀레는 다시 자신이 머물렀던 곳으로 돌아갔다. 아내가 코마상태에 빠져 침대에 누워있을 때 그는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할아버지는 아픈 할머니를 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책망하기보다는 당장 나가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미친 듯이 했다. 그리고 해리도 할아버지와 같은 행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 부분은 자칫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와중에 일에 빠져 있을 수 있을까? 하는 냉혹한 시선을 단번에 이해시키는 소름 돋는 비유였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에는 맥거핀 요소가 꽤 있었다. 물론 나의 추리력이 그다지 높지 않은 탓도 있지만 온갖 사람들이 다 수상해 보였다. 왜 저 사람은 이런 행동을 했지? 왜 작가는 이 부분을 굳이 넣었지? 책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수 십 번씩 범인 추리가 바뀌었다. 결정적으로 이야기가 꽤 진전되었을 때 발렌틴의 대사를 읽은 이후로 계속 혼란스러웠다. “넌 나랑 같아. 그래서 너도 속는 거야. 너랑 나, 우린 우리가 똑똑한 줄 알지만 우린 결국 다 속는 거야, 해리.” 마치 작가가 독자들에게 하는 말인 양 더 의심스럽고 무엇에 속고 있는지 답답하게 느껴졌다. 

 발렌틴은 또 해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넌 내가 되기를 꿈꾸었어. 넌 뱀파이어가 될 차례를 기다린 거야. 넌 목마름을 알아. 그러니까 그냥 인정해, 해리. 언젠가는 너도 피를 마시게 될 테니.” 예언 같은 그의 말대로 마침내 해리가 피를 마시게 되었을 때, 그 상세한 묘사는 내 목을 텁텁하게 만들어서 목마름을 느끼게 했다. 책을 읽다 말고 찝찝한 기분을 씻어내리기 위해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이렇게 단서 하나하나 다 의미있고 그냥 지나쳤던 것조차 모두 의미가 부여되는, 앞 뒤가 퍼즐처럼 시원하게 맞는 거 같은 형사 범죄물을 오랜만에 읽어본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이 책의 감상문을 쓰기에 나는 형사 해리 시리즈 중 10권의 부재가 너무 컸고 모든 인물을 이해하기에는 껄끄러움이 있었다. 그래서 꼭 해리 홀레 형사 시리즈를 1편부터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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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금 하시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제 일을 싫어합니다.” 스테펜스가 미소를 지었다.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거였다면 피아니스트가 되었을 겁니다.”

“피아노를 잘 치시나 봐요?”

“그게 저주 아니겠어요? 사랑하는 일을 잘하지 못하고, 싫어하는 일을 잘하는 거요.”

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주가 맞네요. 우린 우리가 쓸모를 발휘하는 일을 할 뿐이죠.”

“게다가 소명을 따르는 자에게 보상이 주어진다는 건 거짓이에요.”

“때로는 일 그 자체가 충분한 보상이 되기도 하죠.”

 “그건 음악을 사랑하는 피아니스트나 피를 사랑하는 사형집행인에게나 해당하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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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름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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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벨 죽이기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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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팅커벨 죽이기’는 고바야시 야스미의 죽이기 시리즈 중 네 번째 이야기로 가장 최근에 출간된 책이다. 죽이기 시리즈 특유의 세계관이 잘 녹아져 있으므로 죽이기 시리즈가 처음인 독자님들은 죽이기 시리즈의 첫 책인 ‘앨리스 죽이기’부터 읽기를 권한다. 책 순서는 ‘앨리스 죽이기’ → ‘클라라 죽이기’ → ‘도로시 죽이기’ → ‘팅커벨 죽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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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나왔다! 나는 ‘팅커벨 죽이기’ 출간 전 나왔던 죽이기 시리즈의 3권 전권을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죽이기 시리즈에 흥미를 가졌다. ‘앨리스 죽이기’를 처음 e북으로 읽었을 때 원래 좋아했던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다가 환상적인 동화의 요소가 오묘하게 뒤섞여 있는 이 세계관이 마음에 들었다. 그 이후 ‘클라라 죽이기’, ‘도로시 죽이기’를 읽으면서 이 세계관의 진실에 대해 끝까지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앨리스 죽이기’, ‘클라라 죽이기’, ‘도로시 죽이기’의 리뷰는 다음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ㅎ 우선 최근에 읽은 ‘팅커벨 죽이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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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재밌었다. 어렸을 적 디즈니 만화와 동화책에서만 읽어봤지 원작은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 머리 속에 있는 피터팬은 용기 있고 착한 아이였다. 팅커벨은 조금 질투가 있었지만 피터팬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요정이었다. 피터팬 원작에서의 피터팬은 사뭇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만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자세히 알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에서의 피터 팬은 읽는 중간중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선이 뭔지 모르고 자신의 행동이 악인지도 인식이 안된 거 같은 그의 잔인성에 이번에도 역시나 나의 동심은 와장창 깨졌다.

 죽이기 시리즈를 모두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이번 ‘팅커벨 죽이기’는 조금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네버랜드 전개는 환상보다는 잔인함에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듯한 느낌이고, 지구 전개는 등장인물들이 동창회로 가게 된 여관에서 큰 폭설로 인해 갇혀버리기 때문에 한 장소에서만 머무르기 때문에 약간의 지루함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앞선 책들보다 아바타라 유추도 어렵지 않고 범인을 알게 되었을 때 반전의 묘미도 크게 다가오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의 책들에선 두드러지지 않는, 이 죽이기 시리즈를 읽는 독자라면 계속 명심해둬야 할 메시지가 이 책에 담겨있다. 바로 동화 속의 나라와 지구의 아바타라는 연결되어 있지만 다른 사람(생물)이라는 것. 물론 앞의 3권에서도 이는 지속적으로 나오는 사실이지만 이번 책에서는 이 사실이 핵심으로 나타난다.


(지금부터 엄청난 스포가 담겨 있습니다. 읽지 않으신 독자님들은 여기까지만 읽어주세요!)


 잔인함의 극치인 피터팬의 지구 아바타라는 술을 좋아하고 여자들과 노는 것을 즐기는 히다 한타로다. 하지만 히다 한타로가 이렇게 된 것은 늘 아무 죄책감 없이 누군가를 죽이는 꿈 속의 자신을 견딜 수 없어 스스로 자살시도를 하고 여러 번 죽어 봤지만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닫자 세상을 가볍게 살기로 한 것이었다. 그렇게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꿈 속에서의 잔인성에 못 이겨 잠에서 깨어나면 자신의 몸을 자해하곤 한다. 온화한 웬디의 지구 아바타라는 어렸을 때 자신의 학생들을 희롱하고 괴롭힌 후쿠 선생님이다. 그는 일찍이 자신의 아바타라가 네버랜드에서 피터팬이 좋아하는 웬디인 것을 깨닫고 지구에서는 거리낌 없이 나쁜 짓을 한다.

 이모리는 괴로워하는 히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건 알아.’ 마치 이 말은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 그의 동창들과 여관 직원들이 죽은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닌 네버랜드의 피터팬의 잘못이다. 하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계속 피터팬과 히다를 같이 생각해서 히다가 위험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바야시 야스미도 독자들이 이런 착각에 쉽게 빠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듯 이번 책에서 그 사실을 직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솔직히 말해서 기대만큼 흥미롭거나 소름이 돋을 만한 반전은 이번 책에서는 찾기 힘들다. 그래도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앞으로 나올 죽이기 시리즈 책을 읽을 때 잊지 않고 계속 인식하면서 읽어야 되는 ‘동화 속의 아바타라와 지구의 아바타라는 다르다.’라는 사실을 담고 있기 때문에 죽이기 시리즈의 팬들은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항상 책의 마지막 장면은 ‘앨리스 죽이기’에서 나왔던 장면들이 조금씩 다르게 전개된다. 저번엔 조금 조금씩 느꼈다면 이번에는 그 전과 다른 새로운 세계에 큰 한 걸음을 내딛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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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삶을 위한 철학
토드 메이 지음, 이종인 옮김 / 김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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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눈길을 확 사로잡았다. 품위.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 대한민국에서 가장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품위’라는 말은 너무 고급져보이고 나랑 맞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철학이라니. 마치 이 철학을 공부하면 나도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겠구나. 게다가 책 표지 왼쪽 구석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었다. ‘성인과 괴물 사이의 어디쯤에 있는 보통 사람을 위한 일상의 철학.’ 뭔가 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 책을 선택했다.

 책을 펼치고 서문에 이렇게 적혀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다. 당신이 이 책을 집어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것을 증명한다. 다른 이들에게 품위 있게 행동하는 것은 당신에게 중요한 문제이다.’ 이 문장을 읽자 말자 이 책을 선택한 나 자신에 대해 뿌듯함이 밀려온다. ‘그래, 나는 착한 아이였어. 남에게 피해 끼치고 싶어 하지 않고 말이야.’ 물론 이 뿌듯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나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그야 말로 철학책이다. 저자는 이 책이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철학책이며 이 책을 통해 도덕적 생활 방식의 틀을 제시하려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생활 방식을 ‘품위 있음’이라고 명명했다. 뭔가 내가 생각했던 그 높은 의미의 품위와는 조금 달랐지만 이런 뜻도 좋았다.

 1장에서는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배울 수 있는 도덕의 의의와 종류에 대해서 나온다. 조금 지루할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 예시를 들어가며 생활 속의 도덕과 이론으로 정의된 도덕을 접목시켜 잘 이해할 수 있다. 2장부터 도덕적 품위에 대해 본격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2장에서는 주위 사람에 대해, 3장에서는 더 멀리 떨어져 있는 타인들에 대해 4장에서는 비인간 동물들까지 그 범위를 넓혀 나간다.

 읽으면 읽을수록 나야 말로 정말 보통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 도덕적 행동에 대해 만족하며 적절한 보상을 은연 중에 바라고 있다. 공익 광고나 유니세프, 그린피스 등의 모금 안내에 대해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적은 돈이라도 도움을 주지만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꺼려한다. 이런 부분에서는 나는 더 큰 도덕적 이념을 행동할 수 없는 착하지 못한 사람인가 하고 반성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 모두 보통 사람이다.

 특히 재밌던 부분은 ‘상식적 예의’에 관련된 것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는 상식적 예의 앞에서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인정하기 위한 상당한 자기 수용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렇게 행동했는데 상대방의 행동이 석연치 않을 때, 우리는 이에 대해 화를 내기도, 지적하기도 애매하여 그냥 합리화 시키는 것에 만족한다. 나만 이런 게 아니었다니, 누군가 나의 행동을 보고 말하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철학책이지만 이 책은 재밌다. 어려운 말과 사상들로 독자들로 하여금 머리를 쥐어뜯게 하지 않는다. 뭔가 어려워질 때 쯤 바로 적절한 예시를 통해 실생활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지극히 평범한, 하지만 더 나은 인간관계와 자기 계발을 통해 더 좋은 삶을 살고 싶은 착할 사람들이라면 지금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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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의 운전교실 - 운전면허 합격부터 실전운전 마스터까지 유튜브 드라이빙 스쿨
현상철 지음 / 김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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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블로그에 글을 남길 거지만 나는 작년 여름에 운전면허를 따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작년 여름 바로 필기 시험을 치고 합격, 이제 장내기능시험과 도로주행시험을 남겨 두고 있었다. 원래는 차를 모는 것을 무서워해서 따지 않으려고 했는데 출판 마케터가 되고 싶다면 운전면허는 있어야 한다는 말에 따야겠다고 생각했다ㅠ 그래서 장내기능시험은 도저히 용기가 안나 미루고 미루다가 올해 여름, 필기시험 유효기간이 끝나기 전에 부랴부랴 준비했다.

 학원을 등록했지만 바로 차를 몰 자신이 없었고 이리저리 유튜브를 검색하는데 가장 많은 검색순으로 미남의 운전교실 상위권에 올라왔다. 학원에서 수업 들으면 선생님들이 매우 불친절하고 무섭다는 말이 많아서 긴장하고 있었는데 유튜버 미남쌤은 친절하셨다. 처음 기기조작부터 경사로, 좌회전과 주차 방법까지 아주 친절하고 상세하게 가르쳐주셨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학원으로 갔다.

 다행히 학원 선생님도 친절하셨다. 하지만 좌회전을 다하고 난 뒤 핸들을 어느 정도로 풀어야 하는지, 내가 몰고 있는 차를 어떻게 차선 중앙으로 맞춰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운전에 대한 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더 애매했다. 그래서 결국 집에 돌아와서 추가로 미남쌤의 수업을 더 들었다. 역시 어느 정도 확신이 갔다.

 그렇게 나는 미남쌤과 학원의 도움으로 무난하게 장내 기능 시험을 합격할 수 있었다. 이제 도로주행시험을 앞두고 있을 무렵 이번 책을 만나게 되었다. 괜히 반가웠다. 책의 초반에는 초보운전자 셀프 체크리스트가 있는데 하나씩 읽으면서 체크를 하다보니 체크항목은 6개.. 나는 왕초보 중에서도 왕왕초보였다. 그 다음 본격적인 책의 시작으로 자동차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장내기능을 합격했지만 여전히 불안함이 남아있었는데 자동차에 대해 알고 보니 이제 차가 마냥 무서운 존재로 보이지는 않았다. 두 번째로 운전준비 파트를 읽는데 몇 번이나 이마를 탁탁 쳤는지 모른다. 너무 기본일거라 생각해서 베테랑이신 학원선생님은 말해주지 않으셨던 핸들 꽉 쥐지 않기, 룸미러 활용하기 등 꼭 알아야하는, 하지만 지나치기 쉬운 것들 하나하나 다 적혀있었다. 아마 장내기능시험 치기 전에 이 책을 읽었으면 100점으로 합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목차 구성은 운전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부터 가장 어려운 운전 상황까지 순서대로 설명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목차도 세세하게 나눠져 있고 마지막에는 단어별로 찾을 수 있게 편집이 되어있었는데 앞으로 운전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 바로바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글로만 설명하기 애매한 부분들은 그림과 함께 설명이 되어 있어서 훨씬 이해하기가 쉬웠고 직접 차에 탄 것처럼 시뮬레이션하기에도 좋았다. 또한 설명이 되어 있는 부분마다 유튜브 영상으로 바로 넘어갈 수 있는 QR코드도 있어서 더 편리했다.

 아직 운전면허증을 받기 전까지 도로주행시험이 남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운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사라진 것 같다. 남은 한 번의 시험은 책을 꼼꼼히 읽으면서 공부해서 합격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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