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앰마

도시를 가로지르는 수로 옆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수로를 천천히 지나는 이른 아침의 바지선 몇 척

.

이 책은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총 12명의 인물(여자)들의 이야기로 각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삶을 추구하는지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들을 알 수 있다.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은 한 명씩은 서로의 삶에 깊이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남아있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앰마의 희곡 <다호메이의 마지막 여전사> 첫 공연에서 만나게 된다.

.

 뭐랄까. 책을 덮은 후 과연 내가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잘 쓸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나는 이 책을 너무 오랫동안 읽었다. 원래 문장 구조 형식에 맞지 않는 문장들과 마침표가 없는 글들은 잘 읽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읽다보면 이런 문장 형식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스토리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데 이주 정도 걸렸지만 처음 앰마 이야기를 읽은 시간이 일주일 정도고 다른 11명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은 시간은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어떤 책보다 줄거리를 쓰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누구하나 주인공이 아닌 사람 없이 12편의 단편소설을 모아놓은 소설집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12명은 묘하게 다 연결되어 있었다. 앞에서 나왔던 인물들이 다시 소개될 때는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다. 

 참 어려운 책이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으로써 나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이 책은 그 혼란스러움에 답을 내려주기보다는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수용하기 힘든 것들도 있었다. 여기 나오는 몇몇의 사람들도 단지 백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속성을 판단하기에는 지나친 경계이지 않나? 이미 차별받지는 않을까 백인들의 시선과 행동을 크게 의식하는 것은 그들이 과민하다고 볼 수 있지는 않은가? 하지만 책을 점점 읽으면서 느낀 건 이는 내가 감히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물론 나도 흔히 백인들 입장에서 말하는 유색인종이긴 하지만 (유색인종이라는 말도 참 이상하다.) 과거 유럽인들이 침략국의 흑인들에게 했던 만행들을 단 10%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선대의 선대에서부터 어떤 수모를 겪어왔는지 들어왔을 사람들은 더 상처받거나 더 무시 받지 않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당장에야 나도 유럽이나 미국에 가면 아시아에서 온 이방인으로 낯선 눈빛을 받지 않을까 걱정되는데. 

 이 책은 여기서 몇 단계 더 들어간다. 흑인 ‘여성’을 통해 인종 차별에 더해 성차별에 대해 말하고 흑인 여성 ‘성소수자(즉 레즈비언)’를 통해 성적 취향에 차별받는 사람들의 삶도 이야기한다.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인 그녀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나 역시 아직까지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과 나도 모르게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많이 부족하다는 점을 느꼈다. 그들은 그들이다. 그들은 우리의 이해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전반적인 이야기들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앞뒤 문맥과 등장인물들의 관계들이 견고하게 짜여있었다. 다만 굳이 이런 설정까지 넣었어야 했을까. 괜히 이 책이 말하고 있는 본질을 잠시나마 흐리게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부분이 있었다. 윈섬과 레녹스의 이야기였다. 음... 내가 모르는 작가의 의도가 있겠지 하고 넘어갔지만 여전히 의문스럽다.

 이 책은 내 생각 쓰기가 참 조심스러운 이야기였다. 나도 모르는 것이 많기에 나의 글이 어떤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고 아무렇지 않다고 여겼던 대목이 이 글을 읽는 어떤 이의 눈에는 무지하다고 느껴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글 한 문장을 쓸 때마다 써도 되는 글인지 고민했다. 혹시나 그런 부분이 있다면 내가 또 더 배울 수 있게 알려주셨으면 좋겠다.

 이 책이 세상에 나와서 수많은 극찬을 받은 사실 자체가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나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은 이런 이야기가 공감을 많이 샀다는 뜻도 될 수 있다. 이런 이야기의 책이 나오지 않는 세상(좋은 쪽으로)이 올 수 있을까.

.

그렇다면 네가 그들과 이야기를 해야지, 돔, 페미니즘의 지형을 바꿔놓는 여자들이 더 많아지고, 보통 여자들의 행동주의가 들불처럼 번지고, 수백만의 여자가 깨어나 완전한 권리를 지닌 인간으로서 우리 세계의 주인 자리를 찾는 가능성에 눈을 뜬다는 건 축하할 일이야

우리가 어떻게 이걸 반박할 수 있겠어?

.

둘이 함께 존재하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