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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선 - 하드보일드 무비랜드
김시선 지음, 이동명 그림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평점 :
<오늘의 시선:하드보일드 무비랜드>라는 제목을 본 순간 다른 무엇도 아닌 "무비랜드"라는 표현이 눈에 밟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패러디한 제목으로 보이지만 책을 다 덮고 난 뒤, 이 "무비랜드"가 무엇을 뜻하는지 곱씹게 되는 바가 있는 책이다. 무비와 그것이 발붙이고 있는 랜드의 조화. 이 책의 핵심을 꿰뚫는 두 키워드다.
이전에 <걸작의 뒷모습>이라는 예술사회학을 공부한 기자가 쓴 논픽션 에세이를 읽으면서 한국에는 왜 이러한 책이 나오지를 않는가 생각한 적 있다. 예술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생산되고 대중에게 공개되기까지의 과정과 그 공간을 포착하는 책이다. 수많은 업종 종사자와 인터뷰하고, 예술이 유통되는 일곱 개의 공간을 발로 뛰면서 그 세계의 공기를 담는다. <오늘의 시선: 하드보일드 무비랜드>를 볼 때 <걸작의 뒷모습>을 처음 읽을 때 느낀 질투를 이제는 느끼지 않아도 되구나 생각했다. <오늘의 시선: 하드보일드 무비랜드>는 영화친구가 "무비"란 무엇인가를 자신의 경험을 빌어서 넌지시 이야기하는 듯한 다정한 글들로 시작된다. 이 다정한 어투와 투명한 렌즈로 이윽고 영화 바깥의 "무비랜드"로 나아간다. 영화 관계자들과의 소소한 에피소드와 잡담으로 우리는 제작, 극장 운영, 배급 등 영화가 발 딛고 서있는 땅을 상상하고 느낄 수 있다. 그들이 저마다의 사랑을 안고 서있는 영화계는 애플민트가 심어진 풀밭을 거니는 것마냥 푸근하다. 작가는 그 사랑이 기어코 관객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듯하다. 이러한 일화가 떠오른다. 올리비아 핫세가 왜 남편이랑 결혼하게 되었나라는 질문에 "그 사람이 나의 눈동자가 초록빛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서요."라 답한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그 사람의 눈동자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기억하는 것이듯, 김시선이 영화를 사랑하는 방식은 영사기의 오색찬란한 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기억하는 것이다. 영화계를 종횡무진하는 사회학적인 보고서를 넘어서, 작가는 영화를 어떻게 사랑하며 살 것인지를 묻는다.
작가가 그리는 무비랜드를 따라가면 우리는 글에 설득되는 것이 아니라 이끌려가게 될 것이다. 누구든 읽기 쉬운 말로 관객에게 다가가려는 그의 따뜻한 진심에 녹아내리지 않을 독자가 어디에 있을까. 영화를 사랑하는 글은 이내 삶을 사랑하는 글로 바뀌며 우리의 삶에 영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혹은 그 반대를 느끼게 만든다. 이 다정한 글에 괜시리 반감을 느낀다면 그는 아마도 "영화를 보는 척"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보다 순도 높고 투명한 글은 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