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카스 R. 선스타인 지음, 이정인 옮김 / 프리뷰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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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느덧 블로그를 시작한지 1년이 되어간다. 블로그가 활성화 된지 어언 10년이 넘어서다. 개인적으로, 사생활 노출과 관련 각종 정보가 떠밀리다시피 하는 인터넷 블로그에 관심이 없는 상태였다면 이제야 시작한 블로깅이 이해가 될 것이다. 특히 최근 3개월 가량의 블로그 생활은 참 시간을 나름 많이도 할애했던 것이, 사이버 이웃들이 하나,둘 생기면서이다. 장점이야 말하지 않아도 다들 인식하는 거다. 방대한 정보의 양만큼이나, 신지식의 신선한 유입.현 사회의 원동력,편리한 네트웍 형성 그리고 각종 이벤트들의 쏠쏠한 혜택등등. 한데, 그런 재미를 느끼는 와중에도 이해할 수 없는 특수 집단들의 편향성을 절로 깨닫게 된 사건이 있었다. 각각의 사이트마다 특징이 있다.내가 참여하고 있는 리뷰단의 경우도 서점 매매를 활성화시키는 성격을 띤다. 책을 읽고 글을 올리다보니, 다독가들의 세계가 흥미로웠다. 관심있는 책에 대한 서로의 격려,추천,정보 교환 등 유익한 이점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러다가, 이웃들간의 보이지 않는 일방성을 인식했다.그것은 주로 무리를 이루며 때로는 무조건적인 추천으로 평판을 쌓아가는 식이다. 한 달에 많아야 10권을 읽을까 말까한 내가 느끼는 이 특수 집단(리뷰어)에서의 문제점을,저자는 <집단"극단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집중 서술하고 있다.  

 

한 집단에서의 극단성은, 굉장히 비논리적으로 전개될 때가 허다하다. 책에 따르면, 생각이 비슷한 개인이 모인 집단에서는 그렇지 않은 집단의 무리보다 한층 강화된 초기의 입장을 고수한다고 말한다. 이를테면,보수론자들이 사회 논란에 대한 토의 후 더 보수화된 극단화가, 진보론적 입장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집단화가, 숨겨놓았던 신념과 욕망을 끄집어내거나, 또는 새로이 생성시킨다(p52)는 점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집단 토론을 통해서,개인이 내부에 억눌러 왔던 불만들을 호소하면서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하기 때문으로 보면 된다. 이와는 달리, 불만이 표출되지 않은 개인에게도 집단 극단화가 생성될 수 있었다. 그것은 ,쉽게 말해서, 물들기 또는 휩쓸리기 현상으로 봐도 무관할 것 같다. 주로 우유부단한 신념을 가진 개인이 인지하지 못한 불만이더라도, 극단 선동꾼들이 전달하는 대화만으로도 극단화를 유도하는 믿음이 강력해 진다는 것이다. 

 

그럼,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초기 질문으로 돌아가본다. 이에 대한 해답은 이러하다. 매체가 주동하는 그릇된 정보확증이 주는 평판이 극단화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그러나,여기에는 오류가 있다. 개인이 평판을 염두해 둔 판단은 정확한 정보나 주장에서 기인하지 않는다.정확성(1)의 부재다. 그러기에,또한,그 집단 내의 편파성이나 왜곡성(2)을 간과하기 일쑤다. 알면서도 적극적인 모순 해결을 시도할 수 없게 된다. 너,나 할 것없는 이런 일방적 쏠림 현상은 가까이 우리 경제에서도 엿볼 수 있다. 서브프라임 위기(2008)와 IT 거품(2000) 등의 각종 버블도 이런 극단화의 일종이라고 책에서 소개된다. 집값 불패 신화나 특정 주식의 주가 상승이라는 부정확한 정보와 잘못된 믿음이 우리를 극단화에 동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로버트 쉴러는 이것을 '사회적 전염(social contagion)'현상이라고 했다. 극단화는 이렇듯, 사회적 재앙을 낳는 문제점을 남긴다.

 

이 극단화의 폭포 효과(cascade effect)를 막아내기 위해서 우리는 '동일성격'을 지닌 집단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애초에 집단내의 개인이 이질적인 것을 배척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였다. 그래서, 다양한 의견의 수렴을 저자는 강조한다.저자가 제시한 해결책으로는 전통주의,결과주의 그리고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이라는 세 가지가 있었다.마지막 '견제와 균형'이 바로 이 (관점의)다양성에 초점을 둔 것이다. 민주체재가 전쟁에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여기에 있다.(P198) 민주국가는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어 집단화의 오류,두 가지를 희석시킬 수 있는 것이다.(1)정확한 정보 획득이 가능하고,(2)그릇된 방향 선택시에도 수정이 가능하다는 대응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재미있는 권위에 대한 복종의 이해를 해 봤으면 한다. 저자는 복종에 대한 이해없는 극단주의의 이해는 어렵다는입장을 밝힌다.꽤 설득력있다. 복종의 이유는 전문가나 권위자에 대한 믿음에 전제가 깔려 있다. 이와 관련된 밀그램의 실험에서도 봤듯이.  권위자의 명령이 아무리 비도덕적이고 물의를 일으킬지라도,하관은 상관의 명령을 따른다는 것이다.이리하여 독재체재와 같은 상황적 극단을 몰고온다.책의 내용 중에 내게는 이 부분이 가장 예상을 뛰어넘는 흥미 요소였다.

 

추세는 단일성보다 다양성을 중요시한다.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는, 극단화를 조장하는 '정보의 누에고치(Informaton cocoon)'에 반대하고, 유유상종이 우발할 우려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링컨 대통령과 루스벨트 대통령이 유명한 것도 다양한 관점과 참신한 의견을 추구한 덕분이다. 그들은 '정보의 반향실(echo chambers)'에 갇히지 않고, '정보의 풀(pool of information)'을 넓혔다. 정치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극단화의 위험성을 직관한 지도자들이 성공한 사례가 많다.

 

블로그 생활을 시작해서, 이 책에 대한 관심이 생겨 읽게 되었다. 다양한 것에 대한 관심, 그것이 결국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각종 병리 현상-테러리즘,경제 위기,음모론,민족화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모태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양성은 반대 의견을 통해 집단 극단화가 범할 실책을 최소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민주주의 국가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생각의 다양성에 그 핵심이 있음을 증명한다. 끝으로, 저자는 착한 극단주의에 대한 예도 잊지않고 비교적 간단히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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