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버먼의 자본론 - 과연, 자본주의의 종말은 오는가
리오 휴버먼 지음, 김영배 옮김 / 어바웃어북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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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불평등이 만연하다.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서구 열강의 자본주의가 몇 남지 않은 공산주의 국가마저도 자본주의 체재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한데, 평등과 합리를 주장하는 자본주의의 이면에 엄청난 불평등과 불합리가 산재해 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미국인들이 피스(Peace~)를 부르짓는 모습을 어릴 적부터 보아왔다. 소위 정재계 고위층뿐만이 아닌, 대중들이 자주  말 끝마다 평화를 거론했던 기억이다. 왜 그들은 그토록 평화를 갈망했던가!

 

휴버먼의 자본론은 어째서 자본주의가 멸해야 할만한  불완전한 체재인지를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다. 드러내며 자본주의를 맹목적으로 찬양하거나 혹은 파다보면 들추어지는 해악을 잘 포장해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독점이 부른 전체주의의 말로는 타국의 식민지화와 전쟁으로 이어졌다. 잔혹한 전쟁이다. 그리도 자본가들이 명목상 핏발을 올리며 마무리짓던 평화의 반대를 자행하고 있었다. 물질주의의 혜택을 받는 소수의 부자가 국가와 손을 잡고 배불리먹고 여가를 즐기고 무병 장수하는 동안, 노동자 계층인 다수 빈자들은 기본 생필품조차 넉넉하게 챙길 수 없이 허덕이며 생존에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부자는 독점독식 호사하고, 빈자는 끝없는 경쟁속에서 피터지며 죽어가는 것이 자본주의의 여러 얼굴 중 진짜 얼굴이지 않을까 한다. 

 

부쉬 미 대통령이 이라크를 침범했을 때, 대의명분상 그것은 911테러에 대한 경고이자 보복이었다. 하지만,  그런 어리석은 일부 기사에 속아 넘어간 사람이 얼마나 되었는지 알고 있다.전쟁을 댓가로 미국이 얻은 수혜는 어마어마했다. 자본주의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국내 실업과 석유에너지의 대외적인 발판을 합리를 내세운 명목상 전쟁으로 마련하기에 이른다. 어디 그 뿐인가.

 

1870년대 유럽 열강들은 당시 제국주의로 인해 국내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자본에 대한 해결책을 찾았다. 암담한 식민지 정책이다.  더 나은 수익 창출을 위해 가난한 아프리카나 아시아 침략을 서슴치 않았었다. 빈국의 지도자들에게 몇 푼 되지 않은 비단과 돈을 제공하고 헐값에 나라를 삼켜 식민지화해 버렸다. 고통당하는 대상은 언제나 빈국의 가난한 국민들임은 두말 나위 없다.

 

이 모든 세계 역사의 어두운 기록은 물질이 낳은 만능주의의 과거 진실의 하나였다. 단지 과거로 치부해 버리기는 자본주의가 대의상 바라는 평화나 공평이나 자유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에서 사회주의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했지만, 이 책을 읽어가면서 자본주의 역시 어쩔 수 없는 헛점을 지닌 체재임을 명백히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수 백년 이상 자본주의가 활기를 치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하워드 볼룸의 <천재 자본주의, 야수 자본주의>에서는 환상의 인프라, 즉 만인의 꿈이 자본주의에서는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노력하는 만큼 한 발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우리네 희망을 자본주의 안에서 키워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를 방증하기 위해서, 그는 얼마나 많은 자료를 끌어모았던가. 하지만 휴버먼의 자료가 어쩌면 더 설득력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옳고 누가 그른지를 떠나서 언제나 상황은 화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이 쪽 말을 듣고 보면 이 쪽 논리가 타당한 것 같다. 일부 불완전한 자료나 화려한 언변에 당하기 일쑤다. 개인이 정확에 근접하는 개념을 잡기 위해서는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고 사유할 수 있는 엄청난 시간을 길들인 생각의 양들이 부수적인 그릇에 담길 필요가 있다.

 

몽상적인 사회주의가 아닌 근이상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사회주의로의 회귀가 올 법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분명 자본주의라는 환한 미소 아래, 내장이 파열되고 있는 인간상이 그려지고 있는 현실이다. 기존에 실패한 사회주의의 문제점 그리고 현재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자본주의의 헛점을 감정을 지닌 인간들이 차가운 머리로 내다봐야 할 시점이 왔으면 좋겠다. 차가운 시선 아래 일지언정, 따듯한 인간상이 만발하는 미래를 보고 싶다. 풍요 속의 빈곤이 아닌 중재 속의 풍요를 더 바래 본다. 자본론에 대해 차가운 이성으로 바라보고 따뜻한 마음을 꿈꾸는 이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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