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인간실격

인간실격 외 ㅣ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1. 수없이 '인간실격'이라는 책 제목을 들어왔다. 자뭇, 그 안에 심오한 사상이 담겨있을 법한 범상치 않은 제목이다. 예전에 다자이의 <사양>이라는 저서를 접하고는 이 작가에게 살짝 반했다. 나와 어딘가 코드가 맞아 떨어진다라고 생각했다. 그 때 본 다자이의 사진은, 굉장히 수척한 모습의 중년이었다. 사실 이 사진 이외는 이 작가에 대해서 알고 있던 것도 특별히 없었고, 작가의 사상만큼 가치를 둘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책을 읽고 난 후, 두 가지 지레 짐작을 수정하게 되었다. 하나는, 이 제목이 결코 그리 심오한 것이 아니라는 것. 또 하나는, 일찌기 일견했던 그의 사진은  어쩌면 그리 중년의 모습이 아닐 것이라는 판단이다. 제목인 '인간실격'은, 그저 일본의 일반적 '세상'이 보는 관점에서의 '실격' 을 의미했다. 단순히,  현일본 사회에서도 종종 '아버지 자격'을 거론하듯이 그런 관점에서의 '실격'인 것 뿐이었다. 결코 다자이의 눈으로 본 자신이  실격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읽은 '실격'의 의미는  그러하다고 본다. 그러나, 아쉽게도 주인공의 행동만큼은 '실격'이 아닌 '실망'에 가까웠음은 부정할 수 없다. 생활에 전전긍긍하면서도 마약까지 손을 댔다. 선택받은 부잣집 도련님의 무분별한 소비에 대한 지각이 밑바탕에 깔렸다고 밖에는 딴 말로 나는 표현할 수 없다.

그리고 시공사가 낸 책 겉표지의 다자이는 약간은 건강한 젊은'음지인'의 외양인데, 잔뜩 겁먹은 표정에 내면의 걱정이랄까 묻어 나온다.머리말에서 평하는 것처럼, 그의 사진 속 모습 추이가, '흉하게'에서 '죽은 듯한' 그리고 마지막에는 '기이하다' 함은 과장이 심한 듯하다. 변론하자면, 그가 아오 모리 변방 출신에다  자신을 감춘 익살꾼임을 감안할 때, 어쩌면 흉칙한 유년 모습은  그저 네부타의 모습을 흉내내고 있었던 것 뿐인지도 모른다. 그는 요절? 했다 한다. 이런 이유로, 난  아픈 이의 노안을 본 것으로 수정하게 되었다.

2. 가정 환경과 내면 심리:  작가의 실체, 주인공 요조(다자이 오사무의 애칭) 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히 집고 넘어가야 할 두 가지 부분 이 있지 않을까 한다. 그가 태어난 시대적, 주위를 둘러싼 환경적 요소이다. 어째서냐고 물으면, 이러하다. 첫째, 시대적 요소는 주인공이 유년 시절부터  줄곧 자신을 아웃 사이더로 인지하는 강력한 힘의 근원이다. 둘째, 환경적 요소. 이것은 인간 내면 속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서, 그가 타고난 본성과 적절히 섞여서 나중에 생을 휘젓는 기술의 원천이 되고 만다.

쓰시마 슈지(다자이의 본명)는 11남매중 열번째,그것도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당시 일본의 가부장 제도 탓에, 이 '오즈카스' (쓰가루 지방 방언-둘, 셋째 아들은 별 볼이 없다는 뜻)라 불리는 존재는, 지극히 허무한 존재이다. 여기서,그의 니힐리즘의 뿌리가 밝혀진다. 뿐만이 아니다. 늘상 집안 어른들이나 타인을 위해 서비스 정신을 발휘해야 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다.결국, 내키지 않는 그 묵시적 자기 사슬에 묶여 자신의 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부분을 선행적으로 알고 가면, 앞으로 닥칠 그와의 시각차를 좁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 암울한 시절에 아웃사이더로 살아가야 했던 나약한 인생을...  

3. 삶의 목표와 음지인 : 요조는 음지인. 음지인의 공통점은 이렇다 할 삶의 목표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책을 보면서 병약했던 그의음울은, 부모와 형제들보다 상당한 시간을 외부인의 손을 거쳐 자라면서 느낀 혈연적인 애정 결핍,관심 결핍의 산물인 것 같았다. 그런우울한 내면을 감추는 요조는 언제나 겉으로는 코메이언이다. 누구나 웃겨줘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참 색깔을 가장 먼저 눈치 챈, 다케이치라는 한 동급생을 특이한 존재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친구의 두 가지  예언-명예와 불명예-을 가슴에 간직하면서, 마치 그는 그 예언에 따라 만들어진 인간임을 확인해 가는 성장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


삶에는 그 과정에 꿈이 있어야 하고, 어느 순간 자신이 그 꿈과 가까운 곳에서 머물고 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주인공은 그가 명예스럽다고 생각하는 예언인 화가의 꿈에 실패한다. 그에 따르면, 삼류잡지의 만화를 그리는 직업을 가지게 될 뿐이다. 요조의 이 불행은 그의 무의지, 니힐리즘이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그것이 삶의 목표 달성을 늦추고 있었던 것이리라. 극히 소수 일부가 그들의 꿈을 이루고, 이들 성공한 자의 잣대로 '세상'의 잣대는 세워진다. 그런 세상의 눈을 요조는 의식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불가사의한 힘에 이끌려 명예스런 꿈의 주위를 맴돌면서... 


4. 치명적 실수와 인간신뢰 : 다자이가 도쿄로 고등학교 진학 후, 미술학도인 호리키라는 이름의 한 건달을 만난다. 처음 만남에서부터 그에 대한 첫인상은  가볍게 만날 존재이다. 하지만, 타인을 향한 특유의 '서비스 정신' 과 상대하지 않으면 생겨나는 '죄의식'으로 점철된 본성상 자주 어울리고 방탕한 생활의 기로에 접어든다. 훗날 현재 달콤한 이 교제가  자신을  죽음에로 이끄는 결정타가 될 줄 모른 채...

요조는 호리키를 통해서,' 인간 신뢰'에 대한 마지막 희망,아내,을 잃게 된다, 아내에 대한 불신의 고통은, 그를 마약 중독자로 만들었다.  이것 때문에 정신병원으로 몰리고 '실격자'가 된다. 이 친구에게 속아 얻은 '정신병자'라는 타이틀의 충격은 당시 요조에게 '무관심'을 넘어 '격리'에로의 이중 고통이었던 것 같다...이번에는 가족에게만이 아닌, 모두에게서의 단절이었던 것이다.


주인공의 사상은 참으로  때로는 비이성적이다. 세상의 눈으로 보자면, 자신이야말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존재이다. 하지만 아내의 도덕성을 따진다. 인간의 신뢰가 더럽혀 졌다고  논한다. 이 사고의 흐름은 꽤 불만족스럽다. 그리고, 한가지  아쉬운 부분이라면한 번도 당당히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피력하지 않고 오로지 감추기만 했다. 누구라도 친구라면, 한 번 쯤은 거세게 꼬집고 싶은 면모였다. 내면의 우울을  토해내도록 말이다.


5. 요조-자신과 닮은 참 색채를 감지한 한 여인에게 비로소 사랑을 느끼다.궁극적으로 자신을 저버렸다고 생각하는 이 세상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저 세상으로 향하는 몇 번의 시도를 보여준다.그러면서, '실격'이라고 간주되는 그것 때문에 크나 큰 타격을 받고 헤어날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들었다.그가 단 하나로 발견한 진리를 뒤로. "그저 모두 흘러가는 것"이라는.'실격'이라는 자체를 그저 흘러가게 버려 둘 수 있었다면...젊다면 젊은 나이에 이 세상과 연을 끊었지만, 과연 저 세상에 만족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조심스레 권하며 - 이처럼, 온갖 오해를 낳는 제목 덕에 아마 이 고전을 쉽게 접하지 못한 분이라면 그리 걱정을 안 하셔도 될 듯하다.출판사(시공사)는 이런 면까지 세심히 고려하여 인간실격 외에도 교묘하게 우스운 5편의 단편도 싣고 있기 때문이다.^^ 상상 외의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