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가 말할 때 - 법의학이 밝혀낸 삶의 마지막 순간들
클라아스 부쉬만 지음, 박은결 옮김 / 웨일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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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양 주연의 드라마 싸인부터, 검법남녀 그리고 일본 드라마 언 내추럴 이 세 드라마의 공통점은 부검의(법의학자)가 주인공인 드라마라는 점이다. 매일 죽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직업인 법의학자들은 과학적 증거를 가지고 시신에 남겨진 마지막 진실을 규명한다.

이 책의 저자 클라아스 부쉬만은 독일 대표 법의학자로 자신이 겪은 인상적이고 이야기들을 12편으로 엮어냈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어둡거나 침울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용은 생각보다 덤덤하게 서술되어 책 너머로 법의학자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는지, 또 그들의 직업윤리는 어떻게 지켜지는지, 어떤 경험이 저자를 법의학자로 설 수 있게 하는지 엿볼 수 있었다.

법의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죽음은 아주 가까이에 있고 놀라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방법으로 죽음에 다다르는가에 따라 삶이 행복한 결말이 되기도, 비극적인 결말이 되기도 한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을 때 법의학자들이 사실을 밝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 억울한 죽음을 막는다. 잔인하게 살해당한 시체나, 말도 안 되게 훼손당한 시체 그리고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 가는 시체들 모두 법의학자의 손을 거친다. 그를 통해 어떠한 경위로 사망했는지 그 시체가 어떤 과정을 통해 숨을 멎게 되었는지 밝힌다. 그렇게 법의학자는 죽은 사람의 몸에 남은 모든 메시지들을 통역해 살아있는 사람의 거짓말을 밝히는 통로가 된다.


저자가 구조대에서 근무했을 때의 일을 회상하며 참혹한 죽음을 갑작스럽게 맞이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며 느낀 무력감을 풀어냈다.

자신의 판단하에 자살을 택한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독자와 나눈다.

법의학자는 죽은 자의 말을 산 사람의 언어로 통역한다.

법의학자가 만난 사람들의 죽음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어떤 게 죽음의 원인이 되었는지, 어떤 영양 상태와 도움을 받았는지를 보며 그 사람의 세계를 살펴 서술한다.




그리고 법의학자가 보기에도 인상 깊은 죽음은 신체가 어디까지 가능한 지 보여주기도 한다.

또 저자가 어떤 경위로 사망했는지 신체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준다.

또 독일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재판을 진행하는지, 어떤 형량을 받는지, 어떤 절차들이 있고,

사망 선고는 누가 내릴 수 있는지, 부검의는 어느 선까지 필요한 것인지 등

생소한 분야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배경지식들을 매끄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밝혀내지만 어떻게 자신이 일상을 지켜내는지도 보여줬다.

저자에게 과거 한 소방관이 말해줬듯 근무복 재킷을 옷장에 걸 때 그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같이 걸어둔다.

죽음을 매일 마주한다면 암울할 것 같지만 저자는 다르게 말한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알고 어떤 행운을 누리는 지도 알고 어떤 혜택받은 환경에서 사는지도 안다고 한다.

또 삶의 기쁨과 유머 감각도 잃지 않았다고 말한다.

죽음을 매일 보기에 자신이 가진 게 어떤 가치인지 더 잘 안다.

우리나라는 법의학자 수가 매우 적다.

이와 달리 독일에는 '몰려온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인기가 많은 직업이라니 우리나라와는 아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우리나라 법의학자 중 유성호 교수는 부검이 국가적 과제라는 말에 동의하며

'국민이 어떤 병으로 죽는지 알아야 국가 예산을 적재적소에 지원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1명이 100명을 부검해야 하는 높은 업무 강도는 돈과 워라밸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높은 직업적 사명감을 필요로 한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시체를 계속해서 일이고 항상 무겁고 끔찍한 시체만 볼 것이라고 생각한 일반적인 생각이 이 책을 통해 많이 개선되었다.

죽음을 마주하고 밝혀내는 법의학자의 눈을 통해 내가 가진 행운과 하루하루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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