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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호텔 ㅣ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2
마리 르도네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림원 / 2021년 9월
평점 :

할머니가 늪에 세운 호텔을 물려받아 관리하는 '나'의 감정과 시선을 따라 진행된다.
네온 사인 불빛만이 장엄 호텔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 같다.
할머니처럼 말끔하게 관리할 수 없다고 자신을 책망하다가
늪지대에 세운 할머니를 조금이라도 원망하려 하면 즉각적으로 '나'는 부정한다.
결국 할머니의 선택이 옳았고, 몇 수 앞을 봤다며 대단해 한다.

하지만 '나'는 평생을 장엄 호텔 근처만 돌아다녀 본 사람이었다.
엄마와 같이 더 넓은 세상을 둘러본 언니들과 엄마와는 달랐다.
연극배우의 삶을 동경하는 언니와 아픈 언니는 '나'의 호텔에 짐덩이처럼 맡겨진다.
마땅한 대가를 지불할 여력도 없으면서 문제를 일으킨다.
자신들이 무언가를 해낸 모양새가 되면 자신들의 공을'나'에게 일러주지 못해 안달 났고,
잘못을 하더라도 그 잘못이 결코 그들의 내쫓거나, 책임을 져야 할 이유가 되지 않았다.

무너져 가는 늪 근처에 철도 공사가 진행된다.
많은 사람들이 조사하고, 조사하고 또 공사를 진행하며
장엄 호텔에 머무른다.
낡아버린 호텔에 어쩔 수 없이 머무르는 사람들이 그들의 주 수입원이고,
'나'의 유일한 희망이다.
두 언니 아델과 아다가 헛된 꿈을 꾸는 것과는 상관없이.

언니들은 결국 끝끝내 그들의 울타리 안에 '나'를 들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들었다.
서로를 보면 탓하고 싸우기 바쁘지만 결국 자신의 자매는 서로뿐인 것처럼.
'나'는 그들의 시체를 수습하고, 장엄 호텔이 적힌 천으로 그들을 감싼다.
휩쓸리지 않는 곳에 무덤을 만들고 싶지만 결국 착실하게 모든 것이 휩쓸려 내려갔다.

서서히 무너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집요하고 자질구레한 불행이 연속적이다.
사람은 변한 듯하지만 변하지 않고 결국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더 깊은 구덩이를 판다. 불행의 궤에서 맴을 도는 것 같다.
외부의 개입이 없고는 나은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사치쯤으로 느껴진다.
폭우가 오고 나면 휩쓸려 사라지지 않길 바랐던 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른다.
무심하고 묵묵하게 살아낸다. 호텔의 나무에 개미가 구멍을 뚫고 스펀지처럼 부서지듯, 주인공도 결국 스러진다.
아델과 아다는 계속해서 이름이 나오고 계속해서 주인공의 짐이 된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의 이름은 알 수가 없다.
장엄 호텔은 몇 번이나 오래된 시설들로 위기가 오지만
언니들이 죽고, 철도공사가 진행되다가 무너질 때까지도 살아남는다.
읽으며 숨이 막힌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나도 묵묵하게 읽어냈다.
아다와 아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은 내가 이해할 수 없던 내 모습들과도 같다고 느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맴을 도는 점이나,
이유 없이 목표와 반대되는 일을 하거나 또 갑자기 나 자신을 북돋우고 또 사랑하게 되는 점이.
힘들고 위태위태하게 기워가면서 무너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짐이 되고,
어떨 때는 그 짐으로 인해 웃기도 한다.
여러 사람이 머물다 간다.
머무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좋은 관계가 틀어지기도 한다.
장엄 호텔은 삶을 상징한다고 느껴졌다.
늪 근처에 있는 장엄 호텔은 악취와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게 하고,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풍파에도 겨우 살아남게 하는 환경에서 살아나는 삶은 아니었을까 하는 감상이 들었다.
결국 '나'의 장엄 호텔은 살아남는다.
어떤 형태이든, 어떤 수입을 가져오든 스러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