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로하의 세상
김남겸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1년 5월
평점 :

sf소설이나 영화를 좋아하긴 하는데 막상 생각해보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나마도 단편정도고 아니면 연애소설 정도였는데 소개가 너무 흥미로웠다.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던 왕따 소년이 겪게 되는 지옥의 디스토피아. 그 끝에서 밝혀지는 충격적 반전.'
사실 이 문장보다는
다짜고짜 학교를 결석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덜컥 약속을 하고 협박때문에 등교했다가 참혹한 사건을 겪고
칩거를 하다가 결국 나왔는데
세상이 뒤집혀있다는게 초반부의 줄거리였다.
미친듯이 뒤집히는 전개가 너!!무!! 궁금했다.
소개만 보고 이거..뭐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데?싶었다.
소제목만 봤는데 다 읽은 후에 새삼 생각해보면 1.2.3 장이 말하는 것도 많지만 4장 재회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아영과 로하가 만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과거가 비틀렸으니, 사라진 시간선의 로하와 아영이 과거에서 재회하는 걸 말한다고 느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으면서 프롤로그가 시작한다.
연쇄적으로 비극이 휘몰아치면서 사람이 죽는데 사람들이 기도하는 모습이나,
애인을 밀치고 달리는 모습 등 세밀한 묘사로 현장감이 느껴졌다.
테러를 한 사람은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이 한 일이 결국 옳은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테러보다 더 큰 일이 일어나리란 걸 암시하며 심상치않게 시작한다.
주인공 로하는 고아원에서 자라 고등학교를 위해 독립했다.
삶이 무겁고 빡빡해서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혼자만 불행을 안고 있는 게 아니라며 안도하다가 그런 자신의 모습에 회의감을 느낀다.
잘 지내냐며 안부인사에도 답장 할 감정적 여유가 없다.
공부나 미래보다는 당장 눈 앞의 생활비, 학교폭력이 먼저 숨통을 조르고 있다.

자신이 아니었으면 왕따가 되었을 같은반 학생인 '한위'가 더 나서서 괴롭히는데 그마저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애잔해하는 것도 같다.
그런 로하가 참기 힘든 건 '저 녀석들 중 누군가는 커서 경찰이 될 것이고, 누군가는 정치인이 되겠지?'하는 생각이다.
자신을 무시하고 방관하는 같은 반 학생들이나, 괴롭히는 주동하는 건호나.
태어나 살아가는 삶이 후회되고, 지금 사는 곳이 지옥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같은 반 학생들이 눈 앞에서 모두 총살당해 죽는 것을 봤는데도
눈 앞에서 모두 죽었다는 것에 당황은 했지만
병원에서 깨어난 후 너무나도 멀쩡했다
. 괴롭히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지만 로하가 힘들어 한 점은 모두가 죽었다는 점보단
사람들이 그에게 갖는 편견어린 눈빛과 원하지 않던 관심이었다.
힘들고 지옥같던 시간에는 동정심은 커녕 못 본 척하던 담임선생님의 염려어린 문자나
(그 염려가 로하의 상황에 대한 것보다는 자신의 입지와 관련있던 게 아닐까.)
제 입맛에 맞게 로하에 대해 떠드는 말이었다. 현실적이었다.
sf 소설을 보면 좋아하는 점이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사람들의 태도를 구경하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일상에 스며든 sf적인 요소이다.
선을 잡아당기면 발열이 되는 즉석라면이나 빛이 안 드는 곳에는 의무적으로 설치된 태양광 전등이라던가
도파민 수치를 조절해서 최상의 학습상태를 유지해주는 기기같은 것들.
이런 요소를 살피면서 읽는 건 소설의 전개와 별개로 쏠쏠하게 읽는 재미가 있다.

폐허가 된 세상 속에서 힘을 가진 사람들이 약자를 겁간하고 약탈하고
흥미로 사람들의 밑바닥을 드러내게 해서 갖고 노는 사람들이 나온다.
디스토피아 소설 답게 도덕을 찾아보기 힘든 암울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도움을 받아도 의심할 수 밖에 없고 계속해서 의심 해야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사회가 조금만 혼란해도 약자가 제일 먼저 살기 힘들어지는데
세상이 뒤집어진 로하의 세상에서 로하는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폐허가 된 세상 속에서 힘을 가진 사람들이 약자를 겁간하고 약탈하고
흥미로 사람들의 밑바닥을 드러내게 해서 갖고 노는 사람들이 나온다.
디스토피아 소설 답게 도덕을 찾아보기 힘든 암울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도움을 받아도 의심할 수 밖에 없고 계속해서 의심 해야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사회가 조금만 혼란해도 약자가 제일 먼저 살기 힘들어지는데
세상이 뒤집어진 로하의 세상에서 로하는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인류학 수업 시간에 시대에 따라서 도덕과 옳은 것이 변화한다는 말이 인상깊었는데 그게 이 장면에서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로하가 살던 세상의 도덕이나 양심, 상식은 아영의 세상에서는 가식이고, 세상이 멸망한 이유였으니까.
그럼에도 내가 로하의 생각에 동의하는건 내가 사는 세상은 약자는 돕는 게 옳은 세상이라 그런가보다.

처음엔 k가 프롤로그의 테러범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나중엔 스카이트리에 있던 아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다가
그 안의 누군가 중 하나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야기 안에서 드러나는 사람들이 대처하는 방법, 튀어나오는 선의, 무력함에 대한 절망등을 보는 것도 흥미진진했지만,
에필로그에서 끊임없이 사람은 다면적이고, 끊임없이 나아가는 존재라고 말하는 느낌을 받아서 더 좋았다.
또 에필로그가 해석의 많은 여지를 줘서 더 재밌었다.
반전의 반전의 반전인데 또 분명 닫힌 결말같은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끝이지 싶은 느낌.
단순한 게임이었을까, 시뮬레이션이라고 했으니 이미 과거 아니었을까? 시간 이동 장치가 있었으니 (소설 속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전체적으로 다 읽은 후에 로하에게 호의를 베풀던 최철호는 작중 로하의 세상의 일반적인 선을 대표하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최철호가 의인이라거나 최철호가 하는 일들이 모두 옳은 것이었다기보단
주위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착한 사람, 착한 어른 같은 존재라고 느껴졌다.
만약 게임 속 시나리오를 짠 대화명 '철호'가 동일인물이라면 그가 k나 다른 시나리오 참여자들과 달리
직접 시간 이동을 하는걸 설명하는 하나의 이유라고 느껴졌다.
인물이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는 점이나, 행동의 이유가 생각치 못한 이유였던 점,
인물들의 관계 들을 살펴보면서 의외고, 반전인데 또 납득이 가는 전개였다.
400쪽이 좀 넘는 장편소설이었는데도 몰입감있게 읽었다.
sf 장르소설을 좋아하다면, 안 좋아하더라도 줄거리를 읽고 나면 흥미로워서 읽게 될 그런 소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