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공감
엘리자베스 A. 시걸 지음, 안종희 옮김 / 생각이음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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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균형잡힌 인재상을 이야기 할 때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을 예로 들곤 한다.

차가운 머리는 전문성과 냉철한 상황판단력이라고 치면 뜨거운 가슴은 공감 능력이라 봐도 되겠다.


공감이란 엔진오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휘발유가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메인 연료 역할을 하지만

엔진 내부를 정화, 냉각, 완충하는 엔진오일을 주기적으로 보충해주지 않으면 차의 심장인 엔진은 멈출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 공감이란 오일이 부족하거나 다 떨어진다면

개인과 개인 뿐 아니라 사회라는 인프라도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러미 리프킨도 '공감의 시대'라는 책을 통해

사람들은 근대를 지나며 생존의 시대를 너머 타인과 공감하는 시대가 온다고 했던 것 같다.

소유의 종말, 노동의 종말 그리고 공감의 시대.


앞의 두 책이 AI, 로봇, 공유경제 시대를 예견한 것이라면

인간이 그 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은 '공감'이라고 주장하려던게 아니였을까.

앞으로 노동이 필요 없는 자동화된 세상에서 인간만이 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공감'이므로

고용도 비영리적인 분야, 문화, 예술 쪽에서 일어날 거라는 예측도 많다.


다시 이 책으로 돌아와서, 최근 뇌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특정 정신활동이 일어날 때 뇌의 어떤 부분과 연계가 되있는지 언급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특히 공감과 같은 사회친화적 활동이 이뤄질때 몸에서 옥시토신이 분비된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옥시토신을 인간의 몸에 주입하면 공감과 협력, 사회성이 길러지는 것인지. 마치 매트릭스에서 인간의 뇌에 지식과 정보를 주입하듯이 말이다.


아직까지 분비물질이 신체에서 어떤 식으로 공감이라는 형태로 작용하는 것인지, 그 인과관계나 동작에 대해선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하지만, 만약 이런 것까지 파악 된다면. 미래 인공지능/자동화 세상에서는 인간이 굳이 필요한 이유가 없어지는게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종교와 공감의 관계에 관한 내용을 보면서 종교가 전 인류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상적인 수단이였지만 종교라는 이름으로 극단적이고 잔인하게 돌변하기도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공감능력이란 것도 아무리 뛰어난들 실제 무언가를 변화시킬 만한 행동까지 하지 않는다면 종교와 다름없는게 아닐까. 말로는 정의롭고 약자를 돌보며 그들을 대변하고 행동한다는 정치인들을 보면 공감능력은 백점같은데 실제 행동은 그것과 대부분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갑자기 공감능력과 실행의 갭에 대해 저자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졌다.


#사회, #사회적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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