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 - 장영희의 열두 달 영미시 선물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샘터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故 장영희 교수 님과 김점선 화백 님께 (이하 책의 호칭을 따릅니다)

골목길을 환하게 밝히며 여름의 도래를 알리던 붉은 덩쿨장미도 지고, 장마전선이 오르내리는 여름의 초입길에서 두 분을 불러 봅니다. 마음 속에 다시 봄이 찾아온 듯 속눈썹 끝에는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느껴지고, 온 몸에 새 순이 돋으려는지 기분 좋은 간질거림이 찾아 듭니다.

 

 어린시절부터 예술을 지상에서 가장 숭고하고 멋진 것으로 생각하고 흠모하며 살아왔기에, 문학가 장영희, 화가 김점선은 저에게 가장 닮고 싶은, 비록 도달하지 못했으나 늘 꿈꾸어 보는 롤 모델이며 멋진 스타였으며 존경하는 인생 선배였습니다.

 

 친정어머니와 성함이 같아서 처음 듣는 순간 가슴에 콕 들어와 박혔던 그 이름, 장영희. 평생을 목발을 짚은 장애인의 삶을 살면서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온 몸으로 삶을 껴안고 사랑했던 분. 그 해맑고 예쁜 미소 속에 느껴지는 당당함을 사모했습니다. 시를 사랑하고 한때 시를 써본 적이 있으면서도 번역시를 좋아하지 않던 제가 당신이 번역한 시들을 읽으며 영미(英美)시의 품격과 문학성과 깊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탈한 웃음과 털털함이 매력적인 김점선. 처음 그림을 접했을 때 속으로 웃고 말았습니다. 선머슴애 같은 외모와는 달리 그림이 너무 따스하고 예쁘고 간질거려서요. 도저히 화가의 이미지와 그림의 느낌이 일치가 되지 않아 그냥 웃음이 났답니다. 그런데 찬찬히 들여다보니 아니었습니다. 그림 속엔 영락없는 당신의 모습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림 속에 등장한 말과 오리와 소녀와 꽃들이 모두 당신의 얼굴이었답니다. 장난기 가득하기도 하고 유쾌하고 그러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긍정의 메시지.

 

 삶의 부조리에 채이고 지칠 때, 허방을 밟아 한없이  추락하는 느낌이 들 때, 그 그림들을 보면 차갑던 혈관이 따뜻해지는 느낌, 구멍 숭숭 뚫린 가슴이 메워지는 느낌, 그리고 봄날 눈부신 들판처럼 마음이 환해져 한없이 좋았답니다.

 

 하지만 장영희의 시보다도 김점선의 그림보다도 더 보기좋고 부러운 것이 있었으니, 바로 두 분의 꼭 가시버시 같아 보이는 우정이었습니다. 한없이 여성스러운 예쁜 미소를 짓는 한 사람과 사내대장부 같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한 사람. 장영희의 여성성과 김점선의 남성성이 조화를 이루어 그리도 어여쁜 인생길 좋은 동무가 될 수 있었나 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시와 그림의 콜라보레이션을 멋지게 보여 준 두 분. 예술가의 길을 가는 동지애로,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인간애로, 때론 당기고 때론 밀어주고 때론 나란히 함께 길을 걸어간 두 분의 뒷모습은 결코 쓸쓸하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 년 열두 달 내내 계절에 어울리는 시와 따스하고 밝은 그림을 접하며, 봄꽃같이 살라고 남겨주신 선물 같은 책. 그 속에서 인생은 유한하나 덧없지 않으며, 삶의 무게는 힘겹지만 슬플만치 아름답다는 것, 그래서 우리 모두는 아침의 빛나는 태양에서 힘을 얻고, 밤의 차분한 달에게서 안식을 얻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하늘나라에서도 함께 앉아 웃고 계실 두 분을 위해 시 한 편, 읽어드리고 싶습니다.

 

   6월이 오면, 나는 온 종일

  사랑하는 이와 향긋한 건초 속에 앉아

  미풍 부는 하늘 높은 곳 흰구름이 지은

  햇빛 찬란한 궁전들을 바라보리라.

 

  그녀는 노래하고, 난 그녀 위해 노래 만들고,

  온 종일 아름다운 시 읽는다네.

  건초더미 우리집에 남몰래 누워있으면

  아, 인생은 아름다워라 6월이 오면.

 

           인생은 아름다워라! 6월이 오면

                  -로버트 S 브리지스-

 

 두 분 지금 저기 흰구름 궁전 속에 나란히 앉아 계신 거죠?

근심 걱정도 욕심도 다 내려놓고 건초더미 위에 누워 시만 읽어도 인생이 아름다운 6월!

 

 그 6월의 찬란한 햇빛 속에서 두 분 행복하시기를-

 

 <다시, 봄>을 읽으며 저 또한 많이 행복했음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자작나무>에서 노래했듯이

'세상은 사랑하기 딱 좋은 곳'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더 많이, 사랑하다,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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