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일의 빛
이스마엘 베아 지음, 송은주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인간성의 극과 극
상반된 양극의 끝점의 이름은 선과 악이다.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자신의 인간성이 자리한 위치가 그 두 점을 잇는 선의 어디쯤인지 확실히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선 쪽에 가까울 수도, 악 쪽에 가까울 수도 있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솔직한 민낯이 아닐까. 단지 또르르 굴러가는 실타래를 잡으려 손을 최대한 뻗듯이, 온힘을 다해 좋은 사람이 되기위해 최선을 다하며 하루를 살아 가는 것, 그것 자체가 선한 인간성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여기 인간성을 부정하는 아니 인간이기를 포기한 악한 인간의 전형을 보여 준 비극이 휩쓸고 지나간 암울한 땅,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이 있다. 세계 제일의 다이아몬드 산지인 시에라리온 역시 아프리카의 타 지역들처럼 끔찍한 내전을 겪어야만 했다. 인간의 역사를 지탱해온 한 축이 전쟁이라고 하지만 내전만큼 참혹한 전쟁이 또 있을까. 지구상에는 우리의 한국전쟁부터 보스니아내전, 중동지역의 분쟁, 그리고 아프리카 여러지역의 내전에 이르기까지 이념이나 종교, 종족이 다르다는 여러가지 명분 아래 인간이 인간을 학살하는 잔인한 전쟁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지역들의 내전은 소년병들의 존재로 인해 경악과 전율을 세계인들에게 안겨 주었다. 일본작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에서도 콩고내전의 희생물이 된 소년병들의 참혹상을 읽고 커다란 충격과 분노와 슬픔을 느꼈었다.십대가 채 되지 않은 소년들이 자기 키보다 큰 총으로 상대를 죽이거나 사람들의 팔을 자른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소년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강간하고 죽이게 강요하며 그것을 거부한 형을 잔인하게 죽여 버린다. 그것을 보고 공포에 질린 소년은 그 일을 하고 그 때부터 영혼이 황폐해진 소년병으로 키워진다.
이 책의 저자 이스마엘 베아 역시 어린 나이에 영문도 모르는 체 폭력과 강요에 의해 전투에 앞장 섰던 소년병이었다. 그가 자신의 소년병 경험을 담아 펴내 찬사를 받았던 에세이 <집으로 가는 길>이 지나간 전쟁에 대한 회상이었다면, <내일의 빛>은 전쟁이 끝난 후의 치유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는 책이다.
평화와 사랑이 충만했던 마을 임페리에도 어김없이 끔찍한 내전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순식간에 삶의 터전과 가족들을 잃고 생지옥으로 내몰렸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씩 전쟁이 끝난 후 마을로 돌아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언제나 마을의 대들보로 주민들을 포용하고 이끌었던 노인들, 가족의 일부나 전부를 잃어버린 중장년층, 그리고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청년과 소년소녀들, 마지막으로 전쟁이 끝난 후 태어나 참상을 모르는 꼬마들. 이들이 다시 임페리로 돌아와 황폐해진 마을의 공간 속에서, 자꾸만 밀려드는 아픈 기억과 상처를 딛고 조심스레 미래를 꿈꾼다. 심지어 한가족의 팔을 강요에 의해 잘랐던 소년병과 피해가족까지 임페리에서 화해와 공존을 향해 조금씩 다가간다.
이때 존경받는 노인들이 마을 주민들을 이끌어 가는 키워드가 바로 '우화' 즉 이야기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린 시절 배우고 자란 그대로 모닥불 주위에 둘러 앉아 우화를 들려줌으로써 어린아이들을 전쟁의 참상으로부터 보호하고, 부족의 전통을 일러주며, 서로 사랑하고 포용하고 함께 가야하는 삶의 지혜를 일깨워 주는 등불이 된다. 그리고 그 등불은 대대손손 이어지며 임페리사람들의 마음을 밝혀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재건의 노력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외국자본이라는 괴물의 발아래 짓밟히고 만다. 마을에는 백인기업의 광산이 세워지게 되고 임페리는 밀려드는 외부인들의 자본과 폭력과 유흥의 희생물이 된다. 임페리 주민들은 무시당하고 짓밟히고 강간당하고 무엇보다 또다시 인간성을 유린당한다. 그러나 여기에 맞서는 청년들이 있다.
'그러나 콜로넬과 밀러는 자신의 삶을 돈 몇 푼을 쥔 탄광회사가 좌지우지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습득한 방법을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방법이 폭력적이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기 생명의 가치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것보다 더 폭력적인 것이 무엇인가? 하루하루 자기들의 가치가 더 추락해간다고 믿게 만드는 것보다 무엇이 더 폭력적인가?' (P115)
'다른 놈들이 나를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게 놔두면 나는 더 이상 자유로운 몸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어요. 막지 못하면 결국 스스로가 쓸모없는 놈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돼요.' (P150)
모두가 과거의 좋았던 시절에 젖어 있거나, 현실에 좌절하여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지키기위해 점점 현실과 자본과 타협해 갈 때, 불의에 맞서 싸우며 타인의 일에 함께 분노하고 도와주는 이 청년들이야말로 '내일의 빛'이 아닐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지닌 소년병 출신의 청년들이 찾고자 하는 내일의 빛은 바로 잃어버린 자신의 인간성일 것이다. 악의 끝점까지 다다랐었지만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선을 향하여 나아가려는 희망의 몸짓. 비록 상해버린 심장이지만 다시 수선할 수 있다는 믿음. 가슴 뭉클한 그들의 행보에서 아프리카가 지닌 끈질긴 생명력과 그 힘이 앞으로 탄생시킬 무한한 가능성이 느껴진다.
인간성의 바닥을 보여 준 추악한 현실
아무리 삶이 힘겨워도 비관하지 않고 견디고 나아가는 강인함
그 속에 '내일의 빛'이 점점 불씨를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