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3 - 장정일의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3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장정일처럼 살기' 서른 즈음 처음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만난 후 잠깐 꾸어보았다가 흔적없이 스러져간 한바탕 봄꿈이다.

 

 '동사무소의 하급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9시에 출근하여 다섯 시면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 시까지 책을 읽는 것'이 장정일이 꾸었던 어린시절의 꿈이었다. 거기다 그처럼 독서일기를 쓰는 행위를 한 가지 더 얹어본 것이 한창 때 가져 본 꿈이라면 세상물정에 어두운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일이었을까.

 

 글자를 익히면서부터 그저 책을 읽었다. 70년 대에 아동도서가 제대로 있었으랴 마는 부모님이 사주신 계몽사 판 세계명작전집과 위인전집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그 책들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날아갈 수 있는 날개였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이미 부모님 책장의 한국문학전집과 일본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책들은 얼핏 엿본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불온한 상상력이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학교 도서실에서 톨스토이와 헤밍웨이와 제인 오스틴의 책들을 만났다. 그 책들은 앞으로 살아야할 삶의 자리매김에 대한 지표였다. 대학시절에는 시를 만났다. 황지우, 이성복, 김지하, 기형도의 시들은 뒤틀린 열등감과 자아로 괴로워하던 자신을 지탱시켜주는 자존감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가끔씩 읽고 사들이는 책은 희미해져 가는 옛사랑의 추억이었고, 한 잔의 차가 주는 따끈한 위로였다. 

 

 이처럼 나름 책과 하는 시간들을 뚜벅뚜벅 지나왔지만 그 발자국을 기록해볼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장석주의 <한 완전주의자의 책읽기>나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독서가 책을 고르고 읽는 행위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뼈와 살로 체화시켜 그 흔적을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까지를 아우르는 말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태생적인 게으름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그저 띄엄띄엄 눈으로 책을 읽어내는 세월을 사는 동안에도 장정일은 무려 일곱 권의 <독서일기>를 펴내었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이란 새로운 제목의 독서일기를 펴내기 시작했다. 기존의 독서일기가 일상의 이야기를 포함한 전형적인 일기형식의 글이었다면 이 책은 책읽기의 방법이나 주제 등 독서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반년 여 전쯤부터 난생처음 책을 읽은 후의 마음과 정신의 궤적을 서평이란 글로 남기기 시작하면서 타인들의 독서와 관련된 글쓰기에 관심이 높아졌다. 그래서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3>은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변한 모습에 처음엔 잠깐 낯설지만, 곧 과거의 회상 속에서 안도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고향친구 같은 느낌을 주었다.

 

 개인적 독서에서 사회적 독서로 독서영역을 확장시킨 장정일이 우리 한국사회가 지닌 고민들을 독서를 통하여 통찰한 결과를 엮은 시대의 기록이 바로 이 책이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삼 년간 읽은 책의 서평을 날짜별로 배치하였다. 특이한 점은 서두에 그 날짜의 발췌된 신문기사를 실어, 왜 그 시점에 그 책을 읽었는지와 한국사회의 시사적인 사건과 자신의 서평이 어떻게 조우하고 대응하고 비판하고 공감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결코 만만한 책이 아니다. 두꺼운 두께나 작고 빽빽한 글씨체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사유와 담론의 묵직한 무게감 때문이다.

 

 특히 정치와 관련된 서평들

폭력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 '폭력이란 무엇인가'

북한의 정치실상을 다룬 '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김정은 체제'

한반도 주변 국가의 정세를 설명한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용과 춤을 추자'

오적의 시인 김지하의 '흰 그늘의 길'에 대한 서평들은 정치분야의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내게 독서 또한 현실과 유리될 수 없는 행위임을 자각시켜 주었다. 그러나 워낙 다독을 하며 많은 서평을 쏟아내다 보니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고 격차가 큰 것이 아쉬운 점이었다.

 

 장정일이 엄청난 다독가이며 애서가인 줄은 익히 알고 있었다. 정치, 경제, 문학, 과학,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져 있는, 무소의 뿔처럼 걸림 없고 거침없이 행한 그만의 독서영역은, 끝없는 광야에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별들처럼 잡고싶으나 가 닿을 수 없는 존재같이 느껴질 정도이다.

 

 비록 그 별이 될 수는 없지만 각각 자신만의 독서의 영토를 가꾸고 열매를 수확하고 저장하는 기록의 창고를 지어가는 것

 

 독서를 사랑한다면 누구든 용기내어 도전해보라고 이 책은 등을 떼민다

 

 기꺼이 마음의 원고지에 적힌 글들을 종이 위에 옮겨 적어보자

 

 나만의 독서일기 첫 장이 탄생되는 경이로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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