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비나무의 노래 - 아름다운 울림을 위한 마음 조율
마틴 슐레스케 지음, 유영미 옮김, 도나타 벤더스 사진 / 니케북스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북소리가 좋았다. 20대 초반 답사를 위해 오르던 진안 마이산 계곡을 울리던 '두둥' 북소리. 귀를 열고 머릿속을 두들기고 기어이 가슴을 열고 심장을 두들겨대던 북소리. 그 순간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과 호흡에 가장 가까운 소리가 북소리라는 느낌이 번개처럼 다가왔다. 이후로 한동안 북소리를 들으면 살아있다는 느낌이 혈관을 타고 세차게 떠돌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그 강렬함을 사랑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순간의 강렬한 두들김보다 먹물처럼 서서히 번지고 젖어드는 선율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해주었고, 언제부턴가 북소리보다는 첼로나 바이올린이 들려주는 영혼의 연주에 마음의 귀를 열게 되었다.

 

 깊고 어두운 영혼의 동굴 속 심연에서 울려나오는 첼로의 속깊은 울음.

너무나 여리고 섬세한 영혼이 찢겨지고 상처입었을 때 흐느끼는 바이올린의 울음.

 

 영혼을 울리는 첼로와 바이올린의 몸이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이 책이 악기를 만드는 과정과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줄 알았다. 척박한 환경의 고지대에서 2-3백년 넘는 세월동안 서서히 자란 가문비나무만이 울림의 소명을 받아 좋은 악기로 탄생한다고 한다. 계속해서 그런 이야기가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놀랍고 마음이 묵직해져 갔다. 단순히 악기가 탄생하는 과정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와 내적 깨달음에 관한 깊은 명상과 통찰을 다룬 책이었다. 그것도 신앙인으로서의 영성과 기도와 구도의 고귀한 자세가 책 전체를 경건하게 이끌어 주고 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만드는 바이올린 제작 아틀리에를 운영하는 저자 마틴 슐레스케는 작업장에서 악기를 만드는 일상에서, 비유적인 계시의 순간들을 통해 늘 깨어 있음으로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야 하며, 특별한 의미가 담긴 충만한 시간 카이로스를 보내야 함을 깨닫는다.

 

 자신의 일과 믿음에 대해 쓴 비유의 책 < 울림 - 삶의 의미에 관하여 >에서 각별한 문장을 엄선하여 펴낸 책이 바로 이 < 가문비나무의 노래 >이다. 사진작가 도나타 벤더스의 52장의 사진과 함께 악기를 만들고 조율하며 순간순간 조우하게 되는 삶의 지혜를 차분하고 진정성 담긴 연주로 빚어내어 읽는 이의 가슴을 조용히 적셔준다.

 

 한 번에 다 읽어서 가슴에 담을 책이 아니다. 매일매일 조금씩 읽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비춰보고 닦아내고 조율하는 데 길잡이가 되어주는 책이다.

 

 '음이 변한 첼로를 연주하며 막힌 음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연주자의 모습을 보며, 인간이 제음을 찾지 못하고 방황할 때 안타까워하는 하느님의 심정을 느꼈다.'는 저자의 깨달음은 비단 종교인이기에 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악기를 만드는 일을 자신의 소명으로 받들며 나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믿음의 대패질로 결을 다듬어 우리의 영혼을 울려주는 지혜와 사랑의 곡을 연주하는 삶의 자세. 우리는 자신의 일상과 직업과 일 속에서 얼마만큼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 하루하루를 불만과 원망과 탐욕으로 헛되이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겸허하게 자신의 마음을 날것 그대로 들여다 볼 일이다.

 

 나의 마음이 나의 영역을 벗어나 어지러이 떠도는 날

 맨발로 숲속의 흙길을 산책하 듯

 이 책을 읽으며 가문비나무의 노래에 가슴으로 귀 기울여 보라.

 

 어긋난 음을 내고 있는 마음의 현들을

 조율하는 부드러운 손길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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