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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 뿔(웅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은 자기를 벗어던진 불온한 탄력이다. 사랑은 상대에 대한 집착, 소유욕, 열정, 질투, 미움, 욕정 등의 감정들이 혈관을 떠돌고 팽팽한 근육을 이루며, 신호탄을 기다리는 스프린터가 출발선에 선 순간의 긴장감이다. 언제든 그 사람 속으로 날아갈 준비가 되어있다.
엘리스 먼로는 이러한 사랑의 다양한 감정들을 극적인 이야기가 아닌, 평범하게 살아온 여자들의 보통의 일상에 접목시켜 조곤조곤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긴긴 겨울밤, 장작불이 타오르는 난롯가에서 할머니 무릎 위에 앉아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스르르 잠 속에 빠져들던 편안한 기분을 선사한다. 사랑은 특별하고 멋지고 대단한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바로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준다.
저자의 첫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과 마찬가지로 캐나다 온타리오 주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각양각색의 인간들의 삶을 아홉 편의 단편에 담아냈다. 온타리오 주가 저자의 고향이기에 성장하면서 지켜본 마을의 변화 과정과 그 속에서 부침을 겪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대로 생생하게 소설 속에 표현되어 있다.
배타적인 시골 마을의 분위기, 개발이 시작되면서 마을에는 변화가 찾아오고 그 와중에 사람들은 표면상으로도 내면적으로도 혼란을 겪게되고 누구는 도시로 떠나고 또 누군가는 남겨지게 된다.
하루에 한 벌 팔기도 어려운 의상실을 지키는 주인 여자는 달에서 남자 하나가 이리로 걸어나와 사랑에 빠지기를 갈구하고, 굽은 허리로 평생 구두를 수선해온 남자의 낡고 어두침침한 가게에는 오래된 구두 같은 그 사람의 인생전체가 담겨있다. 남의 집 가정부로 애보기로 희망없는 삶을 살았던 여자도 결국은 사랑과 결혼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이 모두가 이제는 사라져버린 빛바랜 사진속 우리의 지난 날의 모습들이기도 하다. 동시에 오늘 날의 모습이며 또 미래의 모습인 것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지구상의 어느 장소를 가도 존재하고 있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으로 인생을 노래한 글들. 느릿느릿 완행열차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들을 감상하듯 마음을 풀어놓고 즐겨보자.
어느덧 그 속에 살고있는 나와 당신의 모습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