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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밥상 이야기 - 내 영혼을 위로하는
김현 지음, 조민지 그림 / 오션북스 / 2013년 11월
평점 :
판매중지
책 읽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좋아하는 책 장르가 따로 있기 마련인데 음식에 관한 책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음식을 주제로 한 책이라면 항상 관심이 가고 읽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생기는 것이다. 물론 주위사람들에게서 미각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다양한 음식을 가리지 않고 즐기지만 그렇다고 식탐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곰곰히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음식이야기엔 사람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티비 프로그램도 드라마보다 실제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고 부대끼며 살아갈 때 관계맺음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밥 한 끼가 아닐까 싶다. 지인끼리 '다음에 만나면 밥 한 끼 먹자'는 인삿말을 평상 시에 많이 하고, 친구를 만나든 직장 동료들끼리 어울리든 밥상을 마주하고, 부부싸움으로 냉전 중인 부부도 함께 밥을 먹으며 대화의 물꼬를 튼다. 타향살이로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고향집을 찾아든 자식에게 어머니가 가장 먼저 하는 일도 말없이 밥상을 차려내 오는 것이다. 그래서 밥상은 그냥 밥이 아니라 우정이고 동료애고 사랑이고 연민이며 영혼을 위로해 주는 최고의 비타민이다.
부산에서 성장과정을 보낸 저자의 어린시절 추억이 담긴 밥상이야기들을 읽노라니 마치 나의 이야기를 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저자의 부모님이 삼천포에서 생활을 했고 어머니 음식의 원류가 삼천포라는 부분을 읽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야 말로 교직 생활을 하시는 부모님을 따라 성장기를 삼천포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삼천포 명물 쥐포, 물메기국, 장어구이와 장엇국, 방앗잎 넣은 부추전과 가오리찜 등의 음식은 바로 내 추억 속의 고향의 맛이기도 하다.
직장에 다닌 어머니 대신 집안 일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던 터라 평소에는 어머니표 음식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절대 남의 손에 맡기지 않는 음식 두 가지가 있었다. 소풍날이면 새벽 일찍 일어난 어머니는 갓 지은 밥에 설탕을 넣어 끓인 식촛물을 부어가며 식혀서 김밥을 싸주셨다. 김밥 속에 들어가는 어묵도 시금치도 당근도 일일이 따로 양념을 했다. 그렇게 싸여진 김초밥은 그냥 단순히 김에 밥과 속을 말아온 친구들의 김밥 중에 단연 으뜸이었다. 소풍 도시락만은 당신의 손으로 싸보내고 싶었던 어머니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버지를 위한 음식이었다. 육류를 특히 좋아했던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는 불고기 재우는 것만은 직접 하셨다. 밥상에 둘러앉아 양념에 재워 둔 불고기를 전기 프라이팬에 끓이며 먹기 직전 시금치 한 줌을 넣었는데, 달고 향기로웠던 시금치의 맛은 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 추억으로 남아 입 안에 머물러 있다. 성인이 된 후 수도권에 거주하며 여기저기 식당에서 불고기를 먹어봐도 시금치가 들어간 불고기는 본 적이 없다.
그 외에도 신문지 깐 양면 프라이팬에 쩌주시던 세월처럼 노오랗게 익은 카스테라, 일본서 살다온 교장선생님께 배웠다며 해주시던 색색깔의 꽃같은 카레라이스, 요리교실에서 배운 탕수육 실습 등 육칠십 년대에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으로서는 풍족하게 다양한 음식들을 맛보며 자랐다. 그것들이 바탕이 되어 홍어, 닭발, 돼지껍데기, 개불 등 특히 여성들에게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들도 맛있게 먹는 미각을 지니게 된 듯 하다.
너무 연로해서 오늘이 며칠인 지를 기억 못하시는 어머니도 음식에 관한 기억만은 뚜렸하고 그 얘기들을 두고두고 하실 때마다 행복감으로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밥상은 받는 사람에게도 차린 사람에게도 삶을 버텨내는 힘이었고 사랑이었고 영혼의 치유제였다.
밥이 가지는 사람살이의 의미가 이 책을 읽은 오늘따라 묵직하고 눈물겹게 또 따스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