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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장미여관으로 - 개정판
마광수 지음 / 책읽는귀족 / 2013년 9월
평점 :
1990년대 초반 '마광수'라는 이름 석 자는 금지된 그 무엇이었다. 당시만 해도 완전히 터부시 되던 성을 주제로한 책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호기심으로 책을 읽어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고 외설과 변태라는 수식어만이 난무하였다. 그 후폭풍은 결국 판금조치, 구속수감, 직위해제로 이어졌다. 대한민국 법정이 소설이 외설스럽다는 이유로 작가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웃지못할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모름지기 문학작품의 평가는 독자에게 맡겨야하거늘 법으로 문학작품을 저울질 하는 촌극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인식의 수준이 미성숙 하고 편협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이십대 청춘의 호기심으로 '즐거운 사라'와 '광마일기'를 읽고 야하다고 치부해버린데 대한 면죄부를 받고싶은 심정에 그 소설들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시집을 읽어보게 되었다.
마광수 교수의 대부분의 소설이나 에세이가 이 시집에 실린 시의 제목이나 이미지를 빌려 꽃피우고 열매 맺은 결과라고 하니 과히 그의 문학적 상상력과 정신세계의 응축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십의 나이에 읽어도 여전히 야하다. 그러나 이십대에 느꼈던 야함과는 빛깔과 향기가 다르다. 그때는 그저 야하기만 했다면 이젠 그 야함을 통해 뭔가를 전달하고 싶어하는 시인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장미여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마음속 자기만의 은밀한 공간을 말하는 게 아닐까. 여관의 불빛이 꼭 빨간색이 아니어도 좋고 꽃무늬이불이 깔려있지 않아도 좋다. 자신을 옭아매고 짓누르고 있는 현실의 속박과 굴레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는 곳, 체면과 위선의 탈을 벗고 일상에서 탈출하여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 바로 그곳이 자신만의 장미여관이다.
시인은 단지 우리보다 조금 더 솔직했을 뿐이다. 글로서 금지된 성에 대한 상상력과 욕구를 관능적으로 표현하고 유미주의에 바탕을 둔 쾌락주의를 추구한 것이다. 거기에서 끝났다면 시인은 '변태'라는 예전의 오명을 벗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에는 놀랍게도 인생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있고 유머가 있고 슬픔이 있다. 평범한 일상의 이면에서 허무와 무기력과 평화와 자유와 퇴폐미를 건져올려 풍자적이고 문학성 있는 한 편의 시를 써내는 시인을 누가 감히 변태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는가.
우리도 마음 속에 자신만의 장미여관을 지어보자. 밤이 오면 네온사인에 불을 밝히고 무한한 상상력과 자유만이 주어지는 곳.
당신, 그곳에서 부디 행복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