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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 - 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9월
평점 :
밤새 꿈 속에서 꽃비가 내렸다. 푸른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수많은 꽃잎들 사이사이 햇살이 아롱지고, 잠자리 날개처럼 얇은 날개를 단 홍도 그녀가 사랑을 찾아 수백 년의 시공간을 쉼없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홍도의 뒷목덜미에 내려앉은 연하디 연한 꽃잎 몇 점이 슬퍼서 아름다웠다.
소설 '홍도'를 밤에 품지 말라는 정유정 작가의 평을 무시하고 새벽까지 읽기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었다. 온통 꿈자리는 홍도 그녀의 차지였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정신을 기리는 혼불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인 데다가 사백 년 동안 늙지도 죽지도 않고 사랑을 기다리는 홍도의 이야기라니 그 누가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랴.
소설의 두 주인공 동현과 홍도가 헬싱키 반타 공항에서 탄 비행기 내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되고 한국의 인천 공항까지 오는 여덟 시간 정도의 비행 시간 동안 서로 이끌리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큰 플롯이다.
사백 년이 넘는 긴 세월을 늙지도 죽지도 않으면서 윤회하는 자신의 사랑을 기다리고 사는 홍도. 그 사랑이 등장할 때마다 배경이 되는 우리 역사의 큼지막한 사건들. 어떤 개인도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지만 홍도의 개인사 그것도 사랑이야기에 역사적 사건들을 녹여내는 작가의 의도와 필력이 작위적인 느낌이 들면서도 재미있고 매력적이었다.
이야기의 시초는 정여립 사건이다. 우리가 흔히 역적으로 알고있는 정여립은 홍도의 외할머니와 의좋은 남매 사이였다. 정여립의 시종으로 따라온 사내아이에게 홍도가 재미삼아 자치기라는 이름을 지어준 순간부터 둘의 인연은 시작되었고, 그 사랑은 사백 년의 시간의 강물을 따라 현재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지위나 신분의 귀천이 없이 다 함께 잘 사는 대동의 세상을 꿈꾸다가 모반죄로 몰려 정여립이 처형을 당하면서 할머니, 아버지도 죽음을 당하게 되고 고아가 된 어린 홍도는 오직 자치기에게 의지하여 고달프지만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그들은 헤어지게 되고 그 뒤로도 여러 번 재회와 이별을 반복하게 된다.
기축옥사, 임진왜란, 천주교 박해, 하와이 노동자 파견···
조선, 일본, 진주만, 암스테르담, 핀란드···
홍도 그녀는 언제나 살아있었고 어디에서나 사랑했다. 불멸의 수명을 가진 항아 님으로부터 기운을 얻어 자신은 늙지도 죽지도 않기에, 보통의 인간으로서 생로병사를 거치며 소멸해가는 사랑하는 이와의 재회를 기다리며 사백 년 이상의 세월을 건너온 것이다. 여덟 시간의 비행 시간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홍도와 동현 아니 홍도와 자치기가 마침내 서로를 알아보면서 그녀의 사랑은 또 한 번 완성된다.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너무나 가슴저린 실제 이야기로 다가오는 건 왜일까. 바로 소설 속에 스며있는 작가의 진심 때문일 것이다. 허구의 세계인 소설이라는 틀 속에 허구의 극치를 보여주는 내용을 썼으면서도 온 진심을 담아 그 사랑이 실재 하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담아냈다는 것이 가슴으로 느껴졌다. 초반부에서는 이야기가 너무 헐렁하니 밀도감이 떨어졌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옛날이야기 같은 느낌에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매체를 읽으면서도 어떤 철학적인 의미나 무게감을 찾으려는 자신의 독서 태도를 반성하고 마음을 풀어놓은 순간, 홍도 그녀는 한 마리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사백 년의 시공간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녀와 함께 웃고, 그녀와 함께 가슴 아파하며 울었고, 함께 행복했다.
오랜 시간을 건너 온 두 주인공의 사랑이, 아름다운 우리 말의 옷을 입고 생생하게 되살아나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가슴으로 깨우치게 해 준 귀한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