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 뿔(웅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든 가슴 속에 빛바랜 흑백사진 한 장씩을 품고 살아간다. 삶의 돌부리에 채여 무릎이 속절없이 꺾일 때나 캄캄한 들판에 혼자 버려진 듯 막막할 때에 문득 꺼내보게 되는 사진 한 장. 거기엔 두고 떠나온 고향산천이 펼쳐지기도 하고, 한때 행복감으로 충만했던 어린 시절 가족의 모습이나,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이 번지는 친구들과의 한때가 떠오르기도 한다. 지나간 세월이 고여있는 그 사진들을 꺼내보며 위로받고 그리움에 젖어 눈물 흘린다.

 

 엘리스 먼로의 단편들을 읽으면서 마치 이 흑백사진을 꺼내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1960년대에 쓰여진 작품이어서가 아니라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인간이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꼭 내 고향이웃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소박하고 정겹고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캐나다 온타리오 지방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특히 여자들의 시선을 통해 누구나 삶 속에서 마주칠 수 있는 여러가지 상황과 그것에 대처하는 각양각색의 태도와 느끼는 감정들을 열다섯 편의 단편으로 참으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그동안 접해본 대부분의 우리나라 단편들이 화려한 수사와 극적인 서사를 보여주는 데 비해 먼로의 작품들은 일체의 기교없이 잔잔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흘러가 듯 자연스러운 그러면서도 섬세하고 깊이있는 묘사를 통해 마음에 큰 울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저자는 대단한 주인공들의 특별한 삶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생의 내면을 들여다 본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데 급급한 소시민들의 삶 속에도 꿈이 있고 야망이 있고 비밀이 존재하며, 때로 서로에 의해 그것들이 짓밟히고 방해받고 낱낱히 까발려지지만 또 사람들은 다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삶을 엮어내는 생생하고도 아픈, 그러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진실인 것이다.

 

 우리 모두 삶에 지치고 고민하며 때론 일탈을 꿈꾸지만 

 아침이면 어김없이 자기 자리에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씁쓸하지만 안도의 숨을 내쉬며

 주어진 것들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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