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그대에게
류근 지음 / 곰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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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십대 초반 가슴 속에 문학이란 별 하나 품고 살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오로지 시나 소설을 쓰고 책만 읽으며 한 생을 흘려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 내게 삶의 전형은 이외수 소설의 주인공들이었다. '장수하늘소'나 '꿈꾸는 식물'의 주인공들처럼 세파에 물들지 않고 순정한 정신세계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들개'의 주인공처럼 어떤 극한 상황에도 무너지지 않고 문학의 길을 가는 것, 그것만이 지상에 태어나 머무르는 동안 걸어가야할 인간다운 삶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 길을 가기엔 너무 평범한 인간이었기에 오랫 동안 보통의 생활인으로 나름 성실한 삶을 살아왔다. 물론 가끔은 문학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부러워 곁눈질 하고 왜뚤삐뚤 마음이 헤매일 때도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일로 서서히 마음정리가 되었다.

 

 그런 내 가슴 속 사그라든 불씨에 류근이 불을 붙였다. 이외수 이후 실로 수십 년 만에 그것도 작품으로서 뿐 만이 아니라 실제 삶의 모습이 폭풍우 치는 밤 번쩍이는 우레처럼 머리와 가슴을 들이치며 달려들었다.

 

 가수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노랫말을 쓴 필자의 책이라니 그것도 제목이 달달하여 그저 그런 연애사일 것으로 생각하고 편안히 책을 펼쳐들었다가 번쩍하고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조금 자랑스러운 것은 내 끓어오르는 욕정과 욕설을 단 한 번도 시에 옮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존나게 얻어맞고 온 밤에도 착하게 살자, 착하게 살자, 그카며 착한 시만을 썼다. 지나고 보니 조낸 놀랍다.'

 '때론 맨정신으로 삶을 견뎌야 하는 날들도 있는 것이다.'

 '사람이 쌀만 가지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무릇 사람이란 쌀 보다 더 소중한 그 무엇으로 사는 것이다.'

 

 어떤 밑바닥 하류인생을 그린 소설도 이보단 덜 처절하리라. 덜 비루하고 초라하리라. 그러나 그 속엔 너무나 영롱하고 아름다운 것이 숨어있으니 바로 류근 만의 마음이다. 아무리 삶이 가난하고 남루하여도 비관하지 않는 마음, 세속의 욕망에 영합하지 않는 마음, 세상의 낮고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시를 향해 한 줄 한 줄 밀어가는 시인의 삶.

 

 류근은 이런한 자신의 삶을 관대하게만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풍자와 비판의 대상으로 객관화시켜 엄격하고 치열한 내면의 성찰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남 보다 더 높이 올라가겠다고 더 멀리 앞서가겠다고 그저 무단히 애를 쓸 때 자기 만의 자리를 지키는 것, 그래서 자기를 보존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류근이 우리에게 진정 하고픈 이야기가 아닐까.

 

 삶이란 아무리 지난하고 혹독하여 피투성이가 될 지라도 휘둘리거나 맞서지 않고 존재가 소멸되는 순간까지 견디는 것임을 가슴 속 고갱이로 삼아 울고 싶어도 울지 않을 것, 그러나 바람 한 잎 파도 소리에도 울 수 있는 마음결로 세상을 살아보자. 분명 사랑이 다시 말을 걸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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