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마사코입니다
강용자 지음, 김정희 엮음 / 지식공작소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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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개인의 삶도 시대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과 감당해야할 몫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누구도 시대의 울타리를 완전히 벗어난 삶을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 어깨와 등에 짊어진 시대의 짐이 너무나 무겁고 슬펐던 그래서 고귀했던 사람이 있다. 그래서 오히려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 같고 현실 속의 인물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사람, 바로 이방자(마사코)여사이다.

 

 일본 황가의 일족으로 태어나 학습원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행복한 성장기를 보냈으나 16세 되던 해 자신의 약혼 사실을 신문을 보고 알아야만 했던 정치와 역사의 가여운 희생물. 어린 나이에 닥쳐올 운명의 파도가 얼마나 두려웠으면 '밤이면 뜰에 나와 차라리 이대로 밤의 어둠 속에 빨려들어가 사라져 버렸으면 아무도 모르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죽어버렸으면 하고 절실히 원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라고 했을까. 그러나 그녀는 현명했다. 그저 두려워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았고 일본에 인질로 끌려온 자신의 배필이 될 조선의 황태자 영왕 이은(고종의 막내아들) 역시 똑같은 희생자임을 인식하고 '외로운 전하의 곁에서 애정과 위로로 따뜻한 친구가 되어드리는 것이 내 의무다.'라는 지혜로운 생각과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1920년 결혼식을 올린 이후 두 아들을 낳고 영왕이 사망하는 순간까지도 그녀는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영왕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사랑했으며 항상 인간적인 애정으로 가정생활을 행복하게 영위하려고 노력했다. 해방 이후 우역곡절을 겪은 끝에 1963년 한국으로 귀국한 이후에는 낙선재에 기거하며 봉사활동에 전념하여 황태자비로서의 책무를 완수하고자 했다.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의 인생역정을 따라가노라면 나머지 조선 마지막 왕가의 파란만장한 삶도 함께 만날 수 있어 역사공부도 되었지만 그들의 비극적 삶이 눈물겹고 안타까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한일 양국 어디에도 확실하게 속할 수 없었기에 느껴야만 했을 경계인으로서의 감정이다. 양국 어느 한 쪽의 편을 들 수도 어느 한 쪽을 미워할 수도 없기에 얼마나 외줄 타듯 살얼음판 위를 걷듯 이쪽 저쪽 눈치를 봐야 했을까? 이 모든 걸 딛고 그 누구보다 한국과 남편을 사랑하고 이해했던 그녀에게 인간으로서의 존경심이 느껴졌다.

 

 걷잡을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끝까지 인간적인 자존감과 고귀함을 잃지 않고 몸소 배려와 사랑을 실천했던 한 여인의 삶은 슬프지만 아름다운 한 송이 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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