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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여행 : 비우고. 채우고. 머무는
이민학.송세진 지음 / 비타북스 / 2013년 8월
평점 :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꿈을 꾼다는 것이다. 이유와 장소와 동행에 관계없이 꿈을 만들어가는 행위이고 꿈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 꿈속에는 이야기가 깃든다. 지나간 이야기 혹은 현재나 미래의 이야기가 조약돌처럼 담겨져 있는 바구니가 여행이다.
보길도의 언덕에서 내려다 본 검은 몽돌밭과 푸른 소나무밭 그리고 검푸른 바다의 풍경 속에는 결혼 십 주년을 맞이한 우리 부부의 이야기가 그리고 그 사랑이 영원하기를 갈망하는 꿈이 새겨져 십 년이 더 지난 지금도 바래지 않고 그 풍경은 언제나 가슴 속에서 눈이 시리다.
이 책은 정말 읽고 싶었다. 아니 갖고 싶었다. 여행을 떠나는 자의 가방이나 주머니 속에 좋은 안내서 한 권이 들어있다면 두려울 일이 없다는데 팔도강산 곳곳을 정말 제대로 안내해 놓은 이 책을 보면 발보다 마음이 먼저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꼭 몸이 떠나야 여행이겠는가. 이 책 속에선 내 마음이 한없이 자유롭게 팔랑거리며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구속없는 여정을 떠날 수 있어 좋았다.
봄 햇살 아래 졸고 있는 시골집 댓돌 위 누렁이도 쓰다듬고
한없이 푸르른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앉아 여름향기 물씬 나는 수박 한 입 베어물고
대웅전 처마끝에 매달린 풍경소리 들으며 뒷산 단풍숲을 바라보다가 잠깐 졸며 피안의 시간 속을 헤매기도 하고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다는 그 섬에 가서 쌓인 눈에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들으며 내 안으로 안으로 걸어 가보고 싶은 -.
이 책은 내용을 비우기, 채우기, 머물기, 떠나기의 네 가지 콘텐츠로 나누어 각각 해당되는 장소를 여행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기존의 여행 책자가 여행지 소개에 치중하는 반면 여행자가 치유의 힘을 얻고 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것이 가장 착한 매력이다. 비우기의 산중 호수에서 평정심을 얻다(충청북도 괴산 산막이길) 그 바다에 한 생이 흐르더라(전라남도 고흥 외나로도 염포) 채우기의 저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강원도 평창 대관령 목장) 온 몸으로 작품을 쓰다(전라남도 보성 태백산맥 문학관) 머물기의 잠시 섬사람이 되어본다(경상북도 영주 수도리 무섬마을) 편백향 그윽한 그늘에서의 단잠(경상남도 남해 편백자연 휴양림) 떠나기의 방황을 기대하라(서울 부암동) 격변의 시대를 가다(대구 근대로 청라언덕) 등의 제목만 봐도 여행은 그저 눈으로 보고 먹고 자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행자가 그 여행지에서 어떤 마음과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방법론을 가르쳐 주는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비슷한 그러나 다른 여행지를 소개하여 선택의 폭을 넓혀준 것과 우리 모두의 동경의 대상인 제주를 따로 소개하여 완전한 힐링의 섬 제주를 맛볼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꼭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좋다. 마음의 발길 닿는 대로 툭툭 떠나보다가 익어가는 가을 햇살에 못견딜 것 같은 그날, 이 책 한 권 옆에 끼고 진짜 떠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