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연장 가방
문수 지음 / 키위북스(어린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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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사진 한장이 유독 눈에 띕니다. 80년대 우리집 앨범에 한 장씩 있을 법한 사진입니다.
공교롭게도 우리집도 삼남매로 비슷한 머리를 올망졸망하게 자르고 연년생에 너무나도 비슷한 옷 매무새와 부모님의 모습까지 진짜 울친정집 앨범에서 한 장 가져온 느낌입니다.
이 한 장으로 책 속 모든 이야기가 짐작이 갑니다.
50년대 그 언저리 한국전쟁 당시 태어나신 우리 아버지 세대는 배고팠던 60년대를 자라며 교육의 기회도, 선택의 기회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배고픈 60년대를 지나 70년대 산업 일꾼으로 일하셨던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입니다.
가게집이였던 우리집에는 늘 손님들이 가득합니다. 일가 친척에 지나가는 손님까지 다 챙겨 늘 밥이 충분했어야 했던 우리집, 엄마랑 제가 찬밥을 좋아하는 이유도 혹시 모를 배고픈 손님덕에 늘 밥을 한솥 지어놓고 찬밥을 나눠먹던 버릇 때문인가 봅니다.
그러고보니 그때 우리집에 드나들던 일가친척과 손님들은 다들 연장가방 하나씩들고 계셨습니다.
큰외삼촌은 목수였고, 오촌당숙아저씨는 데모도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외 사돈의 팔촌까지 그리고 시집와 알았지만 시아버님도 작업 반장이셨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린시절 아재들의 연장가방이 너무나도 익숙해서 그 사이사이 주머니속에서 카라멜 하나라도 있을까 만져보다 혼난적도 있었죠.

그 연장가방 속 보물들을 세세하게 하나씩 설명으로 담은 페이지가 참 인상적입니다. 낯익은 사진에 반가우면서도 이렇게 다양했었나? 놀라기도 했습니다.
연장가방이 두둑하니 배부르고 조금씩 낡아갈수록 아버지도 그리 연륜으로 두둑하고 몸은 늙어갑니다.
자전거에서 오토바이로, 가방에서 연장창고로 변해도, 최고의 목수에서 파킨슨 병으로 이제는 일을 할 수 없어 아버지의 연장들은 주인을 찾아 나누어줍니다.
그래도 여전히 그자리에 남아있는 아버지의 연장가방!

익숙한 경상도 사투리(부산)와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자분자분 들리는 듯한 전개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무엇보다 낯익은 사진들과 이름은 가물하지만 아재들 가방에서 즐겨봤던 연장들을 나이든 이제와서 새삼 제 용도와 이름을 알게 되어 반갑고 좋았습니다.
대목수장이 되어 한옥앞 은행나무아래에서 한옥을 바라보는 장면이 가장 인상깊어 남겨둡니다.
힘들고 배고팠고 외로웠을 우리 아버지들의 세월속에 노오란 은행잎이 꽃으로 날리고 지친몸에 찾아온 병도 아름답게 이겨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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