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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당신의 죽음을 허락합니다 - 이토록 멋진 작별의 방식, ‘간절한 죽음이라니!’
에리카 프라이지히 지음, 박민경 옮김, 최다혜 감수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10월
평점 :
추판사 지원도서

여러분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존엄사, 존엄한 죽음, 자발적 조력사망, 의료조력사망, 안락사, 자비로운 죽음,, 참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는 이런 용어들에 대해서는 어떠신가요? 누군가는 합리적 자살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반대의 입장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절실하게 원하는 죽음의 방식일 수도 있을 텐데요.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에서도 나오더라고요. 어린 시절 서로에게 상처받고 상처 주면서도 의지하고 함께했던 친구가 정말 오랜만에 연락을 해서는 자신과 함께 스위스에 가달라고 부탁을 하죠. 죽음을 맞이하는 길에 동행해달라고 하는데요. 서로 마주 앉아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두 배우의 표정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더라고요.

그렇게 나의 아버지 알브레히트 고틀리프 하베거-비겟-푸기는 2005년 5월 3일, 그토록 열망했던 자기 결정에 따른 죽음의 의지를 실행에 옮겼다.
p.59
그래서인지, 이번에 만난 책의 내용이 너무나도 깊이 들어오네요. PD수첩 <나의 죽음에 관하여>라는 이야기에서 소개된 책인 에세이인데요. 제목처럼 저자는 자신의 아버지와 안락사로 이별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뇌졸중으로 모든 언어 표현이 불가능한 실어증과 편측 마비로 괴로워하던 아버지.. 그는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고 하네요.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삶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나 봅니다. 결국 사랑하는 자녀와 손자를 뒤로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세상과 이별을..
혼자만의 결정이 아닌 자신의 굳은 의지로, 가족은 물론이고 누군가에게 충격과 슬픔을 최소화하는, 전문가의 판단과 도움으로 실현된 죽음.. 그토록 열망했던 자기 결정에 따른 죽음은 그녀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고 하네요. 의료 조력 사망을 찬성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의사로서 말이죠.

의사조력사망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행위가 아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죽고자 하는 의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 의지가 반복적으로 발현될 때 비난하려 들지 않고 깊게 헤아리는 것이 목적이다.
p.84
그녀가 만난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에세이에 솔직하게 담겨있는데요. 더 이상 진통제도 듣지 않을 정도로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암 환자, 조금씩 조금씩 자신을 잠식해가는 병으로 무너져가고 있는 루게릭 환자, 나를 잊고 사랑하는 사람을 잊고 결국 살아있음을 잊게 만드는 치매환자.. 세상에는 참으로 아픈 이들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하네요.
온갖 기계과 약물로 하루하루를 살아있도록 만드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조금씩 잃어가는 나 자신을 바라만 봐야 하는 시간은 도대체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 예고 없는 자살로 상처받을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점점 무거워집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선택한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의 행복한 모습에 미소를 보내게 되네요.

이 환자의 삶의 질에 대해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내게 그럴 권리가 있는 걸까?
p.111
하지만 어렵네요. 우리 모두는 똑같은 존재인데, 누군가의 죽음을 결정해 줄 수가 있을까요? 누군가의 삶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 걸까요? 아무리 객관적인 지표와 다양한 방법과 수많은 경험과 차곡차곡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다고 하지만,,, 그래서 그녀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던진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하네요. 그렇지만 결국 그녀가 만난 이들을 통해 답을 얻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신은 아닐 겁니다. 그저 한 명의 의사일 뿐이라고요. 우리가 받은 가장 소중한 선물인 삶을 최대한 기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더 이상 아무런 것도 소용없는 끔찍한 고통 속에 있는 이들에게 죽음이라는 선물도 건네주는 사람이라고 하네요. 어떠한 외압도 없이 스스로 적절하고 존엄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임종을 맞이할 수 있게 해주는.. 상반되는 일인 듯하지만, 결국 누군가의 소중한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같을 듯합니다.

조력사망은 어떤 이들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불편한 개념일 수 있다. 그러나 생애 말기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환자들에게는 구체적이고 절실한 현실이며, 때로는 마지막 남은 인간다운 선택일지 모른다.
p.12
리뷰를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까.. 이런 고민을 정말 많이 하게 만든 책이었답니다. 영화나 소설에서나 보았던,,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허락되지 않는 행위이기에,, 아직은 죽음이란 상태가 멀리 있다고 생각하기에,, 존엄사라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더라고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인사를 건네야 하는 걸까? 아니.. 요즘 세상에서 어떤 죽음이 가장 바람직하고, 가장 인간적이며, 가장 멋진 모습일까라는 생각들.. 웰빙에 이은 웰다잉이 중요해진 요즘에 정말 필요한 고민이고 논쟁이고 논의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네요.
저는 여러분의 생각이 너무 궁금합니다. 누군가에게 추천하고픈 도서였고, 함께 읽고 싶은 내용이었고,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이야기였네요. 존엄사가 옳고 그름을 선택하기보다는,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죠. 그 순간.. 이 에세이에 담긴 이들처럼 평화와 안식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말이죠. 꼭 읽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누군가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