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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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시대, 영화와 역사를 중매하다 - 역사 이야기 ㅣ 지식전람회 8
김기봉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역사에서 혹은 영화에서 상대편을 이용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너무나도 좋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극 범람 시대'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더 그러하다. 필자인 김기봉 교수는 어렵고 두껍고 대중들이 멀리하는 역사학을 버리고, 대중적이고 손쉬운 역사학, 누구에게나 친근한 역사학을 주장하고 있다. 그것을 '영화'라는 대중매체를 이용함으로써 그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영화도 <이재수의 난>, <퍼햅스 러브>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유명한 영화들이어서 책도 잘 읽히는 편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서 계속 의문이 들고 책을 덮고 나서도 의문이 든다. 아, 그 전에 이런 얘기가 더 나을 듯 하다. 밤에 자기 집에 쳐들어온 강도에 대해서 저항해야 하는가? 그리고 강도를 당하고 난 뒤 집주인에게 "너는 어떻게 해서 강도의 심정을 모르고 대항했느냐?" 혹은 "강도에게 원하는 바를 주지 왜 저항하다가 상처를 입었냐?"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은 계속 '이상향'을 이야기만 하고 있다. 강도도 없고, 전쟁을 일으키는 '잔혹한 인간 혹은 국가'도 없는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학자인데도 '역사'를 없애고 '동화'같은 이야기만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선 '강도'에 대해서 비판하고 그러한 강도를 없앨 수 있는 방도를 얘기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피해자의 처신이 어떠했는가를 따질 수, 아니 배려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도 얘기하듯이, "역사란 결국 현재의 권력투쟁의 장소이며, 궁극적으로 이러한 권력 투쟁이 기억과 망각의 시뮬라시옹을 결정한다"(92쪽)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현재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결론은 <웰컴투동막골>이다. 서발턴인 국군, 인민군, 그리고 미군이 개과천선해서 '동막골'이라는 이상향을 지켜낸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인류역사에서 필연적인 코스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을 빼놓고 인간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을까? 전쟁은 인간사회의 정치이자, 경제이자 문화이며 총제적이기까지 하다. 이상적으로 미군이 "Be nice"하길 바랄 수 있어도 그러한 결론이나 몽상은 실제 역사교육에서 일부분을 차지할 따름이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보면, '국가의 전쟁'과 '가족의 전쟁'을 대비시키고 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선택만이 있을 수가 없다. 다양한 선택이 존재하고 그 중 어느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서 미래는 달라질 수가 있다. 6.25라는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어느 쪽을 선택한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결정이었고,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극단 상황은 어느 쪽을 선택하게 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진다고 생각한다. 단지 먹고 살기위해서 인민군 편에 섰다는 것으로 여주인공의 죄가 없어지는가? 그 '먹고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희생되는데도? 양자택일의 상황일지라도 그 선택에는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유치하더라고 '민주'니, '자유'니, '평화'니 하는 보편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마저 황폐화시키는 것은 '원시적인' 폭력 사회라고 생각한다.
남주인공 장동건의 '전쟁'은 자신만을 알고 옆의 사람, 혹은 사회(국가는 저자가 하도 싫어하니)를 무시한, 아니 없다고 생각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폭력 상황일 뿐이다. 그래서 저자에게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러한 저자의 논리라면, 일제의 친일파(그 경계나 기준이 모호한 것은 사실이지만, 하다못해 반민특위에서 지정한 그 많은 친일파들만이라도)는 논죄할 수도 없는가? 그들은 자신들의 '전쟁'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민족이란 표현이 어색하다고 하니)의 삶을 짓밟았는데도? 다른 예를 들어보자. 한말 의병장으로 서울진공작전의 총사령관이었던 이인영을 보자. 고향에서 날아온 '부친상'을 듣고 그는 고향으로 간다. 물론 충효 사상이니, 효를 수행하러 갔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를 비난해야 한다. 더 큰 효로서 '충성'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 배려는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일본군을 물리치는 것이 부모와 가족과 마을, 그리고 동료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저자는 '정의'나 '올바름'을 제외한, '나'만의 역사를 주장하고 있다. 진짜인가?
서양의 역사가들 중에서도 소위 '미시사'를 전공으로 삼은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대체로 맑스주의 역사가들이다. 즉 전체적인 틀을 공부하다가 사세한 것에 눈을 돌려서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돌보는 심정으로 개인의 일상사 등을 연구한다고 한다. 저자의 주장은 소위 주류 역사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에게'만' 의미있는 지적일 뿐,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허무적인 역사학'을 유포시킬 염려가 크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소재로 한 것은 좋으나, 영화만큼 사람을 '현혹'시키거나 단순화 시키는 것이 있을까? 그 좁은 카메라의 눈으로 본 것이 얼마나 큰 것을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Man in Black>에서 나온 수정구슬이 생각난다. 그게 우주인들에게는 '우주'였다고 한다. 지금 이 책의 내용은 바로 그 수정 구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은 우선 역사책 일반을 읽어보고, 아니 하다못해 요즘 나오는 역사교과서류 등을 읽어보고 난 뒤 결정하기를 바란다.
사족이지만, 한 마디 더.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하는 연기를 보고 그 사람의 실제 모습이나 성격과 혼동하여 그 사람이 지나갈 때 손가락질 하거나 칭찬하는 행태를 보라. 짜증난다. 그 정도도 구별못하면서 살다니 라는 한숨만 나올 뿐이다. 실제와 가상을 구별할 수 없는 세상이 온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그러한 구별을 할 수 없기를 바라는 세력이 등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