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대 갑부 역관 표정있는 역사 1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덕일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조선 최대 갑부 역관>을 잘 읽었습니다. 흡인력 있는 글솜씨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것인데, 역사책임에도 불구하고 잘 읽힌다는 사실 그 자체는 여전히 놀랍습니다. 여타의 역사가들의 글과는 다른 면모이지요. 저도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선생님 책을 꾸준히 사 읽으면서 안목을 넓히고 있습니다.
중인인 역관에 대해서는 유명한 이야기들, 즉 허생전의 변부자, 중계변무의 외교문제를 예전의 호의로 잘 처리한 홍역관 등을 통해서만 알고 있다가, 책을 통해서 다양한 역관의 역할을 얻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더욱이 역관의 이야기가 개화와 연결되고, 최근의 상황과도 연상될 수 있도록 글을 써 주신 것은 더욱 빛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이익에만 탐하는 역관들이 더욱 많았음은 주지해야 되지 않을까요? 고려 후기 몽고역관의 경우 사리사욕을 채우며 정권을 좌지우지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조선 후기도 몇 가지 예를 빼놓고는 대체로 전형적인 탐욕형 인간에 불과한 듯 합니다. 일제 때 일본어 능통자도 그랬고, 미군정 때 영어능통자도 마찬가지 아니었나요? 외국어 하나 잘한다는 핑계로 온갖 것을 다 누리려고 하는 심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듯 합니다. 이러한 점도 콕 찍어서 말씀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또한 책을 읽다보니, 몇 가지 의문점이 생겨서 이렇게 펜을 들어봅니다.
1. 51쪽에서 우리나라가 명과 여진 사이에서 삼각 무역을 한다고 하셨는데, 명과 여진 사이에서는 직접 교역이 없었나요? 오히려 굳이 비싸게 조선에서 사들이기보단 직거래가 훨씬 편하고 이득일텐데. 그 당시 만주 상황과 관련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 점이 책에서 명확하지 않은 듯 해서 질문 드립니다.

2. 조선 우위의 대명무역이라고 하셨는데, 말 무역과는 달리 소 무역에서 명에게 쩔쩔 맨 듯한 인상이 드는데,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요? 그렇다고 하면 주체적이고 실리적인 조공무역이라는 주장이나 설이 어색한 게 되는 것 아닌지요?

3. 비변사 설치의 계기가 '1510년'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1433년설, 1555년설(교과서에서는 이 설을 채택하고 있습니다)이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1510년설을 택하신 이유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이 없이 그대로 서술하신 점은 좀 어색한 듯 합니다만...

4. 89쪽 밑에서 세 번째 줄, '지어'는 아무래도 오타이겠지요?

5. 123쪽 '만상(灣上)'이 나오는데, '만상'(灣商)이 아닌지요? '만상'(灣上)의 경우 의주를 지칭하는 용례 같은데, 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송상, 경상도 다들 '상'(商)를 쓰는 듯 합니다만.

6. 135쪽 '삼번의 난'을 일으킨 오삼계, 경계무, 상가희 등이 나오는데, 삼번의 난은 오삼계와 다른 두 명의 아들인 경정충, 상지신이 호응하여 일으킨 것이 아닌가요?

이러한 의문점이 드는 이유는 결국 책을 꼼꼼이 읽고 있다는 증표가 아닐까요? 더욱더 좋은 책을 써주셨으면 합니다.
독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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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망치 2006-11-15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건 모르겠는데 네번째 질문은...
옛날에는 "심지어"를 "지어"로 표현하기도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