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Look After Mom (Mass Market Paperback) - 『엄마를 부탁해』영문판
신경숙 지음 / Random House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겉모양


‘엄마를 부탁해’ 베스트셀러 열풍이 불었어도 읽을 기회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한동안 바빴었고 한가해질 때면 다른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떠내려가더니 결국 손에 잡히게 된 계기가 발생했다.

 

나의 오랜 호주 친구에게 선물을 보내야 할 일이 생겼다. 부모님 연세의 나이 지긋한 부인이라서 고민하던 차에 새해에 그 분이 보내준 호주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5월 13일이 Mother’s day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엄마를 부탁해’ 영문판 책이 스쳐 지나갔다. 일단 그 분에게 잘 읽힐 내용인지 내가 먼저 읽어봐야 했다.

 

언어를 바꾼다고 감정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물론 번역을 잘 했을 경우의 일이다. 이 책은 특히 번역에 공들였다고 한다. 미국 현지의 평도 번역판 같지 않게 원래부터 영어로 쓴 것 같다고 한다. 번역자의 공로이겠다.

 

읽으면서도 아시아권 사람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서구 유럽 쪽은 개인주의 문화라서 과연 잘 이해할까 싶었다. 문화 차이로 인해서 엄마와 가족들의 심리나 행동을 이해 못할 부분도 있겠다, 라는 느낌도 들었다.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 고유 명사들이 아무 주석 없이 쓰인 점이다. 생각나는 대로 써보면 10 pyung, 5 ri, chogori, panchan 등이다. 물론 문맥 속에서 어느 정도 감이 잡히겠지만 외국인들에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 것 같다. 주석 몇 개 다는 게 뭐가 어려울까. 우리 이름을 영문으로 옮기는 것도 그렇다. 나는 아직도 Chi-hon을 우리말 이름으로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 맨 처음엔 치혼으로 읽었다가 번역자가 자신의 이름(지영)을  Chi-Young으로 쓰길래, 지혼으로 읽어야 하나, 라고 생각되었다. 아무래도 우리 이름으로 적당치 않아서 지헌? 이것도 이상하다.

 

 

책의 내부

 

Kyun의 부분부터 상당히 흡인력이 있었다. 특히 Kyun이 학교를 보내달라거나 그 갈등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은 가슴을 아프게 했다. 무엇보다도 나의 감정을 사로잡은 것은 소설 속의 엄마가 아기를 사산한 후의 아픔이다. 실제 내 어머니도 그와 비슷한 상황을 맞이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는 대가족 집의 맏며느리로 시집을 와서 시동생과 올케들을 부양해야 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라서 수입은 안정적이었지만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집안은 길거리에 나 앉게 되었다. 그때 내 나이가 네 살이었고 어머니 배속에는 8개월짜리 내 동생이 있었다. 집안이 풍비박산의 위기에서 어머니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낙태시키는 사람을 써서 약을 먹고 어머니는 동생을 바로 나오게 했다. 아무 것도 기억 못할 네 살인데도 아직도 아기의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안방의 아랫목에는 시멘트 포대가 깔려 있고 피가 가득 고인 포대 위에 큰 아기가 있었다. 그 장면밖엔 기억하지 못하는데 나중에 할머님이 알려주신 게 있다. 당시에 내가 할머님께 “아기가 왜 울지 않아?”라고 물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9달 못 채워 나오게 했어도 아기 코와 입안의 것을 토해내게 하면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며 가끔 눈물지으신다.

 

산후 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식당을 열어서 생계 전선에 뛰어드셨다. 형과 나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 나가서 일하고 밤늦게 돌아오셨다. 어머니 식당에 놀러갈 때면 식당 한 곳에 빨간 돼지 저금통들이 많이 쌓여 있었다. 무거운 저금통들은 나의 장난감이곤 했다. 그렇게 해서 보증으로 생긴 빚을 다 갚을 무렵, 새로운 재앙이 닥쳤다.

 

어머니가 식당에서 연탄가스 중독에 걸린 것이다. 그 이후로 식당도 못하고 집에서 3년간 멍하게 지내셨다고 한다. 동네에서는 어머니가 바보가 되었다고 수근 거렸다. 3년 정도 되자 차츰 정상으로 회복 되었다고 한다. 어머님은 말하길 뇌손상은 회복이 안 되는데 자신은 젊었기 때문에 회복이 된 것 같다고 말하신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종종 두통으로 겪고 계신데 유명 병원에서 MRI도 찍었지만 그 당시 가스 중독으로 뇌혈관이 좁아져서 고칠 방법이 없다고 한다. 정상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신앙을 갖고 그간의 슬픈 일들을 잊으려 노력하셨다. YWCA에 나가서 활동도 하셨다. 아버지께서 우리들을 위해 동화책을 사 오시면 제일 먼저 읽곤 하셨다.

 

영문판을 다 읽고 나서 어머니에 대한 그간의 일들이 되살아났다. 이 책에 대해서 어떤 분들은 감정의 대물림으로 여성의 삶을 고착화 시킨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다행히도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처럼 살지 않은 나의 어머니께 감사한다. 그 만큼 어머니의 아들들인 우리 두 형제는 성장기에도 그랬고 나이 든 지금도 어머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우리들이 내린 선택을 존중해 주었고 한 발 떨어져서 자식들의 삶을 응원해 주셨다.

 

그렇다고 이 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감정의 공유와 재해석은 이 책의 가장 큰 선물이다. 어머니께도 선물하기 위해 ‘엄마를 부탁해’ 한글판 책을 주문했다. 어머니는 책을 읽으면서 과거로 여행을 떠나실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날들에 대해 다시 짚어 볼 기회를 가지실 것이다. 그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아들이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아실 것이다. 어머니를 안아 드려야겠다.

 

 

신경숙 작가 소개 페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