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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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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외관.
김 탁환 작가는 다작으로 유명하다. 이것 때문에 일부 독자들은 작품의 질에 의구심을 나타내거나 심지어 폄하하기도 한다. 거기에 바로 좋은 먹이 감을 제공한 것이 ‘노서아 가비’ 작품이다. 그림까지 넣어서 여러 페이지를 메웠어도 250 페이지 정도 밖에 안 된다. 중편 분량이다. 서점에 자리 잡고 앉아서 뚝딱 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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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장마다 삽입된 그림.
내용은 또 어떤가? 작가가 밝혔듯이 사기극을 다룬 지극히 경쾌한 소설이라고 했다. 아관파천이라는 무거운 역사적 사실을 등에 이고 가벼운 터치로 사기극을 그린 것을 작가의 천재성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작가의 날림 공사로 해석해야 할지는 의견이 분분할 것 같다.
어느 작품이든지 독자가 의미를 부여한 만큼 얻어간다고 했다. 어느 삼류 소설을 읽고 공감하며 눈물 흘린 독자라면 많은 것을 얻겠고, 반대로 그딴 책을 괜히 읽었다고 생각하면 시간이 아까운 법이다. 하지만 안 좋은 작품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뭔가를 얻으려는 독자의 수는 미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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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부. 여백이 많아서 읽기에 편하지만 금방 끝난다.
아관파천이라는 소재를 잘 가공하면 더 흥미진진한 작품이 되었겠다, 라는 점에서 무척 아쉽다. 김 탁환 작가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는 최근 여러 글쓰기 관련 책에서 자신의 노력들이 어떤 지를 보여 왔다. 하지만 그 노력이 다작을 함으로써 빛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우려스럽다. ‘노서아 가비’의 경우를 보더라도 500~700 페이지짜리 소설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에피소드를 더 넣고 갈등을 다변화하여 박진감 넘치게 만들었다면 훨씬 멋진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뜻밖에 원작을 뛰어넘는 영화를 만나면 ‘대박’이라고 소리치겠지만 이렇게 원작이 기대에 못 미치면 영화가 더 나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 영화감독 수준을 믿고 얘기하는 것이다.
기대감을 갖고 영화관을 찾았다. 역시 영화가 원작보다 나았다. 영화만 감상한 관람자라면 영화가 그저 그럴 수 있겠지만 원작을 읽은 독자라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안도감(?)에 영화를 즐겁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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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비’ 영화 티켓
가비 영화는 원작과 많이 달랐다. 영화에서는 이반 일리치와 따냐가 어렸을 때부터 아는 사이로 나오지만 원작에선 아니다. 이것은 일리치와 따냐가 훨씬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로 보이기 때문에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시간을 빨리 지나가게 하는 효과를 준다. 영화에서는 적절했다. 원작에서의 마차 장면(따냐가 절벽으로 떨어진 부분)은 사라지고 다른 내용의 열차 장면을 넣었는데 마차 장면이 더 멋졌을 듯하다. 원작에서 괜찮은 부분이었다. 마차 장면을 넣으려면 얼음여우 사기단과 흑곰단 사기단의 관계 장면부터 넣어야 할 것이다. 이걸 그리려면 아무래도 영화가 느려질 가능성이 있어서 마차 장면을 넣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에서는 고종과 따냐의 관계가 원작보다 좀 더 갈등을 일으키게 되어 있다. 원작에서 그려진 고종을 머릿속에 그리다가 영화에서 고종을 대하니 그가 까칠하게 나오는 것이었다. 흡인력이 있었다. 갈등이 증폭되는 구조다. ‘그래 이거야.’ 소설에서의 밋밋하던 이야기가 생동감 있게 바뀌었다. 김 탁환 작가는 유쾌하게 그리려는 의도에서인지 갈등의 골이 영화만큼 깊지 않았다. 원작은 가볍기는 했으나 유머가 없다보니 속빈 강정이었다. 차라리 영화처럼 무겁고 진지하게 전개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고종이 따냐에게 비밀 지령으로 백범 김구의 사형을 면하라는 장면도 잘 넣었다고 본다. 원작에는 이 내용이 없다. 실제로 당시에 청년이었던 김구 선생은 명성왕후의 시해 사건으로 일본인에게 극도의 분노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여관에서 일본장교가 우리나라 사람으로 변장해서 첩자로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를 죽였다. 고향으로 간 후, 도피하지 않고 떳떳이 붙잡혀서 인천 교도소에 수감되었다.(이 내용은 백범일지에 잘 나와 있다.) 그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진 것을 이 영화에서는 따냐의 비밀 지령으로 교묘히 연결시킨 것이다.
마지막 장면으로 현존하는 가비 장소를 보여준 장면도 영화의 끝 처리로 아주 좋았다. 그 곳에 가서 구경도 하고 주변에서 가비 한잔을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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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지를 벗겨낸 책의 외관. 예쁜 빨간색 하드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