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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함 속 세계사 - 129통의 매혹적인 편지로 엿보는 역사의 이면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최안나 옮김 / 시공사 / 2022년 6월
평점 :
그대에게 전해지리라, 운명의 편지들이, [우편함 속 세계사]
언제부터인지 거리에 서 있는 우편함을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별로 쓸 일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놓여 있던 우편함이 하나둘 없어지기 시작한 탓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SNS와 이메일, 휴대폰 문자 메시지 등 편지를 대신해 상대방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편지’라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과거보다 멀어진 존재라는 점이다. 편지로 우리는 마음을 전해왔다. 또 꾹꾹 눌러쓴 손글씨는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어디에 있든 또렷한 형상으로 낚아채 눈에 또 마음에 선하게 떠올리게 만들었다. [우편함 속 세계사]는 이런 편지를 주고 받았던 역사 속 인물들과 편지를 보낸 상대의 관계를 소개하고 그 편지를 실은 특별한 기획의 편지 모음집이다.
책의 구성은 편지를 보낸 날짜와 보낸 사람, 받는 사람, 그리고 그 둘의 관계를 설명한 간단한 본문에 이어 주인공인 편지가 직접 등장하는 식이다. 편지를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해주는 점이 편지를 읽기 전 독자의 이해를 도와 특히 좋다. 437개의 편지 속에서 우리는 목차가 말해주듯 ‘사랑, 가족, 창조, 용기, 발견, 여행, 전쟁, 피, 파괴, 재앙, 우정, 어리석음, 품위, 해방, 운명, 권력, 몰락, 작별’이라는, 우리 삶에서 빠질 수 없는 18개의 주제들을 마주한다. 2018년 5월 24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가 북의 김정은에게 보냈다는 편지와 1775년 7월 30일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가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보낸 편지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두 편지는 각각 분명한 목적을 담고 상대에게 전해졌지만 얻어낸 결과는 사뭇 달랐다. ‘만나는 순간을 매우 기대하고 있었습니다’라고 편지의 서문을 열지만 곧 ‘미국의 것이 워낙 막강하고 강력해서’라며 은근한 제힘의 과시와 위협을 담아 결국 받는 사람이었던 김정은이 공식적인 화해 서신을 보내게 되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했던 전자와 달리, 후자는 ‘부디 불행이 너를 집어삼킬 때까지 내가 살아 있지 않기를’이라며 딸에게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를 걱정하며 호되게 어린 왕비를 꾸짖은 마리아 테레지아가 그러나 ‘나는 죽는 날까지 널 다정하게 사랑할 게다’로 끝내 숨길 수 없는 모정을 녹여 편지를 끝맺었지만 결국은 딸 마리의 비극적인 운명을 되돌리지 못한 공허한 외침으로 남는다.
다시 생각해보니 ‘몸만 두고 마음이 상대에게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는, 편지의 다른 정의를 언젠가 본 기억이 난다. 역사 속에 남은 수많은 편지들은 그렇게 상대에게 여행을 떠나는 것도 모자라 그 유명함과 깊은 의미로 시간을 거슬러 후세에 남아 전해졌다. 우리에게 전해진 이 책의 편지들도 읽는 사람에 따라 각기 푸릇한 새 의미를 얹어 또 다른 기억으로 특별한 옷을 입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