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소멸세계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살림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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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세계’를 읽기 시작하였을 때는 의례 디스토피아를 그린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품의 중반을 지나 결말을 향해가면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다.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가족, 자식, 부부, 부모의 개념은 무엇일까?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실험도시의 모습이 어쩌면 ‘에덴’이라는 명칭처럼 유토피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본인이 주관적이라고 여기던 객관적이라 생각하던 사회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심어준 프리즘을 통하게 된다. 다른 말로는 선입견, 편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배우고 익힌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종종 완전히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충돌이 발생한다. 다른 문화권까지 가지 않더라도 종종 세대간 갈등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늙은 세대는 젊은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옛날에는 말이야’를 입에 달고 산다. 본인이 배우고 경험하였던 선입견, 편견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거나 이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보수적 성향을 드러내게 되는 것 역시 같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주인공 아마네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우리는 언제나 ‘도중’에 있다. 어떤 세상에 세뇌되더라도, 그것으로 누군가를 심판할 권리 같은 건 없는 것이다.>

작품의 결말로 가면서 지금의 우리 시선으로는 낯선 실험도시의 모습이 효율성과 합리성의 관점에서는 옳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나고 자란 세대는 그것을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다만 이 작품을 읽으며 씁쓸한 마음이 들었던 지점은 결국 개개인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소모성 부품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암울한 생각이었다. 영화 매트릭스는 더욱 극단적인 모습의 미래상을 보여준다. 인류는 그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 원일 뿐이고, 시스템은 끊임없이 행복의 기억을 주입한다.

빨간약을 먹을 것인가, 파란약을 먹을 것인가?

현실 세계라고 다른 것이 있을까? 대한민국 정치계와 언론은 고령화 저출산을 입에 달고 있다. 그들이 걱정하는 지점은 무엇일까? 결국에는 시스템 유지를 위한 자원 걱정인 것은 아닐까? 저출산이 아이를 낳지 않는 젊은 여성의 탓인듯 이야기 하는 부류를 보면 더욱 이런 생각을 공고히 하게 된다. 아이를 낳으라 종용하지만,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의 고민은 개인에게 미루어 버리는 사회. 아이를 낳지 않는 행위가 매국 행위인양 지적하지만, 여성의 경력 단절, 아픈 아이의 보육 문제, 장애인 캐어 문제 등은 가족의 문제로 손쉽게 돌리고 외면한다.

어쩌면 지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이 디스토피아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실험도시의 모습이 지금의 대한민국의 모습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사회의 구성원 각자를 차별하지 않는 세상은 정말 불가능 한 것일까? 장애가 있건, 성소수자이건, 나와 생각이 다른 이 이건, 빈부의 격차가 있건 어떤 이유로도 차별 받지 않는 사회, 모두가 인간 다운 삶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사회, 함께 웃고 눈물 흘려 줄 수 있는 사회는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 한 것일까?

서로를 미워하고, 손가락질 하고, 자신의 집값을 걱정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실험도시 보다 나은 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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