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빽넘버
임선경 지음 / 들녘 / 2016년 4월
평점 :
판매중지


입담 좋은 이야기 꾼과의 만남

임선경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

‘빽넘버’에 대한 작품 소개란을 보면서, 소재의 신선함이 인상 깊었다. 가사 체험을 통하여 무언가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되는 이야기는 종종 접할 수 있는 소재이다. 하지만, 이 경우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능력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장치로서의 ‘능력’이 부여된다. 누군가에게 남아있는 삶의 날짜를 보게 된다는 능력은 사실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황에 대한 인식. 그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는 소재이다. 거기에 조금 더 살을 덧붙이자면 ‘정해진 미래’를 변경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로 함부로 개입하는데도 제약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타임 슬립형 작품에서 주인공의 섣부른 행동이 ‘정해진 미래’에 커다란 부작용을 불러 올 수 있다는 이야기는 주변에 많이 산재해 있으니까.

개인에게 ‘삶’이 주어진 날짜라면, 미래도 이미 정해진 무엇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작품은 시작부터 커다란 한계를 전제한 상황이 되어버린다.

그러한 측면에서 작가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가장 기대되는 부분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이 작품은 주인공(이원영)이 어떻게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었는 가를 풀어나가는데 분량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타인의 정해진 운명을 바꾸고자 몇 번의 시도를 하지만, 그로부터 야기되는 미래의 왜곡을 절절한 현실로 받아들인다. 결과적으로 나의 기대를 충족하지는 못하였지만, 작가는 대신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어긋난 기대감의 빈공간을 메워갔다.

작가의 입담이 훌륭하다.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고 실험을 촘촘하게 엮어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의 경험을 통하여 얻게된 삶에 대한 생각을 작품에 투영한다. 그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다. 만약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지난하게 풀어갔다면, 이 작품은 철학서로 변질 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와 화두 제공의 선을 적절히 유지한다.

소재의 제약을 생각해볼 거리의 제공으로 조화시키며 작품을 끌고 나간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작품의 결말이 앞부분에 비하여 너무 급작스럽게 마무리 된다는 점이다. 긴 호흡으로 능력을 갖게 된 배경과 다양한 사고 실험을 거치다가 결말에서 다소 허망하게 끝나버린다. 주인공이 미래에 개입하고 좌절하는 이야기를 몇 건 더 포함했다면 어땠을까 어떤 식으로든 이 작품의 결말처럼 이어지기는 했겠지만, 작품과 함께 줄기차게 달려왔던 독자에게 안기는 허망함이 조금은 줄어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상대적 분량이 앞부분에 너무 많이 쏠렸다는 생각을 접기가 어렵다.

작품의 마지막 서술로 글을 마친다.

‘햇살이 좋았다. 일어날 일들은 일어나고 사람들은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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